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적 차별 금지법'의 대표 발의자, 장혜영 의원 || 엘르코리아 (ELLE KOREA)
SOCIETY

'포괄적 차별 금지법'의 대표 발의자, 장혜영 의원

정의당의 혁신위원장 장혜영은 차별 없는 세계에서 평범한 할머니로 늙는 꿈을 꾼다.

ELLE BY ELLE 2020.08.07
 
화이트 셔츠와 와이드 팬츠는 모두 Kindersa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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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반대’가 21대 국회의 첫 국민동의청원이 됐다는 보도가 있었어요. 이 정도의 반대를 예상했나요 오히려 많이 바뀌었다는 걸 체감하고 있어요. 찬성하고 응원하고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반대자들이야 계속해서 집중적이고 조직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왔죠. 하지만 그보다 두터운 긍정의 분위기가 느껴져요. 
 
국회 앞에서 매일 반대자들에게 시달리고 있다고요 포괄적 차별금지법 반대자들은 국회 앞에서 굉장히 성실하게 반대하고 있어요. 매일 그들보다 더 성실하게 하겠다고 다짐해요. 변화는 더 성실한 쪽이 만드는 거니까요. 
 
법안을 둘러싼 상황이 매일 업데이트되고 있어요. 정의당이 국회에서 불교, 천주교, 원불교, 기독교의 4개 종단과 간담회를 열기도 했고요 분위기가 ‘홀리’했어요. 정치는 어떻게 보면 세속의 일이잖아요. 사회의 진일보를 위해 뜻을 모아주었다는 점이 감동스러웠죠. 간담회에 함께한 분들은 차별금지법이 얼마나 오랫동안 일부 개신교 종파의 반대로 미뤄졌는지 아는 분들이었어요. 이번에는 통과시킬 수 있기를 바라며 뜻을 모아주었어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정의당의 21대 총선 공약이었죠 21대 국회가 시작될 때 저희가 중요하게 생각한 5대 법안 중 하나였어요. 가장 최우선적으로 다뤄야 하는 법안이었고요. 누가 대표 발의를 할지 일찌감치 회의했어요. 그때 손을 번쩍 들었죠. 이 발의는 개인적으로 꼭 하고 싶었거든요. 
 
법안 통과를 위해선 민주당원들의 움직임이 필요한 상태인데요 민주당은 최소한 이 법안을 외면할 수는 없어요.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됐고,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대선 공약이기도 해요. 입법이 2007년부터 일곱 차례 시도됐어요. 많은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했다가 철회한, 아픈 기억이 있는 법안입니다. 제가 직접 발의 요청을 드린 의원 중 이 법안 취지에 공감하지 못하거나 필요성을 못 느끼는 분들은 단 한 명도 없었어요. 다만 반대 세력을 두려워하는 눈치가 있었을 뿐. 
 
이 법안에 대한, 미처 생각지 못한 반응도 있나요 이 법이 여성 인권 신장에 도움이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분이 등장한 거요. 새로운 반대 논리죠. 
 
명백하게 여성 인권을 신장시키는 법이라고 생각하나요 네. 여성 인권 신장에 이롭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이거예요. 이미 국가의 사법체계가 여성을 차별하고 있기 때문에 이 법안이 생겨도 남성의 여성 차별은 계속될 것이고,  여성 인권을 보장하는 판결이 나오지는 않을 거라는 거죠. 나라의 사법체계가 완전히 신뢰를 잃은 거예요. 사법체계를 불신한다는 건 곧 사회에 대한 불신이죠. 그런데 그 불신이 왜 존재하는지 너무 잘 알아요. 당장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 성폭력 등이 만연한데, 그것들이 제대로 수사되고 있지 않잖아요. 수사를 통해 검거했어도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라는 것이 국민의 법 감수성과 맞지 않을 때가 수두룩하죠. 많은 좌절이 오랜 시간 쌓여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슬프죠. 
  
분명히 알리고 싶은 법안의 세부 내용을 짚어본다면 이 법이 규정하는 여러 차별들이 있어요. 고용, 교육, 재화 및 용역, 행정 서비스의 4개 영역에서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성적 지향 등 23개의 사유에 따라 발생하는 모든 형태의 차별을 금지합니다. 여기에서 굉장히 중요한 내용 중 하나가 성희롱에 대한 내용이에요. 위의 4개 영역에서 일어난 성희롱을 성차별이라고 규정해요. 성희롱을 성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보는 거죠. 그걸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이 이 법안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부분이에요. 
 
무엇이 차별인지 규정하길 시작하는 법이라는 거군요 하지만 통과된다고 해서 사회에 만연하던 차별이 싹 사라지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인권위원회에서 권고를 거듭할 수 있는 장치를 하나 더 추가하는 역할을 하게 되겠죠. 차별을 당하지 않은 사람들 입장에서 지금껏 ‘이게 차별이야?’라고 여겼던 것들을 차별이라고 명확하게 얘기할 수 있게 만드는 것, 더 많은 사람이 차별에 대한 감각을 가지게 하는 것이 이 법안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할이에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차별을 차별이라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이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너무나 엄중한 기로에 있는 문제이기도 해요. 이런 시작이 불가항력적 변화로 이어지는 거의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해요.
 
더 많은 사람이 차별에 대한 감각을 가지게 하는 것이 이 법안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할이에요.
 
정치가의 삶을 시작하기 전에도 당신에겐 차별이 중요한 키워드였죠. 발달 장애를 가진 동생과 함께 살면서 유튜브 계정 ‘생각 많은 둘째 언니’를 만들고, 장편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을 선보였어요.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는 자신이 겪고 목격한 차별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었나요 연약함에 대한 미움이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인간은 무지막지하게 연약한 존재로 태어나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많은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데, 우리는 연약한 존재들을 너무 쉽게 포기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죠. 한 사람이 스스로 생산 주체가 되지 못하면 인간다운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분위기도 있고요. 연약한 사람이 연약한 사람인 채 함께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랐어요. 동생과 함께 사는 삶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서 지금은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고 비용도 지출하고 있어요. 개인으로서는 동생을 위한 역할을 수행하는 데 분명 한계를 느껴요. 국가와 사회가 변화해 장애를 가진 동생의 삶을 함께 지킬 수 있게 된다면 좋겠어요. 
 
2월에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후 지난 5월 24일, 정의당 혁신위원장이 되었어요. 꽤 빠른 행보로 느껴져요 정의당의 절대 다수는 40~50대 남성이에요. 30대의 정치 신인 여성이 혁신위원장을 맡는다는 사실이 어쩌면 최고의 혁신일지도 모르죠. 
 
현실 정치를 시작하고 나서 가장 크게 느끼는 건 무엇인가요 사람들에게 진심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거예요. 성과로 증명해야 하죠. ‘공적 영역으로의 모험’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한나 아렌트의 책에 나오는 구절이죠. 공공 영역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낸다는 건, 필연적으로 누군가 내 목소리를 들을 거라는 신뢰 없이는 떠날 수 없는 모험이라는 거예요. 
 
30대의 여성 정치 신인으로서 장벽처럼 여겨진 부분도 있나요 같은 이야기를 해도 청년이고 여성이라 다르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분명히 있어요. 물론 “제가 청년이고 여성이라서 그렇습니까?”라고 물으면 누구도 그렇다고 이야기하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매번 되새겨보게 돼요. ‘저 사람은 내가 50대 남자였어도 같은 반응을 보였을까?’ 종종 국회의원이 되어 다른 사람의 권리를 주장하고 대의하는 역할을 한다는 게 굉장히 신기하게 느껴져요. 어릴 때부터 여성이 받는 차별 중 하나가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거잖아요. 자기 불신을 넘고, 행동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주연이거나 리더십을 발휘해 원하는 걸 내 힘으로 이뤄나갈 자격이 나에게도 있다는 걸 배우는 데 한참 걸렸죠. 
 
언제부터 자신의 자격과 권리를 당연시하기 시작했나요 지키고 싶은 게 생겼을 때부터요. 장애가 있는 동생의 삶을 두고 ‘내가 이 사람을 지킬 수 있을까?’ ‘단순한 차원의 돌봄을 넘어 정말로 이 사람의 인간 권리를 지키기 위해 떨치고 일어날 힘이 나에게 있을까?’ 오래 고민했어요. 어릴 때부터 동생을 돌보고 지키는 입장이었는데, 그러기 위해 강해지면 “남자애 같다”는 이야기를 진짜 많이 들었어요. 드세다, 나댄다, 잘난 척한다…. 이런 종류의 문제 제기 말이에요. 
 
모든 말을 뒤로하고 여기까지 왔네요 앞서 길을 개척한 수많은 사람을 보며 저도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언제나 더 나은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믿어요. 가끔은 내가 이렇게 긍정적인 사람이었나 하며 깜짝 놀랄 때도 있죠. 
 
정치가로서 본인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사람들을 개인으로 보는 것이요. 많은 정치인이 사람들을 덩어리로 봐요. 지역이나 성별, 세대 등의 덩어리요. 이토록 다원화된 사회를 한 사람의 개인으로 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어질 거라 생각해요. 평등이란 건 어찌 보면 어마어마하게 어이없는 개념이죠. 모두가 다르니까요. 그래서 평등이 사랑스러워요. 더 강한 것이 약한 것을 마음대로 휘둘러도 된다고 생각하는 세상에서 얼마나 끔찍한 일이 많이 일어났나요. 평등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에요. 사람들이 촘촘히 의미를 되새기고 지켜나가지 않으면 쉽게 증발할 수 있는 약속이죠. ‘기승전 차별금지법’ 이야기가 되는 것 같은데요. 그래서 정치가 중요하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말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제 동생과 함께 평범한 할머니로 늙어가는 거요. 소박하고도 거창한 꿈이죠. 지금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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