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에르메스와 아티스트 조재영

'다른 곳'이라 이름 붙은 다섯 개의 세계, 그 시작점에서 마주한 아티스트 조재영.

BYELLE2020.10.15
조재영 작가의 ‘허공의 단면들’.

조재영 작가의 ‘허공의 단면들’.



혼돈의 시대, 아뜰리에 에르메스가 ‘다른 곳’을 키워드로 ‘지금 여기’에 대한 질문을 담은 흥미로운 여정을 마련했다. 다섯 명의 동시대 작가가 참여했는데, 전시장을 돌아본 소감은 마치 미션처럼 공통 주제가 주어지고, 여러 명의 작가가 자신만의 언어로 주제를 해석해 가는 과정은 늘 흥미롭다. 특히 이번 전시는 작가들의 각기 다른 관심사는 물론, 다양한 매체로 전시가 구성돼 관람하는 재미가 더해진 것 같다.
 
‘다른 곳’이란 키워드를 듣고 어떤 생각이 스쳤나? 이번 작업의 모티프가 된 단상은 뭐였을까 습관적으로 경험하는 일상, 그 사이사이 접힌 채로 우리에게 발견되지 못한 시공간의 단면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단순한 상상을 했다. 예술가의 작업은 그 접혀 있는 면을 열고, 새로운 현실을 꺼내 구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접힌 시공간을 열었을 때 그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어떤 세상이어야 할까? 그런 질문을 스스로 곱씹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만나는 작품이다. 영화 〈인셉션〉의 뒤집어진 세상처럼 마치 도시의 빌딩숲이 거꾸로 매달린 듯한 공간을 연출했다. 관객에게 어떤 경험을 유도하고자 했나 언제부터인가 ‘잘’ 설계된 도시 곳곳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도시가 만들어내는 일종의 메커니즘, 우리는 당연한 듯 그것을 누리면서도 정작 그곳이 ‘잘 유지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렇게 작동하도록 설계한 자는 누구인지에 대해 질문하는 것에는 인색하다는 생각이 든다. ‘허공의 단면들’이라는 이름으로 구현된 이 ‘다른 곳’은 특정 공간에서 규정되는 사물의 정의와 인물의 정체성이나 역할, 그 선명한 경계를 지워내는 공간이다. 여러 구조물에 의해 가려지거나 분리되는 상황 속에서 나를 규정했던 기존의 정의나 판단에서 잠시 벗어난 채 머물 수 있기를 바랐다.
  
아티스트 조재영

아티스트 조재영

 기하학적 선과 면으로 이뤄진 각각의 오브제를 만들고 배치하는 작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기존 도시 공간에서 쉽게 인지되지 않았던 구조의 파편들을 가져와 최소 단위로 만들고, 각 단위를 연결하고 조합해서 한 덩이의 오브제로 키웠다. 각 오브제, 구조물 자체보다 구조물이 공간에서 일정한 부피를 차지할 때 역설적으로 드러나는 빈 공간에 대해 더 많은 상상을 했다. 공간과 오브제 그리고 관객의 신체가 서로 맞물리며 만들어내는 익숙하지 않은 상황을 기대했다.
 
종이 같은 가벼운 소재를 이용해 기존의 오브제를 해체해 재조합하는 방식으로 고전적인 조각과 차별화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혹자는 이런 작업을 ‘영원성, 권위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당신이 지금 계속해서 탐구하려는 것은 평소 어떻게 세상을 인식하는지, 그 방식에 관해 관심이 많았다. 각자가 인식하는 방식이 곧 각자의 현실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내 인식 방식에 관해 스스로 의심하기 시작할 때쯤 그것이 이미 불순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동안 내 인식 방식을 스스로 관찰하면서 그 속에 자리 잡은 통념들, 고착된 질서나 관계구조 등을 덜어내려는 시도를 했다. 그런 것들을 덜어낸 이후, 색으로 비유하자면 무채색에 가까운 중립적 상태를 작품으로 구현하고 싶었다. 앞으로의 작업에서는 현실에서 발견되는 위계와 권력 문제를 더 섬세하게 들여다볼 계획이다.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리는 〈다른 곳〉 전시 전경. 김동희, 김희천, 노상호, 손광주, 조재영 작가가 참여한 이번 전시는 10월 25일까지 열린다.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리는 〈다른 곳〉 전시 전경. 김동희, 김희천, 노상호, 손광주, 조재영 작가가 참여한 이번 전시는 10월 25일까지 열린다.

 
에르메스 재단과 첫 작업인데, 일하는 과정은 어땠나 에르메스 재단에 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예술가들에게 애정 어린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인 지원을 한다는 것을 여러 차례 들었다. 이번 전시를 기회로 에르메스와 작업하면서 그들이 예술과 예술가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나와 같이 물리적 구현이 중요한 작가들에게 전시장 컨디션과 기술적 지원은 매우 중요한데, 고민이 되는 상황이 생기면 망설임 없이 전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시대를 통과하며 예술에 대해, 우리 사회에 대해, 삶에 대해 새롭게 갖게 된 시선이 있을까 자본주의를 긍정하고 그것이 주는 혜택을 누리고 살았던 과거 삶에 대한 반성이 컸다. 자본주의가 옳다고 외치던 가치들을 원점에서 재고하지 않는다면,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하기는 어렵겠다. 예술 또한 이 대혼란에서 예외는 아니다. 최근 VR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는 전시에 참여했다. 보다 다양한 시점으로 작품을 관람할 수 있고, 현장에서 작품을 만날 때와는 다른 경험치가 생겼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현장에서 작품과 관객이 만나기를 바라고, 그들이 작품을 직접 보고 만지고,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상황들이 생기기를 기대한다. 이 모든 장점을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전시를 기대한다면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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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KIM SANG TAE ⓒ Fondation d’entreprise Hermes
  • 에디터 김아름
  • 디자인 정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