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사랑법 || 엘르코리아 (ELLE KOREA)
SOCIETY

코로나 시대의 사랑법

홈 트레이닝에 도전하고 제멋대로 칵테일을 만들며 지지고 볶던 지난 두 달간의 풍경.

ELLE BY ELLE 2020.08.15
 
성수동, 연남동, 핫 플레이스만 골라 데이트를 즐기던 커플이 이젠 차 안이나 집에서 데이트한다는 기사를 봤다. 자동차 극장과 드라이브 스루 매장의 매출이 상승했으며, 배달 앱과 IPTV 지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는 기사도. 양쪽 다 부모님 집에서 얹혀사는 커플에겐 한없이 부러운 이야기 아닐까 싶다. 만약 불편한 자세로 잠시나마 부둥켜안고 있을 수 있는 차도 없다면?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아프다. 나는 파리에서 프랑스인 남자친구와 살고 있다. 파리 시는 록다운 이후 통행 허가증 없이 외출하는 것을 금지했다. 생리 중인 아내 대신 탐폰을 사러 나간 남편이 경관에게 붙잡혀 벌금을 냈다는 등의 이야기가 트위터에 나돌았다. 당시 경찰은 필요한 사람이 직접 나가야지 왜 남편이 대신 바깥으로 나왔냐고 추궁했다는데…. 록다운 초기에는 프랑스에 파스타 면, 밀가루 등의 보존 식품이 동이 났다. 집 밖으로 한 발자국 나가지 않고도 온갖 요리가 배달되는 한국이 이때만큼 그리웠던 적 있었을까.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낼 수 있으니 사정은 괜찮은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통행금지 기간 중 1주일에 딱 한 번 데이트를 할 수 있었던 내 친구는 여자친구가 자기 집에 올 때마다 안부를 물을 틈도 없이 일단 샤워부터 할 것을 권했다고 말하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통행금지 기간을 버틸 수 없어 벨기에에 있는 남자친구 부모님 댁으로 거처를 옮겼다는 친구 커플도 있다. 10대 커플은 누구보다 힘든 고문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평소 길가에 오붓하게 붙어 있는 연인들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남자친구마저 이때만큼은 인터넷에서 발급받은 통행허가증을 스마트폰에 고이 저장한 채 거리를 방황하는 청춘들을 안타깝게 여겼으니까. 카페와 레스토랑, 술집도 모두 문을 닫은 허허벌판에서 방황하는 수많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며 나 또한 실감했다. ‘우린 정말 이상한 시대에 사랑을 하고 있구나.’
 
코로나가 성행하기 바로 직전, 5평이 채 안 되던 방에서 부대끼는 삶을 살다가 올해 초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온 우리에겐 발품 팔아 만든 커튼으로 집을 꾸미겠다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모든 게 연기됐다. 준비 중인 어학 시험은 취소됐고, 시험이 끝나고 가려 했던 봉마르셰 백화점도 굳게 문을 닫았다. 그야말로 남자친구와 나, 우리 둘만의 세상이 시작됐다. 원래부터 집순이, 집돌이였는데 남자친구 다니엘이 재택 근무를 시작하면서 우린 본격적으로 ‘집콕’ 능력치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손댄 것은 찔끔찔끔 다니던 스쿼시를 그만둔 후 입을 일 없던 낡은 반바지와 운동용 레깅스. 1주일에 한 번 장 보러 가는 게 유일한 운동이었던 나는 신체 일부가 영영 퇴화해 버릴 것 같은 위기감에 휩싸여 유튜브의 30일 요가 프로그램을 클릭했다. 
 
다운독, 워리어 원, 워리어 투….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생소한 요가 자세 이름을 곱씹어볼 틈도 없이 화면 속의 강사가 천천히 자세를 바꾸는 동안 자꾸만 한쪽으로 넘어가는 나와 땀을 뚝뚝 흘리며 왼쪽 다리로 부들부들 버티는 다니엘의 모습은 가히 애처로웠다. 하지만 선물 받은 뒤로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던 요가 매트를 꺼내 둘이 나눠 쓰며 나는 티셔츠 아래로 드러난 남자친구의 옆구리를 사랑스럽게 쓰다듬었고, 남자친구는 오랜만에 보는 내 레깅스 차림에 환호했다. 실질적인 수확도 있었다. ‘30일 마스터’ 요가 챌린지가 반환점을 돌던 날, 남자친구는 두 손을 땅에 댄 채 몸을 띄우는 바카아사나 자세에 성공했다. 그럼 나는? 요가 자세를 취하느라 오랜만에 뚜렷해진 다니엘의 근육을 감상하는 것으로도 행복했으니, 그걸로 됐다. 
 
땀을 흘렸으니 이젠 마실 차례. 홈 트레이닝 다음으로 우리가 발 들인 세계는 홈 칵테일이었다. 슈퍼마켓에 있는 모든 IPA 맥주를 맛본 우리는 칵테일 재료상으로 눈을 돌렸다. 고민 끝에 멜론 리큐어와 블랙커런트 리큐어를 집 안에 들여놓은 다음부턴 칵테일 만드는 일이 공식 일과가 됐다. 남자친구는 이참에 어떤 레스토랑에 가도 찾던 키르(와인을 베이스로 한 칵테일) 만들기에 몰두했고, 나는 칼루아 밀크와 상그리아 같은 간단한 술을 맘대로 만들어 마셨다. 비율도 순서도 제각각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내가 맛있다는데. 비록 내가 만든 미도리 사워를 놓고 다니엘은 ‘외계인 피 같다’는 악평을 내놓았지만.
 
물론 함께 있다는 사실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말을 왜 그렇게 하느냐’로 몇 시간 동안 냉전을 벌이기도 하고, 대화 시간이 늘어나니 자연스럽게 과거 일이 쓸데없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도 했다.(이사 오자마자 커튼부터 달았어야지) 이럴 때 들리는 옆집 소음은 왜 더 거슬리는지. 옆집 사람들이 싸우고 소리를 지를 때마다 부대낄 일이 늘어나면 누구나 지지고 볶게 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부둥켜안은 채로 즐기던 달콤한 낮잠과 재택 근무 중 요령껏 마시던 맥주 한 잔의 기쁨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었다. 
 
5월 중순, 영원 같던 통행금지령이 끝나면서 많은 커플이 해방감을 만끽했을 때 한 달 뒤 다시 출근하게 된 다니엘과 나는 가벼운 분리 불안을 경험했다. 다니엘이 만든 모차렐라 가지 그라탱과 시금치가 들어간 크림 카레를 음미하는 것도 엄청난 행복이었는데(뜨거웠던 요가 열정은 쉽게 수그러들었다)…. 물처럼 마시던 맥주로 어느새 볼록해진 배를 볼 때마다 대체로 행복했던 지난 두 달간의 여운이 짙어진다. 록다운의 여파로 나는 아직도 여분의 올리브오일을 쟁여놓지 않으면 불안하다. 과묵한 우리 고양이 오닉스는 나 하나로는 부족한지 아침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슬피 울곤 한다. 남자친구 역시 ‘1일 1키르’의 행복을 잊지 못하고 아쉬워한다. 모두 크고 작은 록다운의 후유증이다. 가장 큰 깨달음은 함께하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는 것. 나와 다니엘은 조만간 프랑스 남부로 떠나 ‘언택트’ 휴가를 즐길 생각이다. 이젠 핫 플레이스에 가지 않아도, 최신 영화를 보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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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일러스트레이터 CAROLE HENAFF
    글 LEE CHAE YI
    에디터 류가영
    디자인 온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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