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그렇게 마음을 굳혀가는 동안에도 불안은 꼬리를 물고 찾아왔다. 아이가 없어서 ‘진짜 행복’을 모르고 사는 건 아닐까? 아이가 없어서 좋은 어른이 되지 못하면 어떡하지? 아이가 없어서 배우자와 멀어지지는 않을까? 언젠가는 아이 없이 산 것을 후회하게 될까? 여자라면 당연히 결혼해 아이를 낳는 것이 기본값으로 설정된 사회에서 학습해 온 불안이 최고조에 이른 어느 날, 나는 엄마가 되지 않기로 한 다른 여성들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아이를 원하지 않는 기혼 여성을 향해 ‘이기적인 여자’ ‘저출산의 주범’이라고 비난하거나 ‘불행하게 자라서 피해의식이 있는 거다’ ‘아이를 못 낳는 거면서 안 낳는 척한다’는 억측을 서슴없이 내뱉는 이들이 흔한 세상에서 다들 어떻게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들도 나처럼 흔들리는지, 그럼에도 지금의 삶이 마음에 드는지, 엄마가 아닌 여성으로서 무엇을 경험하는지 알고 싶었다.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는 내가 그렇게 만난 열일곱 명의 여성을 인터뷰해 쓴 책이다. 지난 6월 출간을 앞두고 제목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며, 출판사에서는 이 문장에 반감을 느낄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를 전해왔다. 나에게 단 한 번도 아이 문제를 언급한 적 없는 아빠조차 “거, 제목은 좀 별로더라”라고 슬쩍 한마디할 정도니 그 예측이 틀린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꼭 이 제목의 책을 세상에 내놓고 싶었다. 어떤 여성이든 나는 엄마가 되지 않기로 했다고 죄책감이나 두려움 없이 태연하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이 나온 뒤, 한 매체에서 인터뷰를 요청해 왔다. 알고 보니 진행 기자 역시 주위 사람들의 간섭에 시달리는 무자녀 여성이었다. 이 인터뷰는 한 포털사이트의 메인 화면에 노출되었다.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예상 가능한 비난이 대부분이었다(책에 실린 ‘온갖 무례와 오지랖의 퍼레이드’라는 글에서 나는 이런 댓글들을 저주형, 궁예형, 애국형, 위선형으로 분류해 두었다). 슥슥 스크롤을 내리다가 “저렇게 생긴 여자는 애를 안 낳는 게 낫다”는 댓글에서는 약간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과연 매체에 사진이 실린 여성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는 ‘얼평’이 빠질 리 없지! 물론 조금도 상처를 받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혹시 내가 개인적 원한을 산 적이 있는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모욕적인 글을 본 적도 있다. 집요하고 적극적인 악의는 아무리 의미 없는 말이라 해도 마음에 끈적하게 달라붙은 찌꺼기처럼 씻어내는 데 적지 않은 에너지가 든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위로받았다는 독자들에게 나 역시 위로받았다. 100% 확신을 가진 사람만이 무자녀로 살기를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가 나만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도 힘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땐 무척 기뻤다. 아이를 낳지 않는 문제로 의견이 갈려 만나던 사람과 헤어진 적 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는 여성, 아이를 낳을지 말지 여전히 고민 중이지만 그 고민은 자신을 위한 것이 틀림없다고 다짐하는 여성, 사회로부터 주입받은 메시지 때문에 부유하던 자신의 마음에 정당한 빛과 필요한 힘을 주어서 고맙다는 여성의 메일을 받을 때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약 지금 어딘가에서 ‘낳지 않음’에 관해 고민하는 여성이 있다면 다시 한 번 말해 주고 싶다. 엄마 됨 혹은 되지 않음을 둘러싼 여성의 고민은 정당한 것이고, 그 답을 찾기까지 충분한 시간을 들여도 괜찮으며,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는 나쁘거나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writer_최지은
10년 넘게 대중문화 웹 매거진에서 일하며 글을 썼다. 〈괜찮지 않습니다〉와 딩크 여성들의 삶을 인터뷰한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