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LIFE

셰프의 해장법: 셰프들은 어떤 음식으로 숙취를 풀까?

만취의 어제, 숙취의 오늘. 셰프들에게 속을 살살 풀어주는 궁극의 해장을 물었다.

BY권민지2020.07.08
해장이 달래주는 것
해장의 음식은 간결해야 하고 전날의 기억을 해쳐서는 안 된다. 순댓국이나 북엇국 같은 한 그릇 음식이 제격이다. 그러나 가끔은 해장을 통해 위장 말고도 달래야 할 것들이 생긴다. 로익 카스틀린은 9년전 르꼬숑에서 일하던 파리지엥 친구다. 당시 스물두 살이었던 그는 대구 여자친구 덕에 대구의 명물인 꿀막걸리에 빠져있었다. 그 술친구와 결혼하여 지금은 파리에서 알콩달콩 살고 있으니, 그 나날들이 일장춘몽은 아니었던 게다. 파란 눈의 이방인과 순댓국으로 해장하면서 그도 해장이 되는 줄 알았다. 어느 날, 막걸리 숙취에 괴로워하는 그에게 ‘꽁떼’라는 프랑스 사람들이 무척 좋아하는 치즈를 건넸을 때 그가 지은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갓 센드 유(God sends you)!” 그날 이후 그는 프랑스인답지 않은 성실함으로 일하기 시작했더랬다. 파리에서 그와 그의 아내를 만났을 때 그는 커다란 쇼콜라 푸딩을 먹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해장으로 순댓국이라니! 
 
 그녀는 파리에 산다. 실은 대구지엥. 두 해 만에 불어가 트이는 순간, 그간 다닌 짚 앞 카페에 달려가 불친절해 억울했던 감정을 모질게 쏘아붙였다. 냉수 한 잔의 시원한 해장처럼. 그는 대구에 살았었다. 실은 파리지엥 르꼬숑에서 일할 때 건내받은 꽁떼치즈 한 조각에 눈물을 흘렸었다. "갓 센드 유!" 해장은 가끔 마음 깊은 곳을 달래주기도 한다 Photo by 정상원

그녀는 파리에 산다. 실은 대구지엥. 두 해 만에 불어가 트이는 순간, 그간 다닌 짚 앞 카페에 달려가 불친절해 억울했던 감정을 모질게 쏘아붙였다. 냉수 한 잔의 시원한 해장처럼. 그는 대구에 살았었다. 실은 파리지엥 르꼬숑에서 일할 때 건내받은 꽁떼치즈 한 조각에 눈물을 흘렸었다. "갓 센드 유!" 해장은 가끔 마음 깊은 곳을 달래주기도 한다 Photo by 정상원

그렇게 물설음이 주는 해장의 욕구는 모국의 땅 냄새와 닿아있기에 꽤 깊게 몸을 달래야 한다. 끌리송이라는 프랑스 중부 루아르 강가의 작은 마을에 머물던 때다. 루아르 강 주변의 작은 마을들은 프랑스 전통 음식의 메카다. 천백 킬로미터를 흐르는 루아르 강과 그 주변 숲이 주는 다양한 식재료들의 향기는 이채롭고 이국적이다. 뿔닭 같은 멧새들과 사슴이며 멧돼지들은 저마다의 짙은 풍미를 자랑한다. 거기에 두루미냉이나 하얀 당근 파스닙 같은 향이 강한 구근으로 소스를 우리니 그 여향이 길다. 시간이 지나며 새로운 맛에 대한 탐험은 점점 곤욕스러워진다. 아침에 일어나 낯선 나의 몸냄새에 이제 내 몸 어딘가에서 야생의 향낭이 자라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해장은 전날의 기억을 해쳐서는 안된다. 그러나 물설은 타지에서의 해장은 그 이상의 무언가를 달래야 한다 Photo by 정상원

해장은 전날의 기억을 해쳐서는 안된다. 그러나 물설은 타지에서의 해장은 그 이상의 무언가를 달래야 한다 Photo by 정상원

그러던 중 우연히 도로변에서 베트남 음식점을 발견했다. 주변에서 동양인이라고는 구경도 못 하던 터라, ‘레스토랑 베트남’이란 단어가 고향을 만난 듯 반가웠다. 얼큰한 탕국에 밥 한 공기를 따로 주문한다. 주인장은 매운 음식인데 괜찮겠냐고 여러 차례 물어본다. 지금 그게 필요하다고! 뜸이 잘 들은 고봉밥에 동양의 향채로 끓인 매콤한 어탕국수가 지난 몇 주간의 까베르네 프랑 와인들을 해장해간다. “갓 센드 유!” 정상원(르꼬숑 셰프)


거부할 수 없는 버터라면의 맛
아무래도 와인바를 운영하다 보니 지인들이 오게 되면 같이 늦게까지 같이 술을 마시게 되는데 그 때 잘 내어주는게 ‘버터라면’이다. 개인적으로 라면을 좋아하지 않아 1년에 1팩 정도 먹는 게 전부인데 그 먹는 때가 이럴 때이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지' 같은 버터라면의 맛! photo by 이경섭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지' 같은 버터라면의 맛! photo by 이경섭

모든 해장의 베이스는 ‘지방’ 혹은 ‘기름’을 베이스로 한다고 믿기에, 고소한 걸 좋아하는 한국인 대부분이 좋아하는 서양 재료는 버터라고 생각했고 스페인에 살 때부터 버터를 넣어 만들어 해장 하곤 했다. 곰탕 맛이 나는 라면에 스프를 풀어먹는 맛과 비슷하다. 아직 한 번도 이걸 거부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경섭(치차로 셰프)
 
어젯밤을 곱씹으며, 추어탕
정말 속이 뒤집히도록 만취한 다음 날엔 해장이 다 무슨 소용이랴. 물 밖에는 답이 없다. 그런 극한의 상황 말고, 기운이 없거나 국물이 생각 날 정도의 중급 숙취라면 보광동 댓잎 갈비 추어탕이 최고다.
 
진하고 꾸덕꾸덕하며 두께감이 있는 맛. 전혀 비리지 않다 photo by 양윤경

진하고 꾸덕꾸덕하며 두께감이 있는 맛. 전혀 비리지 않다 photo by 양윤경

10년간의 단골집. 개인적으로 추어탕을 워낙 좋아해서 이리저리 맛집을 찾아다니곤 했었는데, 이 집만 한 맛은 아직 찾지 못했다. 해장에도 좋고, 장기 여행을 한 후 돌아와도 생각나는 맛. 이제껏 소개했던 모든 사람이 100% 만족을 표했을 정도다.
 
댓잎갈비에서는 한강을 바라보며 추어탕과 갈비를 먹을 수 있다 photo by 양윤경

댓잎갈비에서는 한강을 바라보며 추어탕과 갈비를 먹을 수 있다 photo by 양윤경

이곳에서는 한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일요일 낮 초췌한 모습으로 한강 뷰를 마주한 채 추어탕을 먹다 보면 멍해지는 게 어젯밤을 절로 곱씹게 된다. 홍원기, 최상재(와일드덕칸틴 셰프)
 
뜨겁고, 시원한 맑은 국물
나는 숙취가 심한 편이다. 그래서 다음 날 음식 대신 음료를 찾곤 한다. 살고자 하는 본능이다. 그렇다고 모든 음료가 해장에 탁월한 것은 아니다. 오렌지 주스는 속이 쓰려서, 초콜릿 우유는 배가 살살 아파져 실패.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쳐 찾아낸 해장 음료는 식혜다. 달콤해서 술술 넘어가는 데다 밥알이 동동 떠 있으니 식사 대용으로도 그만이다.
 
셰프들의 맛집, 베트남 음식점 '꾸잉' Photo by 인스타그램 @quynh_official

셰프들의 맛집, 베트남 음식점 '꾸잉' Photo by 인스타그램 @quynh_official

반드시 식사해야 할 경우엔 맑은 육수의 쌀국수를 먹는다. 아무래도 쌀로 만든 면이라 밀가루 면인 짬뽕이나 라면보다 속이 한결 편하다. 특히 이태원에 위치한 ‘꾸잉’이라는 베트남 음식점을 주로 찾는다. 속을 개운하게 푹 지지면서도(?) 든든하게 채워주는 뜨겁고 맑은 국물을 들이켠다. 황진(비스트로G 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