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가서 말하면 재수 없어 보일까 봐 말 못 하는 이야기를 이 자리에서 털어놓고 싶다. 메이크업 일을 하다 보면 사람들 얼굴만 보게 되는데, 코로나 도래 후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눈썹만 바라보게 된다. 잘 못된 눈썹 문신과 아이브로펜슬이 뭉쳐있는 눈썹, 그린 눈썹 밑으로 정리되지 않은 채 내려온 털까지! 신경에 거슬릴 때마다 두 눈을 꽉 감고 고개를 털어낸다. 그렇지만 이따금 외치고 싶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네 눈썹은 짝짝이 눈썹!!
메이크업 아티스트 (29) 승무원들의 고질적인 직업병은 비슷하다. 버스를 타건, 지하철을 타건, 영화관을 가건 밀폐된 공간에만 가면 그렇게들 출구를 찾는다. 만약에 극장에서 불이 났을 때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 순식간에 파악하고, ‘만약 저 좌석에 불이 나면 관람객들을 이렇게 대피시켜야겠다’며 관객일 때도 구체적인 플랜을 짠다. 조종사인 나에게는 직업병이 추가된다. 택시 앞 좌석에 타면 나도 모르게 자꾸 기어에 손이 간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기어를 잡고, ‘아이코, 죄송합니다’ 사과한 적이 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한두 번 벌어진 일은 아니다.
조종사 (34) 퇴근하고 집에 들어설 때부터 기분이 묘연했다. 엄마가 그렇게 신난 건 처음 보았고,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나훈아 콘서트가 벌어지고 있었으니까. 흥이 잔뜩 오른 엄마는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영상을 보자마자 나는 무언가 이상함을 직감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스르륵 뱉어 버린 말이 화근이었다. “화면이 좀 느린 거 같은데? 립싱크야?” 아, 그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토록 차디찬 엄마의 시선은 오랜만이었다.
사운드 디자이너 (34) 맞춤법 잘 아는 사람의 소개팅 ‘선톡’은 섹시하다. 정확하게 적힌 문장의 정갈함은 상대방의 확실한 성격을 나타내니깐. 문장을 다루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다 보면 마음속에 항상 빨간 펜을 들고 있다. 이따금 내 아이돌 ‘최애’의 인스타그램 속 비문도 쉬이 넘어가기 어렵다(누나가 귀여우니까 봐줄게). 온라인 게임을 할 때였다. 또박또박 맞춤법을 맞춰 채팅했더니, 내게 돌아온 말은 가관이었다. ‘60년생이세요?’ ‘아저씨, 여기서 왜 이러세요’. 여자라고 분명 말했는데, 아줌마도 아니고 아저씨라니. 삼십대에게 60대라니.
에디터 (33) 올리브영 동료들은 비슷한 직업병을 앓고 있다. 친구들과 카페에 가서도 자동문 열리는 소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속으로 ‘안녕하세요~ 올리브영입니다’를 말하려다 삼키는 거까진 괜찮다. 좀 더 중증 단계가 오면, 편의점과 마트에서도 직업병을 숨길 수 없다. 물건을 쇼핑하다가도 선반 뒤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제품들을 앞으로 배치해놓고, 삐뚤어진 가격표를 바르게 정리한다. 말하다 보니 평범하게 느껴지는데, 그 모습을 자각했을 때에 짠한 마음은 오래오래 남는다.
올리브영 직원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