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 그녀는 예뻤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만 나이 50세, 미혼, 200개가 넘는 브랜드의 모델로 활동했고 직업만 해도 125개. 70여 국가의 전통 의상을 입고 전 세계를 순방하는가 하면 여태껏 시도한 패션 스타일은 1조 개. 앤디 워홀이 오브제로 작품을 만들고 칼 라거펠트가 하나뿐인 블랙 드레스를 만들기도 한 그 모든 영예의 주인공.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인형 바비와 남자 친구 켄을 위해 진태옥, 이명순, 김재현, 홍승완, 박승건 등 국내 최고의 디자이너 17명이 뭉쳤다. 12월14일 국내 최초로 열린 <바비&켄 어워드 2010>의 아이콘 바비의 50년.::바비,칼 라거펠트,앤디 워홀,진태옥,이명순,김재현,최범석,박승건,핸들러,김범,황정음,엘르,elle.co.kr:: | ::바비,칼 라거펠트,앤디 워홀,진태옥,이명순

딸 바바라가 친구들과 인형놀이를 하는 모습을 본 루스 핸들러가 종이 인형에 입체감을 불어넣어 3D로 만들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주변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당시만 해도 통통한 아기 모습을 한 유아용 인형이 대세였다.1959년 뉴욕완구박람회에서 최초로 선을 보인 바비의 직업은 패션 모델이었다. 찰랑이는 포니테일 헤어를 하고 블랙 앤 화이트 스트라이프 수영복 차림으로 매끈한 몸매를 뽐내는 바비는 그 전까지 는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무엇이었다. 결과는 대성공. 첫선을 보인 그 해에만 30만 개의 바비가 팔려나갔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몰랐다. 바비 밀리선트 로버트(Barbie Millicent Roberts), 당시 3달러였던 위스콘신 출신의 금발머리 인형이 그 후로도 50여 년 간 10억 개 이상 팔려나가며 전 세계 소녀들의 어린 시절의 상징이자 당대의 패션과 문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반영하는 트렌드 아이콘이 될 줄은. 그 50여 년 동안 바비가 가진 직업만 해도 무려 125개. 아직 미국에서 흑인 대통령도 나오기 전인 1992년에는 일찌감치 대통령 후보도 선보였다. 우주인이 처음 등장한 건 1965년, 1973년엔 외과 의사, 1976년엔 올림픽 선수, 1998년엔 농구 선수, 최근엔 아메리칸 아이돌 우승자(2005), 요리사(2008년), 컴퓨터 엔지니어(2010), 뉴스 앵커(2010) 등의 직업도 등장했다. 이는 어린 소녀들의 가장 친한 친구로서 뭐든 꿈꿀 수 있음을 북돋워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한때 비현실적인 신체 비율로 아이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고 왜곡된 성 역할을 고착시킨다는 오명을 얻었던 바비지만 이제는 여성의 영역을 확장하는 데 앞장서겠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세 살에서 열 살 사이의 소녀 가운데 90%가 최소한 하나 이상의 바비를 가지고 있을 정도다. 얼마 전 바비는 ‘2010년 주목해야 할 10명의 여성’을 선정했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쓴 작가 조앤 롤링을 비롯 패션 블로거, 패션 매거진 편집장, 올림픽 스노보더, LPGA 골퍼, 교수 등 하나같이 요즘 여성들이 워너비로 삼는 존재들로서 당대 여성들이 가장 동경하는 직업군이 무엇인지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단순히 직업이나 의상만 바뀐 건 아니다. 바비의 상징이던 푸른 눈과 긴 금발머리는 다양한 인종으로 변신했고 전 세계 70개국 이상의 전통 의상을 입기도 하는 등 꾸준히 세계화를 시도하고 있다. 1959년 최초로 출시된 바비의 경우 지난 2006년 경매에서 무려 3800만원 상당의 금액으로 낙찰되기도 했다. 앤디 워홀을 비롯 바비는 당대의 순수 예술가들에게까지 영감을 주고 또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하는 오브제가 되기도 했다. 버버리, 디올 지방시 등 145개가 넘는 패션과 뷰티 브랜드에서 바비를 위한 의상을 선보였다. 하나의 룩을 선보이기까지 오직 바비의 스타일을 위해 함께 머리를 짜내는 전문가들만 100여 명에 달한다. 지난해 뉴욕 패션위크에선 바비 탄생 50주년을 맞아 무려 50명의 디자이너가 컬래버레이션 패션쇼를 벌이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별한 에디션이 하나씩 탄생할 때마다 전 세계 컬렉터들은 눈을 반짝이고, 디자이너들은 팜므파탈 바비를 통해 자신만의 시그너처 스타일을 온 세상에 각인시킬 수 있으니 결국 모두가 윈윈하는 게임인 것이다. 바비 인형에 처음 눈을 뜨는 것이 아이가 소녀가 돼간다는 표식이라면, 아끼던 바비를 다시 장난감 박스 안으로 집어넣는 것은 어른이 돼가는 작은 증거일것이다. 여전히 바비에게 아이뿐 아니라 어른마저 꿈꾸게 하는 힘이 있다면, 오늘도 또 고사리 같은 누군가의 손에 새롭게 바비가 쥐어진다면, 아직 누군가의 소중한 꿈으로 존재하는 한 바비는 그렇게 영원할 것이다. 이제 바비는 인형에서 출발해 패션뿐 아니라 라이프스타일까지 아우르는 토털 컬렉션으로 성장해 국내에도 현대백화점 중동점, 킨텍스점, 롯데백화점 일산점, 부산 광복점에 침구나 식기, 배스 제품 등을 중심으로 ‘바비 홈 Barbie Home’ 스토어가 오픈했다. 1 바비 창시자인 핸들러 부부. 2 다양한 디자이너들의 에디션을 입고 있는 화려한 모습의 바비들. 1 1959년 최초의 바비와 1961년 최초의 켄. 2 바비와 켄은 1961년 광고 촬영장에서 처음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3 1965년 우주인으로 변신한 바비.4 1995년 도나카란 에디션.5 2009년 뉴욕 패션위크. 바비 50주년을 기념해 열린 패션쇼에서 완벽하게 바비 스타일을 재현한 모델. 의상은 알렉산더 왕.6 바비 50주년을 기념하는 스페셜 에디션. 2009년. 7 에서 영예의 두 주인공 바비와 켄으로 선정된 황정음과 김범. Barbie’s history 하룻밤만 지나도 유행이 바뀌는 시대에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한결같이 바비가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그저 단순한 인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 시대를 가장 빠르게 반영하는 아이콘으로 거듭났기 때문일 것이다. 데뷔에서 지금까지 시대별로 변화를 거듭해온 바비의 모습과 점차 토털 컬렉션으로 발전하고 있는 바비의 현주소. 1959뉴욕완구 박람회에서 바비 최초 등장. 발랄한 포니테일에 블랙 앤 화이트 스트라이프 수영복, 오픈 토 슈즈와 선글라스, 골드 귀고리를 한 모습으로. 1961 바비에게 드디어 남자친구가 생겼다. 이름은 켄 칼슨(Ken Carson). 적당한 근육의 훤칠한 몸매에 완벽한 배려심까지 왕자님이 따로 없다. 1960s 스커트 길이는 점점 짧아졌고 머리는 점점 길어졌다. 버블 커트 헤어와 퍼스트레이디 패션을 한 재클린 케네디 스타일을 비롯 60년대 스타일을 고루 보여줬다.1980s 80년대 특유의 블링블링한 장식과 대담한 스타일. 패드를 넣어 강조한 어깨선을 넓게 강조하고 커다란 벨트에 레깅스를 매치한 바비 앤 더 로커가 대표적이다.1990s 유행에 발맞춰 더욱 화려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특히 제네레이션 걸 바비(Gener-ation Girl™ Barbie)는 90년대의 발랄한 프레피 룩으로 사랑을 받았다. 2004 밸런타인데이, 바비와 켄이 잠시 떨어져 있기로 했다는 소식에 200만 명이 바비 닷컴에 접속해 새 남자친구를 구해주려 시도하나 결국 2006년 둘은 재결합했다.2009 뉴욕 패션위크에선 바비의 탄생 50주년을 기념해 캘빈 클라인, 토리버치, 알렉산더 왕 등 무려 50명의 디자이너가 패션쇼를 선보였다. 2010 드디어 서울에서 바비와 켄 어워드 개최. 바비와 켄과 가장 어울리는 스타를 선정해 시상하고 17명의 디자이너들이 패션쇼를 펼쳤다.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