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에디터와 모델들이 열광하는 그녀와의 토크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모두가 이자벨 마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녀의 옷을 입고 싶어 한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자신을 향한 환호와 짝사랑에 담담한 모습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옷으로 런웨이와 리얼웨이를 점령한 그녀와의 프렌치 토크. ::이자벨 마랑,개성있는,편안한,시크한,스페셜 장소, 레스토랑, 카페, 무대,행사,평상,일상,집,디자이너,옷,런웨이,리얼웨이,그녀,인터뷰,엘르,엣진,elle. co.kr:: | ::이자벨 마랑,개성있는,편안한,시크한,스페셜 장소

햇살이 비추는 넓직한 그녀의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한 이자벨 마랑. 이번 시즌에 선보인 의상을 직접 입었다. 꾸밈없는 그녀의 모습은 모든 여성을 위한 옷을 만든다는 그녀의 디자인 철학을 보여준다.그녀는 마치 벌거벗은 듯했다. 흐릿한 블랙 베스트와 닳을대로 닳아 헴라인 아래로 호주머니가 다 보이는 데님 쇼츠 차림 속으로 그녀의 중성적인 몸매가 보였다. 게다가 맨발인 채로 헤어는 아무렇게나 틀어올렸고 메이크업은 전혀 하지 않은 상태였다. 43세의 이자벨 마랑은 젊음에 대해선 너무나 무심해 보였다. 흔히 얘기하는 헝클어진 듯한 프렌치 시크가 몸에 배어 있는 모습이었다. 그녀가 활짝 미소를 띄우며 자신의 모습이 그저 일상적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작업할 땐 늘 이렇게 홀가분한 차림인 걸요.”이자벨 마랑은 패션계에선 참 독특한 존재다. 그녀는 지난 16여 년간 조용히 비전을 가다듬어왔고 성공은 하룻밤 사이에 찾아왔다. 굳이 스포트라이트를 즐기지 않는, 셀러브리티들이 애호하는 독립적인 디자이너지만 묘하게도 빅 레이블과 하이 스트리트 패션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제 브랜드는 현실적인 아이덴티티를 지니고 있어요. 그게 바로 저 자신이고 제가 가진 개성이죠. 이자벨 마랑의 패션은 늘 내가 누구인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에 관한 것이니까요.” 그녀가 말했다.파리의 여름날 오후, 11구의 인적이 드문 작은 길을 따라 숨겨진 이자벨 마랑의 작업실을 찾았다. 흰색 내부는 유리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으로 더할 나위 없이 밝았고 갈라진 콘크리트 바닥은 뜨거운 열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1994년 브랜드를 론칭하면서부터 사용한 이곳은 온갖 시크한 잡동사니들로 가득차 있었다.2010 F/W 컬렉션 의상들이 이제 막 도착한 작업실은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벽면을 따라 매달려 있는 주얼리들은 저마다 가닥가닥을 흔들며 반짝이는 빛을 냈다. 뭔가를 놓을 수 있는 모든 곳에는 패브릭 조각이나 책 더미, 드로잉, 사진들이 흩어져 있거나 붙어 있었다. 한쪽 구석에 놓여진 낡은 우드 테이블 앞에선 마랑이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 다 식어버린 고기, 그린 샐러드 그리고 빵. 별로 어울리지 않는 음식들이었다. 담배꽁초는 소스 접시 위에 놓여져 있었고 유리잔에선 콜라의 기포가 보글거렸다. 그녀는 옅은 핑크빛 플레이드 리넨 셔츠를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냉장고 위에 놓인 화병에서 살짝 시들어 있는 수국과 같은 색이었다.마랑의 애티튜드와 미적인 감성은 서로 닮아 있었다. 쿨하지만 절제된 톤, 글래머러스하지만 애쓰지 않은 무심한 느낌. 보헤미안스러우면서도 지극히 파리지앵이었다. 삐걱거리는 나무 의자에서 태닝한 다리를 꼰 채 그녀는 빵에 올리브오일을 찍으며 먹고 말하기를 반복했다. 그녀에겐 참 일상적인 모습이었다.지난 2년간, 그녀의 브랜드는 놀랍게 성장했다. 마랑은 상상하지 못했던 지금까지의 상황을 무척 재미있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파리에 3개의 매장과 세계에 몇 안 되는 아웃렛 매장을 두고 있는, 일종의 컬트 디자이너에 가까웠다. 하지만 패션 에디터와 모델들이 그녀를 따르며 열광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이름을 딴 메인 라인과 함께 세컨드 라인인 에또알(Etoile)까지 론칭했다. 여성들이 ‘실제로’ 입길 원하는, 요란하지 않은 옷들이 곧 사업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 주기 시작했다. “아주 오랫동안 디자이너가 실제 여성들을 위한 ‘현실적인’ 옷을 만든다는 게 그리 유쾌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졌어요. 과장되거나 드라마틱하지 않은 옷들은 진정한 패션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죠.” 그녀가 말했다. 1 작업실 한쪽 기둥에 매달려 있는 에스닉한 주얼리와 책상 옆에 놓인 구두.2 마랑의 책상 주위를 가득 채운 각종 원단과 패턴 샘플, 컬렉션 의상들.그녀의 성공은 바로 2009년 그녀가 선보인 한 켤레의 부츠에서 시작했다. 뾰족한 삼각 형태의 힐에 스터드로 마구 장식한 블랙 스웨이드 부츠는 2009 F/W 쇼 캣워크에 처음 등장했다. 몇 달 후 사람들은 이 부츠를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서고, 대기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전 세계에선 이자벨 마랑 부츠의 특별한 성공 스토리를 담은 뉴스들이 쏟아져나왔다. 부츠는 수 천 유로라는 가격표를 달고 이베이에 나오기도 했지만 쥐도 새도 모르게 낙찰돼 팔려 나갔다. 같은 시즌에 선보인 레오퍼드 실크 드레스도 역시 화두에 올랐다. 레이첼 와이즈는 레드 카펫에서, 미란다 커는 평소 거리에서 멋지게 그 드레스를 소화했다. 다음 시즌 그녀의 쇼를 보기 위해 몰려든 프런트로의 여인들 역시 하나같이 같은 레오퍼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러자 다들 도대체 이자벨 마랑이 누군지 알고 싶어 했다. “제 꿈은 한 번도 변한 적 없어요. 단 한 번도!”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이 모든 이상 현상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듯 눈을 굴렸다. “제가 옷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건 바로 저 자신과 애티튜드일 뿐이에요. 저는 항상 하나의 패션에 대해 얘기해왔죠. 굳이 차이점을 들자면 처음에 브랜드를 론칭했을 때는 제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했다는 거였어요. 현재는 지금까지 해온 모든 작업들이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시기인 것 같아요. 예전보다 성숙해진 거죠.” 이런저런 제스처를 취하며 설명할 때마다 그녀의 팔목에선 2010 S/S 컬렉션의 터쿠아즈 팔찌가 찰랑거리며 소리를 냈다.프랑스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를 둔 마랑은 파리에서 태어났다. 스튜디오 베르소에서 공부했지만 졸업 직후에는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할 만큼 여유가 없었다. 대신 그녀는 주얼리를 디자인하면서 짬짬이 옷을 만들며 작업을 이어나갔다. 1994년, 노력 끝에 그녀는 첫 컬렉션을 선보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천천히 그리고 조용하게 브랜드를 키워왔다. 거창한 팡파레나 호들갑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절대 공격적으로 일을 밀어붙이지 않았어요. 그저 모든 게 우리에게 다가왔죠.”이자벨 마랑 컬렉션에는 늘 비슷한 아이템이 등장하곤 한다. 흐느적한 시어 티셔츠, 부드러운 스웨트 셔츠, 루스한 미니드레스, 크롭트 재킷 그리고 스키니 실크 팬츠가 그것들이다. 데님도 빼놓을 수 없다. 약간의 퍼와 레더, 반짝이는 장식 아이템은 물론 흥미로운 프린트와 워싱된 컬러도 자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함께 어우러져 웨어러블한 룩을 만들어낸다. “제게 키워드는 언제나 그렇듯이 신중함, 스타일 그리고 애티듀드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게 편안함이죠. 프랑스 여성들은 외출하기 전 거울 앞에서 이 옷 저 옷을 입어보며 뭘 입을까 고민하죠. 하지만 결국 집 밖을 나가기 전 집어 드는 건 낡은 데님 팬츠예요. 하루 종일 입고 있던 데님을 다시 입으며 ‘짜증나지만 이걸 입어야 나답다고 느껴지는걸!’이라며 소리치죠. 제 패션이 바로 그런 점을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돼요.”작업실 중앙에는 행어들이 원을 이루면서 마치 디자이너의 작업을 감싸고 있는 듯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책상은 한쪽 측면으로 밀려 있고 푹신한 소파까지 놓여 있지만 그녀가 주로 일하는 곳은 바로 ‘거울’ 앞이었다. 그녀는 거울 앞에서 모든 의상을 입어보고 다시 작업한 후 또다시 입어보며 마지막까지 점검했다. “전 피팅 모델이 없어요. 컬렉션에 선보일 아이템 하나 하나를 입어보고 느껴보죠. 제가 직접 입을 것이 아니라 해도 그 옷을 정말 좋아할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실제로 옷이 편안한지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고요. 이건 특별히 여성 디자이너들만 가질 수 있는 애티튜드예요. 남자들은 절대 느낄 수 없죠.” 작업실에는 아직 완성하지 않은 듯한 모피 칼라와 엄청난 양의 화이트 레이스, 에스닉한 프린트가 새겨진 천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다가올 2011 S/S 컬렉션의 대략적인 방향을 보여주는 듯했다. 커다란 화이트 보드에는 그녀에게 영감을 주는 듯한 많은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각 사진에는 특정한 애티튜드라든가 혹은 뚜렷한 자신만의 스타일을 지닌 모델들이 담겨 있었다. 브로케이드 스커트와 데님 셔츠 차림을 한 알렉사 청 사진을 보며 마랑은 “이번 시즌 알렉사는 제게 가장 중요한 영향을 줬어요.”라고 했다. 또 다른 사진에는 케이티 홈즈가 있었다. 그녀는 캐멀 코트로 몸을 감싼 후 레드 에르메스 버킨백을 들고 진한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모습이었다. 스틸레토힐을 신은 채 두터운 파카를 입고 카메라 렌즈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리한나의 모습도 보였다. “사람들은 종종 저를 바네사 브루노와 비교하곤 하죠. 둘 다 파리 출신인데다 비슷한 시기에 일을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그녀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전 입버릇처럼 그 부분에 대해 설명해요. 그녀는 블론드 여성을 위해, 저는 브루넷 여성을 위해 디자인한다고 말이죠!”확실히 마랑은 인위적이거나 의미 없이 치장한 아름다움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전 섹시함을 좋아하지만 그걸 표현하기 위해선 신중함이 깃들여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게 섹시하다는 건 네크라인이나 숄더 라인에서 나오는 거지 결코 가슴과 관계된 건 아니죠. 어쩌면 제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네요! 전 중성적인 느낌의 여성을 좋아해요. 가슴이 풍만한 블론드는 제 타입이 아니죠.”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이 영화나 특정한 테마 등에서 영감을 얻는 반면에 마랑의 영감은 모델 개개인에서 비롯된다는 건 흥미롭다. “직관이나 본능을 따를수록 성공해요. 적당히 타협한다면 그건 가짜가 돼버리고 사람들은 곧바로 알아차릴 거예요. 전 정말 제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고 그건 항상 옳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게 바로 고객이 원하는 거죠. 이 모든 게 맞아떨어지면 정말 환상적이에요!” 하지만 그녀는 지금의 성공에 대해 침착하고 겸손한 태도로 일관했다. “놀랍지만 제가 그럴듯한 야망을 가지고 일한 건 아니에요. 제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리라는 건 더더욱 꿈꿀 수도 없는 것이었죠. 그저 제가 좋아하는 옷을 디자인하는 것이 유일한 포부였어요. 옷을 통해 제 영혼에 담겨 있는 그 무엇에 도달하고 싶었으니까요.”“컬렉션에 만족해본 적은 없어요. 하지만 완벽을 추구하려는 제 성향이 절 끌어올리는 자극제가 된 것 같아요. 판매 실적이라든가 돈에 관해 말하는 건 아니에요. 제가 신경 쓰는 건 언제나 제 삶과 가족이죠.” 이자벨 마랑의 연인은 프랑스 핸드백 디자이너 제롬 드레퓌스다. 그와는 여섯 살이 된 아들 탈(Tal)을 두고 있다. “우린 12년 동안 함께했지만 결혼식을 올릴 시간이 없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전 거의 외출도 안하는 편이에요. 일을 마치고 제롬과 아들이 반겨주는 집으로 돌아가는 게 일상이죠.” 하지만 주말이 되면 가족과 함께 꼭 향하는 곳이 있다. 바로 파리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작은 오두막이다. “예전에 모네와 세잔이 그림을 그리던 숲에 우리 오두막이 있어요. 정말 아름답고 정말 조용한 곳이죠. 전기도, 히터 시설도 없어요. 우린 그냥 야외에 앉아 있다가 식사하고 강에 뛰어들어 수영을 즐기곤 하죠.” 그럼 겨울에는 어쩌느냐는 질문에 그녀가 답했다. “당연히 뜨거운 물병을 들고 다니죠!” 그녀의 꾸밈 없는 미소가 눈에 들어왔다.마랑은 자리에서 일어나 걸치고 있던 핑크 플레이드 셔츠를 내려 놓았다. 그녀는 오늘도 참으로 그녀답게 마감하고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2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