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확행과 청약통장 사이
」노을을 감상하며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작은 테라스와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서재 그리고 온전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하노키 욕조…. 불과 몇 년 전, 미래의 집을 상상할 때 떠오르던 많은 것이 빠르게 현실의 언어로 이관되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 나는 공공분양과 민영분양, 전용면적 40㎡ 이상 혹은 이하, 수도권과 비수도권, 가족 구성원 수 등을 기준으로 집에 대한 욕망을 정리해야 하는 나이가 됐다. 이미 가진 자들이 더 많은 집을 가지려 하고, ‘조금 양보해서 이 정도면 오케이’라고 생각했던 경기권 아파트조차 천정부지로 가격이 뛰는 것을 보며 드림 하우스에 대한 꿈은 점점 더 요원해짐을 느낀다. 물론 당장이라도 혼자 살 공간을 마련할 순 있다. 필요한 돈은 보증금 2000만 원에 월 60만 원 정도(금융 앱으로 확인한 바로는 금리 2.9%로 주거래 은행에서 약 4000만 원을 대출받을 수 있다). 실제로 친구 중엔 경제적 독립과 동시에 자취를 시작한 케이스도 많았다. 그들은 매번 이렇게 강조했다. 조상까지 나서서 도와야 가능하다는 아파트 분양 당첨에 목을 메느니 차라리 하루빨리 혼자만의 세상을 꾸리고 그 안에서 ‘소확행’을 만끽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고.
물론 정답은 없다. 현실을 만끽하는 것과 미래를 위한 준비 사이 그 어딘가에서 나는 여전히 방황 중이다. 베일에 싸인 미래의 집을 위해 가성비 좋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포기하긴 싫지만, 당장의 행복만을 좇으며 살다가 평생 원룸에 갇혀 사는 것도 싫다. 때로는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삶을 꿈꾸기도 하니까. 어쨌든 다가오는 25일엔 어김없이 청약 12회 차 분이 출금될 것이다. 매달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5만 원에는 이런 복잡한 심경이 얽혀 있다.
직장생활 2년 차. 갈팡질팡하는 20대 후반 싱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