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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리 언니'를 보면 기분이 좋다 #ELLE 보이스

역시 그냥 좋은 게 아니었다.

BYELLE2020.10.12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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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를 보면 기분이 좋았던 이유
tV를 켜도, 유튜브에 접속해도 운동선수부터 가수, 배우, 개그우먼 등 직종을 가리지 않고 ‘언니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요즘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런 시기라면 오랜 시간 쑥스럽게 감춰둔 내 마음을 좀 깊게 털어놔도 되지 않을까. 내가 제일 좋아해온 ‘효리 언니’에 대해서 말이다.  

 
이효리를 좋아하게 된 건 초등학생이었던 핑클 시절부터였다. 시대의 아이콘다운 외모도 멋졌지만 당당함과 솔직함, 유머까지 겸비한 성격도 좋았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과 부러운 건 다른 이야기. ‘네가 뭔데’ 싶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녀를 열렬히 응원하며 좋아할 뿐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랬던 내가 그녀의 ‘찐팬’이 된 건 무려 8년 전 〈힐링캠프〉 덕이 크다. 2집 〈It’s Hyorish〉의 ‘U-go-girl’대성공 이후 야심 차게 냈던 3집 앨범이 표절 시비에 휘말리면서 2년간 공백기를 가진 뒤 나온 첫 프로그램이었다. 그녀는 사건 이후 술만 마시며 칩거하다가 지인의 권유로 정신과를 찾았다고 했다. 그때 처음 ‘나 자신을 방치하고 남의 눈만 생각하며 살았구나’를 깨달았고, 비로소 자신과 화해했다고 말했다. 그 후엔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집중했고, 유기견을 입양하는 동물보호 운동과 함께 채식을 시작했음을 덧붙였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이젠 나와 동물, 사회적 약자를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렇게 고백하는 그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편안하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2008년 방영 당시 열심히 챙겨 봤던 〈이효리의 오프 더 레코드〉 속 그녀의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관찰 예능’을 표방한 리얼리티 쇼였던 그 프로그램에서 내 눈에 들어온 건 화려하고 멋진 모습보다 다음과 같은 장면들이었다. 사실이 아닌 내용의 기사와 악플 때문에 종일 침대에 누워 울고, 집에 식기세척기가 있었는지도 모르는, 텅 빈 냉장고에 우유도 없이 그릇에 시리얼만 담아 먹던 모습. 어쩌면 당연한, 화려함 이면의 불안정함을 직면했던 기억이 난다.
 
내 안의 결핍이나 문제를 깨닫는 건 어렵고, 깨달은 후 변화하는 건 더 어렵다. 〈놀면 뭐하니?〉에서 ‘싹쓰리’에 이어 ‘환불원정대’로 활약 중인 그녀의 모습을 정주행하며 얼마 전 읽은 도리스 메르틴의 〈아비투스〉가 떠올랐다.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제시한 이 개념은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타인과 나를 구별 짓는 취향과 습관’ 등을 일컫는데, 저자는 아비투스를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7가지 자본을 심리자본(낙관주의, 회복탄력성, 감정적 평온), 문화자본(책, 예술 작품 등 일상에서의 지적 취향), 지식자본(졸업장, 학위 등의 지식), 경제자본(돈, 부동산 같은 물질 재산), 신체자본(건강, 외모 등의 생물학적 특징), 언어자본(언어 자산과 표현 형식), 사회자본(롤모델과 인맥, 멘토)으로 규정짓는다. 달랑 일곱 가지 기준으로 삶을 나눌 수는 없겠지만 한눈에 들어오는 그럴싸한 범주가 흥미로웠다. 이 기준으로 내가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을 가졌는지, 또 삶의 우선순위를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피상적인 평가지만 〈이효리의 오프 더 레코드〉 속 그녀는 다른 자본에 비해 심리자본이 유달리 빈약하고 불안정해 보였다. 스스로 가장이라는 무게, 잊히면 안 된다는 부담감에 일에만 집착한 채 자신을 돌보지 못했다고 고백했던 것처럼 말이다. 지식과 경제, 신체와 언어, 사회자본이 눈에 보이는 자본이라면 심리와 문화자본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 자본이라고 할 수 있다. 나 또한 내적 자본을 중요하게 여김과 동시에 내게 부족한 자본이라고 느끼곤 했다. 내가 늘 부러워하고 질투했던 대상은 낙관적이고 평온한 사람들이었다. 자신에게 만족하며 비관과는 거리가 먼, 그래서 타인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들. 이런 심리자본은 어릴 때의 환경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했다. 노력해서 나아질 수는 있겠지만 태생부터 편안하고 안정적인 상황에서 자란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녀가 좋으면서도 안쓰럽고, 부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녀의 행보를 쭉 지켜보며 그 생각은 차츰 바뀌었다. 결혼하고 제주도로 이주해 데뷔 후 처음으로 4년간의 공백기를 가지며 요가로 마음 수련을 했다는 그녀. 〈효리네 민박〉(2017) 속 그녀는 외면과 내면 모두 적당한 균형을 갖춘 것처럼 보였다.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이 어떤 광고를 찍고 싶은지 묻자 “유기농 생리대!”라고 망설임 없이 답하는 모습에서, 여전히 유기견 봉사활동을 하고, 청각장애인들이 만드는 구두 ‘아지오’를 스스로 돈을 들여 광고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여전히, 아니 전보다 더 넓어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렇다면 나 또한 넓어질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이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아는 건 중요하다. 삶의 방향을 정하고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적 자본을 잘 쌓아나가고 싶다. 조금 더 나를 믿으며 편안해지고 싶다. 그래서 나에게서 타인으로, 절망보단 희망으로 시선을 옮기고 싶다. 그녀를 보면서 꼭 그렇게 되고 싶다고, 또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훌륭한 사람 말고 되고 싶은 거 아무나 되라고,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바꾸려고 노력하니 좋은 사람이 오더라고 무심히 말하는 그녀가 좋다. 그래서 ‘효리 언니’를 보면 기분이 좋다. 역시 그냥 좋은 게 아니었다.
 
writer_백세희
10년 넘게 겪은 경도의 우울증을 솔직하게 써 내려간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로 베스트셀러 작가에 등극했다. 나의 마음을 돌보는 일만큼 동물권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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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이마루
  • 디자인 정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