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퀘어 네크라인 블랙 롱 드레스는 Leha. 귀고리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레오퍼드 패턴의 러플 디테일 드레스는 Romanchic.



목걸이와 티셔츠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가죽 팬츠는 8 by Yoox. 스트랩 샌들은 & Other Stories.
오늘 이렇게 보니 단발이 잘 어울려요 여름이기도 하고, 조금 이미지 변화를 주고 싶어서요. 사람들이 ‘너는 작으니까 단발이 잘 어울릴 것 같아’라고 해서 시도해 봤죠.
사진 촬영은 즐기는 편인가요 사진 찍는 거 좋아해요. 예전엔 혼자 삼각대 세워놓고 옷 갈아입으면서 사진 찍곤 했어요. 연예인 되고 나서 유명해지면 화보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어요. 패션 잡지도 즐겨 봤고요. 좋은 부록은 꼭 챙겼죠.
코로나19로 행사가 줄어서 전에 비해 여유가 생겼겠어요 바쁘기는 계속 바쁜 것 같아요. 행사 대신 방송 활동을 더 많이 하고 있어서요. 그래도 전보다 잠잘 시간은 좀 생겼어요.
‘저희 부모님이 정말 팬입니다’라는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들었겠죠 하하. 촬영장이든 방송국을 가면 ‘저희 부모님이 팬인데, 사인 한 번만’이란 요청을 항상 받아요. 영상편지, 영상통화도 해드리고요.
중장년층의 열정적인 팬덤으로 유명해요. 그런 사랑과 지지는 과연 어떤 느낌인가요 만날 만나다가 한동안 못 보니까 너무 허전하더라고요. 잠깐이라도 절 보려고 방송국 출퇴근길에 기다리시는데, 지난번에는 팬을 오랜만에 보니까 눈물이 났어요. 그 정도로 그립고 소중했던 것 같아요.
최근 음악 예능 프로그램 〈악인전〉을 통해 다양한 협업 무대를 보여줬어요 제 안에 숨어 있는 ‘끼’가 얼마나 많은지, 누군가 끄집어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어요. 방송을 통해 힙합이나 랩, 댄스에 도전하게 돼서 정말 공부가 된 것 같아요. ‘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과 용기가 생겼어요.
‘트로트 가수’ 송가인의 스펙트럼이 확장되는 것처럼 본인에 대해 대중이 아직 잘 모르거나 다르게 알고 있는 게 있다면 저는 팬들이 저를 다 꿰뚫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짧은 시간 내에 너무 많이 보여드린 것 같아요. 그렇지만 아직도 저를 모르는 분도 많다고 생각해요. 매 순간 무대에 올라갈 때마다 ‘이분들은 나를 처음 볼 거야’ 하고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해요.
노래가 천직인 건 말할 필요가 없고, 방송이나 예능 프로그램 출연도 적성에 맞나요 평소 친구를 만날 때처럼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사람들이 빵빵 터지고 웃더라고요. 꾸밈없이 솔직한 내 모습을 보여주는 걸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걸 알았어요. 사투리 한 번 쓸 때마다 너무 좋아해주니까, 방송도 어렵지 않고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언제부터 자신 안의 남다른 ‘끼’를 감지했나요 어릴 때의 저는 지금과 정반대였어요. 아주 얌전하고 소극적이었어요. 같은 학교에 다니는지 애들이 잘 모를 만큼. 시골에서 조용히 살다가 대학교에 가서 전국 각지에서 온 친구들과 어울리며, 그때부터 성격이 활발해졌어요. 무대에 서고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아요.
본인에게 음악, 무대는 어떤 의미인가요 많은 분들이 제 노래를 듣고 마음의 치유를 얻었다 하고, 심지어 병이 나았다는 분도 계세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노래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라는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그분들의 병이 낫는다는데, 제가 뭔들 못하겠어요. 책임감을 갖고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미스트롯〉을 만나기 전까지 무명의 시간이 있었어요. 그 시절 자신에게 건 주문은 ‘앞으로 살면서 이보다 더 힘들 일이 많을 텐데, 이건 별거 아니야’라고 항상 마인드 컨트롤을 했어요. 앞으로 애도 낳아야 하고, 언젠가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아픔도 겪을 텐데, 그런 고통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스스로 달래고 버틴 것 같아요. ‘나는 그나마 행복한 사람이야. 사지 멀쩡한데 내가 왜 못해.’

스트랩 디테일을 더한 오프숄더 드레스는 Romanchic.
이번 화보 촬영에 도움을 준 ‘송가인 친구’에게 당신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봤어요. “엄청 의리 있고 털털하다” “변함 없다”고 하더군요 많은 분들이 저한테 “네가 변하지 않고 똑같아서 너무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뜨고 나서도 안 변해서 신기하다고요. 주변 환경이 바뀌고 저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만 달라졌을 뿐, 전 그대로예요. 털털하고 내숭 못 떠는.
자취 경력이 꽤 되는 걸로 알아요 네, 예고에 진학하면서 오빠와 함께 쭉 자취를 했어요. 집안일은 안 해본 게 없죠. 찬물에 손빨래도 하고, 오빠 도시락도 싸주고 그랬어요.
방송이나 공연에서 친오빠와 함께하는 모습이 보기 좋더군요 원래 화목한 가족이었는데, 제가 잘되고 나서 더 돈독해졌어요. 재미난 일이 있으면 늘 카톡방에서 공유해요. 부모님이 끊임없는 사랑을 준 덕분인 것 같아요.
이제 서울이란 도시는 익숙해졌나요 처음에 올라와서는 많이 낯설었는데, 살다 보니 적응됐어요. 이제는 시골 가면 불편한 점이 많아졌죠. 그래도 시골이 더 좋긴 해요. 아무래도 어린 시절의 향수 같은 것이 있으니까. 진도 고향집에 내려가면 꼭 몸살이 나요. 서울에서는 항상 긴장하고 있다가 집에 가면 몸이 풀어지면서 목도 쉬고요. 하루는 아파서 쉬어야 해요.
서울 집에 혼자 있을 때는 뭘 하나요 밥 해먹고 이것저것 해요. 자취 경력이 오래되니까 요리는 기가 막히게 잘하죠. 돼지 등갈비가 있으면 묵은지김치찜을 해먹고, 친구가 꽃게를 보내주면 꽃게탕을 해먹고요. 몇 번 배달 음식도 시켜 먹어봤는데, 살림을 해서인지 안 맞더라고요. 김치만 있어도 내 손에 물 묻혀 밥 지어 먹는 게 맛있어요.
요리 외에 즐겨 하는 일은 그림도 그려요. 그림을 그리면 잡생각이 안 들어서 좋아요. 예전에 비녀 만들어 팔던 재료가 남아 있어서 지금도 가끔 만들기도 하고요. 한번 꽂히니까 새벽 3시까지 만들게 되더라고요. 가만히 있으면 몸이 처지기 때문에 뭔가 하는 걸 좋아해요. 나중에 그림 전시도 해보고 싶고, 도자기도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요.

베스트와 보디수트, 쇼트팬츠는 모두 Zara. 넓은 칼라의 셔츠는 Low Classic. 벨트는 H&M.

네크라인에 여밈 장식을 더한 풀오버 니트 톱은 Recto. 마린 쇼트팬츠는 Zara. 파이톤 텍스처의 로퍼는 Kuhee.
지금의 트로트 열풍은 송가인 덕분이란 말에 동의하나요 대한민국 트로트 시장이 침체돼 있었는데 〈미스트롯〉이 붐을 일으켰고 아무래도 제가 한몫했죠(웃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트로트를 일으켜 세우다니. 그래서 부담감도 있고, 책임감을 느껴요.
여전히 트로트 음악은 듣지 않는 이들에게 그 매력을 알려준다면 일상에서 틀어놓으면 자기도 모르는 새 흥얼거리게 되는 게 트로트의 매력인 것 같아요. 굳이 억지로 들을 필요는 없지만, 듣고 있으면 누구나 신나고 흥이 나니까요. 특히 기분이 처져 있거나 우울할 때 들으면 좋지요.
좀 유치한 질문일지 모르겠지만, 유명해져서 가장 좋은 점은 뭔가요 정말 혜택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어딜 가나 서비스도 주시고, 할인도 많이 받고. 식당에 자리 없다고 했다가, 송가인이 간다면 없던 방도 생겨요(웃음). 그런 점도 좋지만, 무엇보다 팬들이 주는 사랑이 제일 큰 것 같아요. 제가 언제 이런 사랑을 받아보겠어요. 저를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팬들을 볼 때 ‘연예인 해서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느 스타, 어느 아이돌 팬도 부럽지 않아요. 저희 팬들이 얼마나 능력이 많은지, 찾으면 없는 직업이 없어요. 너무 든든해요. 내 부모, 내 가족이 해줄 수 없는 면들이 또 있는 것 같아요.
갑자기 너무 알려지고 바빠져서… 좀 혼란하거나 힘들지는 않나요 어우, 많았어요. ‘내가 이렇게 잠도 못 자고, 내가 원하던 삶은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두세 번 정도 울었던 것 같아요. 편안함에서 오는 삶의 만족도는 무명 시절이 더 높았던 것 같아요. 지금 행복에 감사하면서 살아야죠. 남들은 하고 싶어도 못 서는 무대에 서니까.
그게 바로 왕관의 무게겠죠 맞아요. 그 무게를 이겨내야 한다더군요. 처음엔 무슨 말이지? 했는데, 차차 어떤 의미인지 느낌이 오더라고요. 늦게까지 일하고 집에 왔을 때, 천장을 바라보고 누우면 왠지 공허한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내가 이렇게 돈을 벌려고 하는 건 아닌데, 나는 이러지 않아도 행복할 텐데.
〈미스트롯〉에 안 나가고 무명생활을 계속 했어도 과연 행복했을까요 보통 사람처럼 평범하고 소소하게, 작은 무대든 적은 페이든 계속 노래하며 살았을 것 같아요. 그래도 나름 만족하면서 행복하게 지냈을 거예요. 계속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대신 새로운 꿈을 꾸거나 원하는 일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됐죠 제가 힘들었다가 잘됐으니까, 그만큼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해야 또 복이 온다고 믿고요.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고, 트로트 하는 후배들, 국악 하는 예술가를 후원해 주고 싶어요.
안 그래도 국악 무대에 꾸준히 서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명창 선생님들께 가끔 공연하자고 연락 오는데, 정말 놀랍죠. ‘와! 이런 선생님이 나를 찾으시다니!’ 저 때문에 국악 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뿌듯해요. 국악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하고 싶어요. 뮤지컬은 티켓값이 10만~20만 원 해도 관객이 몰리는데 국악은 무료 공연을 해도 보러 오는 사람이 없는 게 아쉬워요.
국악을 전공한 게 확실히 본인의 메리트라고 생각하나요 그렇죠. 국악의 기초가 깔려 있기에 제가 이렇게 노래할 수 있는 거죠. 그렇지 않았다면 깊이 있고, 한이 있는 목소리가 안 나왔을 것 같아요. 국악 하는 사람치고 노래 못하는 사람이 없어요. ‘끼’ 많고 잘하는 친구들이 워낙 많아서, 국악도 붐이 일어나고 세계화가 되면 좋겠어요.
혹시 20대에 못 해봐서 아쉬운 게 있나요 생각해 보면 많겠죠. 그런데 저는 그게 다 욕심인 것 같아요. 내가 저걸 안 해도 괜찮은 건데,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보고 싶은 마음? 남들이 명품 가방 메니까, 나도 갖고 싶었죠. 그런데 돈이 없으니까 내 주제에 맞게 지하상가에서 몇 만 원짜리 사서 써도 즐거웠어요. 나중에 막상 명품이 생겨도 기대했던 것만큼 좋지는 않더라고요.
어떻게 사는 것이 본인이 진정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하나요 돈은 적당히 먹고살 만큼만 벌어도 괜찮아요. 그리고 주택에서 살고 싶어요. 마당이 있어서 텃밭도 가꾸고 바비큐 파티도 할 수 있는 집요.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사는 것, 원래 제 꿈은 그거였어요. 지금은 내 노래를 듣고 싶은 이들을 위해 정말 좋은 노래를 들려드리는 게 가장 행복하고 의미 있는 일 같아요.
현재 계획 중이거나 마음에 품은 생각은 신곡을 준비하고 있어요. 몇몇 사람들이 저보고 ‘히트곡도 없는 가수’라고 할 때마다 ‘내가 히트곡 내고 만다!’는 오기로 도전하고 있어요. 큰 장소에서 단독 콘서트도 열고 싶고, 언젠가 소외 지역이나 돈 없는 사람들을 위한 무료 콘서트도 해보고 싶어요. 그냥 내 돈 한번 쓰면 어때요, 그만큼 버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