
부부와 아이 둘로 구성된 우리 가족이 사는 집은 평창동의 단독주택이다. 각기 다른 세대가 사용하던 복층 구조의 단독주택을 통합해 하나의 공간으로 바꿨다. 1층은 내가 운영하는 건축사무소, 2층은 가족이 살고 있는 일명 ‘리타 하우스’다. 1층 스튜디오는 작은 공간을 미팅 룸과 오피스, 샘플실로 나눠서 효율적이고 미니멀하게 사용하도록 했고, 2층에는 거실과 부엌, 3개의 방과 욕실이 있는데 공용 공간인 거실과 부엌을 넓게 사용하고 방들은 기능에 맞게 최소화해 가족이 한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도록 설계했다. 거실과 부엌은 벽 없이 오픈돼 있는데 가족 모두 요리에 참여하고 창밖을 바라보며 식사를 함께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 것이다. 다이닝 룸에는 길게 제작한 테이블을 두었다. 요즘 여기서 엄마와 아빠는 각자의 회사 업무를 보고, 아이들은 온라인 수업을 듣곤 한다. 이 집을 설계할 때만 해도 코로나 이전이었기 때문에 이 테이블이 이렇게 다채롭게 쓰일 줄은 몰랐다. 단독주택의 가장 큰 장점은 집 안에서 야외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날씨가 좋으면 무조건 책이나 노트북을 들고 나가 테라스 생활을 즐긴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사적인 야외 공간은 삶의 만족도를 크게 높여줬다. 처음 단독주택에 이사 올 때는 안팎으로 지속적인 관리를 하며 살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된 시간을 지내다 보니 야외 공간이 없는 집으로 다시 돌아가긴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에겐 소소한 요리라도 야외에서 햇빛과 바람을 맞으며 가족과 먹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요가와 줄넘기 같은 가벼운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엄청난 위안이다. 최근 만난 여러 클라이언트들이 원하는 주거 형태가 많이 바뀌었다. 아파트의 편리함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코로나 사태를 경험하면서 마당(그 크기와 상관없이)이나 테라스가 딸린 주거 공간을 찾고 있다.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언제 또 이런 상황이 닥칠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주거 공간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지금부터 시작일 거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우리 가족은 집이라는 공간이 삶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을 알게 됐다.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주거 공간에 사는 것은 아주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삶의 만족도와 직결된다. 집은 가족의 몸과 마음이 머물러야 할 최후의 안식처니까.
김재화(건축사무소 ‘멜랑콜리판타스틱 스페이스 리타’ 대표)

부부와 고양이 한 마리로 구성된 우리 가족이 사는 집은 하월곡동의 아파트다. 연식이 있지만 거실에서 보이는 홍릉 숲에 매료돼 이 집을 선택했다. 방은 총 3개인데 침실과 드레스 룸, 작업실로 사용한다. 거실 한편에는 진열장이 있는데 여행을 다니며 모은 오브제와 식물을
계절과 기분에 따라 바꿔 전시하는 작은 갤러리 역할을 한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같은 공간이라도 가구나 소품의 배치를 바꿔 변화를 주는 것이 일과 휴식의 능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코로나 이후로 집에서 보내는 일상에도 크고 작은 변화들이 생겼다. 먼저 창밖으로 숲을 보면 집 안과 바깥이 연결되는 기분 때문에 거실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외출이 적어지자 드레스 룸 사용은 줄었고, 전보다 집에서 식사하는 일이 많아져서 부엌이 좀 더 넓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라운지 체어, 리클라이너처럼 쉬면서 간단한 노트북 작업이 가능한 가구에도 점점 눈길이 간다. 허먼 밀러의 임스 라운지 체어가 있으면 일의 능률이 높아질 것 같다며 아내를 설득 중이다. 예전에는 ‘일은 일터에서 해야지’ ‘일거리를 집으로 가져오면 안 돼’ 하면서 공간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었다. 그래야 ‘워라밸’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로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 집과 회사의 경계는 흐려졌고, 그 경계를 다시 적당히 조절하는 것이 새로운 워라밸의 기준이 되었다. 인테리어 컨설팅과 시공을 하며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살피는 브랜드에서 일하다 보니 코로나로 인한 주거 조건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체감하고 있다. 클라이언트들에게는 하나의 목적으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기능을 가진 하이브리드한 형태의 공간을 제안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홈 카페, 홈 가드닝, 작업실 등 집이 소화해야 할 역할은 다채로워지는 중이다. 나 역시 지금은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도시에 살고 있지만, 출퇴근이 유동적으로 변한다면 ‘정말 살고 싶은 곳’에서의 거주를 고려하게 될 것 같다. 나와 아내는 가까운 미래에 바다와 인접한 곳에 살면서 필요할 때만 도시에 들르며 살아보자는 이야기를 최근 더욱 빈번하게 나눈다. 코로나로 인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귀하게 느껴지고, 우리가 좋아하고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욱 선명해진 것 같다. 집은 이제 자신을 대변하는 매개체 역할을 할 것이라 본다. 나라는 사람, 우리 가족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확장될 거다. 과거 패션이 그런 역할을 한 것처럼. 보다 확고해진 취향을 바탕으로 집은 모두의 라이프스타일을 담은 하나의 유니버스가 되지 않을까. 하태웅(인테리어 컴퍼니 ‘아파트멘터리’ CBO)

혼자 거주하고 있는 나의 첫째 집은 경리단길 부근의 아파트다. 지금은 제주 신시가지에 있는 오피스텔에서 머물고 있다. 이곳이 현재 나의 둘째 집이다. 나는 서울 집을 지인에게 잠시 빌려주고 3개월간 제주에 내려왔다. 제주 집은 각종 가전제품과 책장, 옷장, 싱글 침대 등 기본적인 가구들이 양쪽 벽에 수납돼 있는 풀 옵션 빌트인 시스템이라 단기간 머무르기에 편리하다. 집에서 일하려면 식탁이 필요해서 1만 원에 직거래한 보루네오 식탁이 제주 집을 위한 쇼핑의 전부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야자수와 하늘색 타일이 멋진 집 앞의 야외 수영장 그리고 범섬의 바다 뷰를 볼 때마다 이런 선택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제주행을 결정한 이유는 코로나 한가운데 놓인 여름을 좀 더 잘 보내기 위해서였다. 예정돼 있던 많은 촬영이 취소되거나 미뤄졌고 외출도 어려워지면서 간헐적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그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 바다와 가까운 곳에서 여름을 지내고 싶은 생각이 커진 것이다. 그 결정 덕분에 나는 최고의 여름을 보냈다. 제주로 내려오지 않았다면 서울 집에서 내내 틀어박혀 있기만 했을 거다. 그 와중에도 해야 할 몇 개의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일을 순조롭게 할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결론적으로는 성공이었다. 제주에서 두 달 넘게 지내는 동안 업무 때문에 서울을 네 번 정도 오갔다. 15일가량 서울에서 머무르며 미팅하고 촬영을 진행했다. 물론 제주에서도 틈틈이 업무를 봤지만 여가 시간이 생기면 바다에서 휴가 즐기듯 알차게 잘 쉬고 놀았다. 덕분에 일할 때도 예전보다 더 즐겁고 활기찼다. 제주와 서울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생각보다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경리단 부근에 살았던 이유는 대부분의 업무가 이뤄지는 강남과 가깝고, 여가를 즐길 때 가고 싶은 가게들이 근처에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로 서울 집의 장점은 희미해졌고, 도전적으로 선택한 제주행이 제법 성공적이어서 앞으로도 이렇게 2개의 도시에 머무를 방법을 마련해 일과 여가생활을 적절히 병행하는 루틴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주 집의 계약 기간이 지나면 우선은 서울 집으로 돌아가겠지만, 연말 즈음 제주에 연세를 내고 지낼 만한 집을 알아볼 생각이다. 근무 환경이 비슷한 친구 몇 명과 연세를 나눠내는 방법도 좋을 것 같다. 서울 집의 비중을 줄이고 서울과 제주에 각각 집을 얻어 오가며 지내는 것도 고려해 보고 있다. 이 모든 게 프리랜서라서 가능한 일이겠지만, 사실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과감하게 주거지를 옮기고 휴식 시간을 늘리는 것이 처음에는 어려웠다. 업무를 좀 더 지속적이고 원활하게 유지시키는 방법도 앞으로의 과제일 테다. 지금까지 집은 나에게 그저 사는 곳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집에 좀 더 다양한 역할을 더하게 될 것 같다. 카페가 되고, 레스토랑도 되고, 도서관과 와인 바가 될 수도 있겠지. 휴가를 보내는 호텔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우리 집이 어떤 역할을 겸하게 될지는 오롯이 가족 구성원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선택의 문제가 될 거다. 나는 당분간 내 선택을 믿어보려 한다. 정희인(패션 스타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