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6월 〈여성과 축구 #게임을 바꾸다〉 컨퍼런스에 참석한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가 올해 75주년을 맞았어요. 공교롭게도 〈엘르〉 프랑스 역시 같은 해에 창간되었지요. 1945년 설립 당시 유네스코의 주된 임무는 무엇이었나 유네스코의 설립 취지는 아주 단순했어요. 더 많은 사람이 서로를 존중하고, 전쟁을 멈추는 것이었죠. 물론 국가 간의 경제 교류와 정치적 합의도 중요하지만, 사람 사이의 유대는 평화를 목표로 삼아야 더욱 단단한 토대 위에서 만들어지니까요.
그 단단한 토대를 떠받치는 기둥은 무엇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문화 교류와 교육, 과학 협력과 지식의 자유로운 흐름이죠. 이런 것들이 보장될 때 비로소 우리는 출신과 언어, 견해에 구애받지 않고 동등한 존엄성과 보편적 인간성을 깨닫게 돼요. 유네스코는 이 모든 활동을 기반으로 지속적으로 진정한 지적 외교를 구축해 왔어요. 기술과 인구 구조, 환경 격변을 전 세계가 경험하고 있는 지금, 유네스코의 궁극적 소명은 다름 아닌 마음의 평화예요.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유네스코의 임무인 ‘유산’에도 이 기둥이 적용될 수 있을까요 세계유산(World Heritage)의 원칙도 마찬가지예요. 마추픽추와 아부 심벨, 앙코르와트와 몽생미셸에 이르기까지 문화와 시대 그리고 그것을 만든 사람들을 초월한 세계적 유산을 세상에 소개하고 함께 보존하면서 보편적 인간성을 깨달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유네스코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인가요 다국적 기구이자 지적 기관인 유네스코는 항상 아이디어의 실험장이에요. 유네스코 정체성의 핵심이자 가장 큰 장점이죠. 유네스코는 저작권, 문화적 다양성, 세계문화유산, 글로벌 지식의 사회화 등 비교적 최근에 대두된 개념들을 세계적으로 적용하는 시도를 해왔습니다. 또한 리바이 스트라우스를 비롯해 파블로 네루다, 넬슨 만델라, 좀 더 현대로 와서는 제인 구달과 로베르 바댕테르에 이르기까지 세계적 지성들의 훌륭한 목소리를 듣고 인본주의 개념을 더욱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죠.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인한 위기에 봉착한 가운데, 얼마 전 유네스코는 온라인 포럼 ‘다가올 세상을 예측하다(Imaging the world to come)’를 개최했어요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우리는 세상을 제대로 분석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어요. 지금의 문제를 예민하게 자각하고, 과연 우리가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모습과 가치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질문해 보았죠. 이 같은 배경에서 온라인 포럼을 개최했어요. 여성의 목소리를 담았고요. 여성 없이는 다가올 세상을 구축할 수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가 느끼기에 코로나19로 인한 위기에서 여성의 의견을 들을 기회는 많지 않더군요.
포럼에 담은 목소리의 주인공들은 어떤 여성인가요 물리학, 기후학, 국제관계, 아프리카 지역 등을 연구하고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지식인, 예술가, 활동가 그리고 전문가들이에요. 코로나19로 인한 위기의 모든 복잡다단한 측면을 더 잘 이해하고, 사고를 확장할 수 있게 해주는 이들이죠. 모두 유네스코 유튜브 채널에서 들어보았으면 좋겠네요!
코로나19로 인한 위기가 남성과 여성에게 차별적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나요 불행히도 코로나19 때문에 소녀와 여성들은 훨씬 더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어요. 세계 보건 인력의 70%는 여성이고, 여성들은 저임금 일자리의 대부분을 차지해요. 문제는 이를 아주 당연하게 여긴다는 거예요.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주로 집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여성은 성폭력과 가정폭력의 위험에 이전보다 더 많이 노출되고 있고요.
그 외에 또 어떤 불평등이 존재한다고 보나요 2019년 유네스코가 성별 정보 격차의 규모를 파악한 보고서에 따르면 소녀와 여성은 기본적인 디지털 기술을 익힐 기회가 남성보다 4배나 부족하죠. 학교 폐쇄로 인한 원격 교육이 이루어지고, 더 넓게는 문화생활과 커뮤니케이션이 온라인 공간으로 전환되면서 기존에 존재하던 성별 정보 격차가 훨씬 더 벌어지게 됐어요. 이에 유네스코는 양성 평등을 모든 분야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코로나19 위기 대응에서도 여성들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고 있어요. 장기적 결과에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것이고요.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이전 유네스코 조사에 따르면 학령기 아동 2억5800만 명이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최근 조사 결과에서는 그 숫자가 15억 명에 이르더군요 지금 겪고 있는 코로나19 위기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지요. 이 상황에서 디지털의 활용이 효과적인 해결책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전 세계 학생의 43%(7억600만 명)가 가정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어요. 교사 중 3분의 2는 지속적으로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이 부족하고요.

오드레 아줄레가 국제연합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분열되고 위기에 봉착한 지금의 세상에 ‘집단지성’이 여전히 유효할까요 그럼요. 집단지성은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막 전쟁에서 벗어난 혼돈의 세상에서 국제연합을 창설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의 힘을 합해야 비로소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강한 신념 때문이었어요.
지금 문제는 그때와 다르지 않나요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원리는 동일해요. 기술 혁명의 윤리적 적용, 기후 변화와 생물 다양성의 붕괴 등 지금의 복잡한 글로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분야를 막론하고 전 세계의 전문가, 사상가, 활동가들이 필요해요. 각각의 문제를 통합적 관점으로 보게 해주기 때문에 유네스코의 다학제적 관점이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 위기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었나요 이 위기가 실로 많은 교훈을 남길 거라는 사실요. 모두가 디지털 시대라는 기회를 알게 되었고, 디지털 기술이 실제로 교사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한계 역시 알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교육은 규정과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와 공감 그리고 참여가 중요한 요소라는 점도 알게 됐죠.
다가올 미래를 어떻게 예측하나요 지난해 12월, 우리는 교육의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위원회를 발족했습니다. 교육 분야는 앞으로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으로 인해 엄청난 진화를 거칠 텐데요, 그런 이유에서 유네스코는 지난해 겨울 인공지능 윤리에 대한 첫 권고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인공지능을 공공선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활용한다면 그야말로 가공할 만한 도구가 될 거예요. 반대로 무분별하게 사용한다면 여러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테죠. 미래를 예측하고 이에 대비하고 준비하는 것, 이것이 바로 유네스코의 중요한 임무입니다.

제40회 UN 정기총회 개회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