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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매매? 그 유명한 '영끌러'가 여기 있소 #에디터's_집썰

나는 지금 부모님 집에 얹혀산다.

BYELLE2020.10.08
 

그 유명한 ‘영끌러’가 여기 있소

나는 지금 부모님 집에 얹혀산다. 살던 집의 계약 만료일과 이사 갈 집의 입주 가능일이 맞지 않아 장장 3개월간의 집 잃은 삶을 자처했다. 남편과 아이, 두 대의 SUV 차량을 꽉 채운 어마어마한 짐을 앞세워 부모님 집에 들어서며 임시 무주택자 라이프의 스타트를 끊던 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약간 절망감이 들었다. 입주 가능한 날짜가 이렇게나 맞지 않는다면 다른 집을 선택하면 될 것을, 그 집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불과 5개월 만에 5000~6000만 원이 오른 아파트 실매매가 그래프 앞에서 나와 남편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나마 우리가 넘볼 수 있는 수준의 희귀한 가격대이면서도 온종일 해가 드는 남서향에 탁 트인 전망을 지닌 그 ‘물건’은 이사 시기 따위 맞지 않아도 꼭 잡아야 했다. 실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인장이 다 마를 때까지도 감수해야 할 불편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서울에 직장이 있는 맞벌이 부부와 두 살배기 아이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고 망설이다 자칫 아이와 함께 집 없는 신세가 되고 말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서울의 오래된 아파트를 한 채 샀다.
아이가 있는 삶은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결혼 후 남편과 부동산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나는 말했다. “집을 꼭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 집을 갖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어마어마한 돈을 차라리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에 쓰면서 살고 싶어.” 복권에 당첨되는 엄청난 운을 만나지 않는다면 집을 사지 않겠다고, 그래도 잘살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관점을 재설정해야 했다. 나에겐 곧 어린이집에 보내야 할 아이가 있고, 그 아이는 대부분의 변화에 대한 저항이 강하고 예민한 기질을 타고났다. 물리적으로 안정된 환경이 필요한 아이였다. 다시 전세 계약을 한다면 2년을 살다가 또다시 떠밀려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면 아이는 우리와 함께 2년 주기로 이 동네 저 동네를 전전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던 순간부터 부동산 공부에 열을 올리며 남편과 내 마음은 수없이 전세와 매매를 오갔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매수할 것이냐, 다시 전세 계약을 할 것이냐. 우리 부부에게는 몇 번의 뼈아픈 순간이 있다. 2015년 초, 신혼집을 알아보던 시절 우리가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으다)’로 집을 샀다면 지금쯤 빚진 돈의 세 배쯤 오른 집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신혼집에서 또 다른 전셋집으로 옮겨 가던 때. 그때라도 ‘영끌’했다면 지금쯤 대출받은 돈의 두 배쯤 오른 집에서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땐 아이가 있는 삶을 그리지도 않던 때였다. 지금만큼 집을 소유하는 일에 절박하지 않았고 ‘영끌’할 용기 같은 게 도무지 생기지 않던 때였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 우리는 매일 밤 언제가 부동산 매수의 적기일지, 고점은 언제일지, 앞으로 매매가가 얼마나 더 오를 것인지 등을 고민했지만 명쾌한 답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의 아파트 계약은 그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든 결과일 뿐이다. 금리가 어느 때보다 낮았고, 우리에겐 적어도 5년에서 8년쯤 이동 없이 머무를 집이 필요했으며, 어디로든 이사해야 하는 시점에 마지노선으로 정한 매매가와 조건을 지닌 물건을 발견한 것뿐. 만약 이번에 아파트를 사지 않았다면 과연 마음이 편했을까. 아마 남편과 나는 다시 전세 계약한 2년 동안 새벽마다 벌건 눈으로 각종 부동산 정보와 앱에 매달렸을 것이다. 나는 아파트 매수를 결정하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이후 더 이상 부동산 앱을 열어보지 않았다. “대출, 융자, 이자가 나를 일으킨다”는 ‘둘째 이모 김다비’의 명언을 되새기면서. 
 
딩크족&무주택자를 지향했으나 현재 두 살 난 아이가 있는 30대 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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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 편집부
  • 디자인 김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