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식객의 맛집 놀이 - 호호 찬 바람이 불어오면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동짓달 기나긴 밤을 님 오신 밤에 구비구비 펴리라 노래했던 황진이의 시조 못지않게 동지 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팥죽이다. 오늘은 단팥죽. 따끈한 죽 한 그릇 찬 손으로 받치고 추운 겨울을 노래한다. 단팥죽 한 그릇 국자로 떠서 님께 바치오리다. ::겨울, 음식, 맛집, 죽, 따뜻한, 일상, 엘르, 엘라서울, 엣진, elle.co.kr:: | ::겨울,음식,맛집,죽,따뜻한

Information서울서둘째로잘하는집 734-5302. 연중무휴.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고즈넉한 겨울 찻집 분위기를 즐기려면 밥 때는 피해서 가는 것이 현명하다. 언뜻 보면 양이 적어 보이지만 단맛이 강해 딱 그만큼이 정량이다. 두 그릇 먹는 사람 거의 못봤다. 미리 주문 포장 가능.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옆 위치. 주차불가.Profile이름 낭만식객성별 스테레오 타입을 거부하는 양성성 소유자취미 한 종목에 꽂히면 석 달 열흘간 한 놈만 팬다.특징 사주팔자에 맛 미(味) 자가 있다고 용한 점쟁이가 일러줌과제 어지러운 중원에 맛의 달인, 진정한 고수 찾기"찬바람이 싸늘하게~호호호호 삼립호빵." 해마다 버전 다르게 제작한 호빵 CF를 보면 아, 겨울이 왔구나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변하는 것은 화면인데 유독 놀만은 변치 않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호빵 모르는 사람이야 없을 테고, 호빵기 보여주면서 호빵 맛있다고 어필하지 않아도 호빵 좋아하는 사람들은 으레 호빵을 먹을 터이니 호빵으로 호빵, 호빵 하지 않아도 되는 가ㅣㄴ 자의 여유랄ㄲ. 뜬금없이 북극곰이 미끄러지는 장면에 '호호호호 삼립호빵~'이 피처링되면 왠지 피식 웃고 지나가게 만드는 그런 광고였다. 가끔 그런 옛 시절을 그리는 마음 때문일까. 추운 계절이 다가오면 아날로그 향수를 자극할 만한 따뜻한 것을 그리게 된다.평소보다 기온이 뚝 떨어졌다고 뉴스에서 호들갑을 떨던 어느 날, 삼청동 둘째집을 찾았다. 풀 네임은 '서울서둘째로잘하는 집'. 보통은 둘째집으로 통한다. '서울서둘째로잘하는'이라는 수식어가 어쩐지 겸양의 미덕을 드러내는 듯하지만 워낙 명서이 높은 탓에 손님들이 알아서 겸손해지는 곳이다. 1976년 4월 19읿터 쭉~한 곳에서 장사를 해왔다는 건 간판만봐도 안다. '1976.4.19~'를 보면서 "언제부터 거기서 장사하진 거예요?" 라고 묻는 사람은 없으니까. 문을 열고 들어서면 진한 약탕재 냄새가 진동을 한다. 팔걸이가 없는 직사각형 다방 의자까지,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새마을운동 하던 시절로 훌쩍 뛰어 들어온 것 같은 느낌. 하지만 지금의 모습 또한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세련되어진 모습이라 오래전부터 찾은 단골들은 예전의 투박한 모습을 더욱 그리워한다. 이곳의 주종목은 단팥죽이다. 하지만 단팥죽 못지않은 투 톱이 있으니 바로 숙지황, 당귀, 천궁, 백작약, 계피, 황기, 감초, 백줄, 백봉령, 인삼 등 아는 한약재는 죄다 넣고 하루 종일 달인 십전대보탕! 으슬으슬 몸이 추워지며 감기 기운이 도질 떄면 '아,둘재집 십전대보탕~'하고 신음하게 만드는 강력한 보약이다. 이곳의 십전대보탕은 아주아주 뜨겁게 담아나오는데 몸에 좋다고 후룩 입을 가져갔다가는 입 천장과 혓바닥을 끓는 물에 데친 듯 강력한 열시에 휩싸이게 된다. 못젖까지 훌러덩 벗겨질 만한 상해를 입지 않으려면 인내심을 가지고 잠시 뜸을 들여야 하는데 너무 식히면 쓴맛이 강해져서 사약을 먹는 기분이 들 수 있으니 타이밍을 잘 노려야 한다.격자무늬 창문 밖으로 마지막 잎새가 나선형을 그리며 멀리멀리 날아간다. 목도리를 두르고 어깨를 움츠린 사람들이 뭐가 좋은지 깔깔깔 웃으며 종종거린다. 겨울은 평범한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다. 신영복의 말마따나 타인의 체온이 증오가 아닌 그리움으로 다가오게 하는 그런 계절이다. 다방 분위기 가득한 자그마한 홀에 앉아 뜨끈한 십전대보탕을 홀짝거리며 잠시 동안의 느긋한 여유에 젖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계절 덕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문턱이 닳도록 오갔는데도 이전이나 확장을 하지 않고 종목 변경도 없이 한 곳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 문을 여닫은 주인장도 고집깨나 센 사람. 주인장 이은숙 씨는 매일 아침 경동시장에서 장을 봐온다. 팥도 지방 거래처에서 국산으로 가장 좋은 재료만 쓴다. 매장 안쪽에서는 아주머니 몇 분이 쉴 새 없이 밤 껍질을 벗기고 있다. 어디서 깐 밤을 사다 쓸 법도 한데 시골에서 가져온 밤을 쪄다가 한가득 풀어놓고 연신 밤 껍질을 벗기고 있다. 밤 까본 사람들은 안다. 그 노동이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정교해야 하는지. 털북숭이 속껍질을 남김없이 깨끗하게 하려면 이름 모를 중소기업에서 만든 밤 깎는 기계도 소용없다. 정신을 집중하고 돌리고, 돌리고, 돌리고...아주머니 모두 조그만 과도 한 자루씩 들고 돌리고, 돌리고, 돌리고 게신다. 그 안쪽으로는 방앗간에서나 볼 수 있는 쌀 빻는 기계가 있다. 얼마나 많은 단팥죽을 끓여야 했으면 정미기를 매장에다 들여놨을까. 조그마한 가게이 일하는 아주머니는 대여섯 분. 워낙 매장이 작아서 먹는 사람, 포장해가는 사람,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 한창 바쁠 때 찾으면 역 대합실이 따로 없다. 동짓날 기나긴 밤이 되면 근처 사무실에서 대량으로 주문하기도 한다고. 사실 이곳의 단팥죽은 어른 주먹 하나 들어가면 가득 찰 것 같은 작은 그릇에 커다락 새알심 하나, 그 위에 밤과 팥알, 계핏가루 등을 고명으로 올린다. 그릇이나 담음새가 일본식인 것은 맞다. 하지만 국산 재료에 국산 인심. 주인장은 일본과는 아무 인연이 없다고 한다.머릿속으로 수백 번은 리와인드해서 본 영화 의 한 장면.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까 봐 성냥갑만 한 간판을 달고 영업을 하고 있는 민박집, 그곳을 찾은 주인공과 민박집을 둘러싼 평범하지만 비범해 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 아침마다 메르시 체조라는 기이한 체조를 하고, 사색을 한답시고 가만히 앉아 빙수 한 그릇씩 들고 앉아서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하지만 무엇보다 백미는 끼니마다 마주하는 소박한 성찬. 신선한 야채를 찜통에서 꺼내 통후츠 스슥 갈아 뿌려 내놓으면 군침이 꿀꺽, 마당에 옹기종기 모여 아무런 양념하지 않은 고기를 즉석에서 구워 접시 하나 받쳐 들고 말없이 오물거리고 있는 걸 보면 당장 뛰쳐나가서 "한우 한 근 주세요"외치며 고기를 끊엉고 싶은 마음이 번쩍 든다. 영화의 핵심 인물은 땅바닥에 빨간 목도리를 질질 끌면서 당당하게 등장해 역시나 목도리 휘날리며 퇴장하는 팥빙수 아줌마 사쿠라 상. 민박집을 둘러싼 사람들은 사쿠라 상의 팥빙수 광팬들이다. 은근한 불에 반나절은 족히 달여야 하는 단팥을 오도카니 서서 지켜보며 영혼을 불어넣던 사쿠라 상은 결정적인 순간이 되었을 때 불을 내린다. 냄새를 맡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징면 화면 밖에서 봐도 정말 맛있는 순간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는 말한다. "중요한 건 조급해하지 않는 것"이라는 명대사를 남긴다. 본 식객은 집에서 팥 앙금을 직접 만들어보고 나서야 사람들이 왜 다 만들어진 팥 앙금을 사 먹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한 덩이의 팥 앙금을 내리기 위해 아침부터 온종일 냄비는 보글보글 끓고 있어야 했던 것이다. 벼것도 아닌 팥 앙금 하나에 영혼을 바치는 일은 그래서 숭고한 것이다. 설탕 가득 넣어 달큰한 맛이 아닌 깔끔하게 단맛은 그 어떤 맛과도 비교할 수가 없덨다. 둘째집의 가스레인지 위에는 지그러진 냄비 안에서 불리고, 끓여서, 앙금을 내린 단팥죽이 끊임없이 보글보글 끓고 있다.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자세한내용은 엘라서울 12월 본지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