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실 벽에 걸린 커다란 그림 두 점은 하시시 박의 2017년 작품. 얀 바넥의 1930년대 라운지 체어에 앉은 그녀가 딸 본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라운지 체어 앞에 놓인 사이드 테이블은 알바 알토. 가운데 사이드보드는 피터 흐비트와 묄가드 닐센의 작품.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놓인 의자는 ‘스마일 문’의 래더 체어. 수영장 사다리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어린이용 의자다.

부엌 장식장에 진열된 다양한 소품들. 그중에서 하시시 박이 가장 아끼는 것은 첫째 시하가 손으로 빚은 도자 컵이다.

개인 작업물과 소설책이 거꾸로 꽂혀 있는 책장.

강렬한 오렌지 컬러의 USM 협탁과 빈티지 테이블 램프.

책상 높이와 의자 높이가 딱 맞게 재단된 바우하우스의 책상·의자 세트. 책상에는 아일랜드 출신의 가구 디자이너 아일린 그레이의 테이블 램프가 놓여 있다.

하시시 박이 직접 촬영한 자신의 모습.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결심한 이유 태어난 이후 지금껏 아파트에서만 살았다. 어느 날 남편과 함께 공간과 환경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결심이 서더라. 주택으로 이사 가야겠다고. ‘다 똑같은 문, 입구, 구조에서 커가는 아이들이 과연 얼마나 창의적인 꿈을 꿀 수 있을까?’란 대목이었다. 그렇게 지난 2월, 서울 근교에 자리한 이 집으로 이사를 왔다. 전세로 온 거라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할 시점이 되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할지도 모르지만 다시 아파트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전원주택이 아이들이 꿈꾸고 좀 더 능동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확신이 들었으니까.
집의 첫인상은 어땠나. 특별히 마음에 든 요소가 있다면 천장이 높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1층 부엌 통창을 통해 한눈에 보이는 마당이 멋졌다.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부엌이다. 부엌에 아름답게 스미는 자연광은 앞으로 다른 집을 구할 때도 포기하지 않는 최우선 조건이 될 것 같다.
색깔도, 형태도 각양각색인 여러 개의 의자들이 집 안 곳곳에 놓여 있다 이미 충분히 많지만 갖고 싶은 의자가 계속 생겨서 고민이다. 그중에서도 엔조 마리의 레드 플라스틱 체어를 가장 아낀다. 심플하지만 따뜻하고, 어떤 공간에 둬도 잘 어울린다. 그의 위트있는 디자인이 힘든 일상을 위로해 줄 때가 종종 있다.
인테리어를 구상하며 꿈꾼 무드나 참고한 레퍼런스가 있나 그 무드는 아이들이 독립하면 완성하는 걸로(웃음).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 특정 무드를 실현하기란 너무 어려운 것 같다.
집에 꼭 들이고 싶었던 가구나 인테리어 소품은 사계절에 어울리면서도 보관과 세탁이 모두 용이한 합리적인 가격대의 러그를 구하고 싶었다. 이사 오면서 4개 정도 구매했는데 아쉽게도 100% 마음에 드는 것은 못 찾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있다면 부엌의 정수기와 믹서기 사이 벽(웃음). 그 틈에 놓인 이광호 작가의 초록색 나무 스툴 위에 앉아 몰래 스마트폰을 들여다볼 때 제일 아늑하고 안전한 느낌이 든다.
재택근무가 보편화되면서 서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하시시 박의 서재는 어떤 취향으로 꾸며져 있는지 가족과 함께 사용하는 거실이나 부엌, 침실 등에는 따뜻한 느낌의 목재 가구를 두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스틸 가구를 좋아해서 서재엔 바우하우스의 아이템이 많다. 오래 앉아 일하려면 책상 높이와 의자 높이가 잘 맞아야 하기에 아예 세트로 디자인된 것을 들여놓았다.
‘사진가의 집’에 가장 필요한 것은 빛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테리어 소품도 조명인데, 그중에서도 간접조명을 선호한다. 플로 램프, 테이블 램프 등에 자주 눈길이 가는 편이다.
음악에 대한 애정도 깊은 것으로 안다. 집 안에는 주로 어떤 음악이 흐르나 거실에서는 주로 아이들의 지루함을 달래줄 만화 주제곡이나 댄스 음악을 틀어놓는다. 서재에서는 요즘 애니멀 콜렉티브의 음악을 즐겨 듣는다. 원래부터 실험적인 사운드를 좋아하는데 요즘은 아방가르드 재즈에 꽂혀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좋은 건 집 전체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파티 음악일 텐데 손님을 초대할 수 없으니 너무 아쉽다.

아이들을 위해 설치한 간이 수영장.

창문으로 들여다본 침실.

정원에서 마음껏 뛰놀고 있는 아이들.
마당이 있는 전원주택을 꿈꾸는 이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전한다면 해가 떠 있는 시간에 꾸준히 해가 잘 드는 집인지 확인해야 한다. 아침에 빛이 잘 드는 집이라 하더라도 이른 오후부터 햇살이 물러가는 집은 난방비가 정말 많이 나온다. 또 기후변화에 대해 공부하다가 알게 된 건데, 지형 아래쪽에 있는 집이나 수맥이 흐르는 곳은 피해야 한다. 실제로 수맥이 흐르는 곳의 보도블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울퉁불퉁 변형이 생겨 있더라.
하시시 박·봉태규 두 사람은 환경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부부다. 환경을 위해 가정에서 노력하는 것들이 있다면 채식 위주의 식단이 그렇다. 환경을 생각해 우리 둘의 식단만큼은 육류를 배제하고 있다. 차도 경유가 아닌 것으로 택했다. 이 외에도 장바구니를 가지고 다니고, 텀블러를 이용하는 등 생활 속에서 충분히 지킬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잊지 않고 실천하려 한다.
SNS를 통해 비건에 가까운 유기농 식단도 자주 공개한다. 가족의 반응이 가장 뜨거웠던 메뉴는 첫째 시하는 브로콜리를 싫어하는데 유기농 왕소금과 잣 그리고 올리브오일에 살짝 볶아주니 무척 좋아하며 잘 먹었다. 둘째 본비는 의외로 비트와 팔라펠을 좋아했다. 콩류를 좋아해 신기했다. 아마 코로나19가 아니라면 이렇게 삼시 세끼 다양한 요리를 식탁 위에 내놓을 수 있었을까 싶다.
요즘 일상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 가족과 북유럽을 여행하며 찍은 사진으로 꾸린 개인전 〈Casual Pisces 4〉를 마치고 여성의 몸에 대한 전시를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코로나19가 정말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하고 또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우선 집에 주로 머물며 가족의 안전에 만전을 기하는 중이다.
앞으로 집이라는 공간은 어떻게 변화할까 이제 모두에게 집은 단순한 소유 개념을 벗어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나를 서포트해 주는 공간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래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집을 잘 꾸미거나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에 관심을 갖는 것 아닐까?
하시시 박에게 집이란 내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닌 것. 그렇게 밝고 긍정적이기만 한 성격이 아닌데 가족과 있으면 매 순간 벅차게 행복하고, 사소한 일에도 감사함을 느끼는 사람이 된다. 서로에게 서로가 있어 행복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믿는다.

다이닝 공간에 놓인 샹들리에는 이사 올 때부터 있던 것. 부부가 조금씩 사 모은 빈티지 체어들이 둥근 나왕 원목 식탁을 둘러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