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노키와 정욱준의 대화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마크 제이콥스가 페이스북을 통해 ‘내 얼굴을 그려 달라’ 부탁한 아티스트 로버트 노키. 유난히 패션 피플을 그려온 그가 이번엔 준지(Juun.J)의 정욱준을 그렸다. 지난 10월 '제로제로 프로젝트: 블랙 머티리얼(Black Material)' 발간 기념으로 서울을 방문했던 그와 정욱준과의 대화를 '엘르'에서 공개한다. ::로버트 노키,정욱준,마크 제이콥스,독특한,개성있는,창의적인,작업실,갤러리,인터뷰장,작업,그림,인물,제로제로 프로젝트,블랙 머티리얼,발간기념,패션피플,엘르,엣진,elle.co.kr:: | ::로버트 노키,정욱준,마크 제이콥스,독특한,개성있는

올해 초 로버트 노키(Robert Knoke)는 정욱준의 사진 한 장을 받았다. 로버트 노키가 아트 작업을 하고 있는 향수 식스 센트(Six Scents) 프로젝트 시리즈 3의 인물로 정욱준이 선택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버트는 이제껏 만나보지 않은 인물의 포트레이트는 그려본 적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로버트는 인터넷으로 준지의 패션쇼를 보며 정욱준이라는 인물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작업이 끝난 후 로버트는 정욱준의 전화를 받았다. 발간 기념으로 서울에 초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전화를 끊고 로버트는 정욱준의 포트레이트를 다시 작업하겠다고 마음먹었고, 정욱준은 로버트에 대해 궁금한 것을 하나 하나 떠올리고 있었다. 10월 말 전시회장에서 둘이 마주했다. 전날 처음 인사를 나눴고, 다행히 과음은 없었다. (정욱준) 잠을 잘 잤는가? 어제 저녁에는 일찍 들어 가서 미안하다. 내가 원래 술이 약하다. (로버트) 노키 괜찮다. 우리도 빨리 들어갔다. 참, 소주 맛있더라. 전시장 갤러리 페이스는 마음에 드는가? 채광이 좋아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든다. 아주 훌륭하다. 참, 당신의 포트레이트는 갤러리에 들어오자마자 만날 수 있게 걸어놨다. 이 작품을 볼 때마다 예전에 당신 사진을 받고 당신의 분위기를 한번에 잡아내지 못해 망설였던 기억이 난다. 준지의 패션쇼와 옷을 보며 당신을 알았었지. 역시 작업 결과물은 작업하는 사람의 성향을 닮아 있다. 내 얼굴은 내가 잘 아는데 당신이 그린 모습은 내가 가장 민감할 때의 표정이다. 단지 웃는 얼굴이 싫어서 무표정한 포트레이트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인물의 예민한 부분을 발견한다고 하더라. 웃으면 일러스트레이션이나 캐리커처 같은 작품이 되는 게 싫었을 뿐인데. 블랙 컬러와 선의 조화가 그런 느낌을 들게 하는 것도 같고. 비주얼 아티스트라고 자신을 소개하는데 많은 예술의 종류 중 유독 포트레이트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시시하게 들릴지 몰라도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됐다. 아티스트는 혼자서 일하는 사람인데 그러다 보니 외로웠고, 사람들을 만나는 게 즐겁다는 걸 느꼈다. 만나는 사람들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포트레이트 작업의 시작이 됐다. 당시에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화가 리언 골럽(Leon Golub), 포토그래퍼 장 밥티스트 몬디노(Jean Baptiste Mondino), 인테리어 디자이너 안드레 푸트만(Andre′e Putman)을 만나면서 작업 기준이 꼿꼿하게 세워졌다. 사진이라는 장르가 생긴 후 포트레이트를 작업하는 아티스트가 적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내 작품을 재미있어 해주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점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럼 블랙 볼펜과 마커만 사용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시작된 것인가? 아주 오래전부터 그림을 그릴 때는 항상 블랙 볼펜을 사용했다. 맞다. 그냥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됐다. 가레스 퓨, 마크 제이콥스, 다미르 도마, 릭 오웬스 그리고 나를 포함해 패션 디자이너들을 많이 그린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친한 친구가 패션 디자이너라서 패션계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는데 소개가 소개로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내가 그들을 그리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그들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개인적으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을 그려왔다. 현재의 패션은 단지 의복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념과 영감 등의 결정체로 그 자체가 예술이 돼버렸다. 패션은 일단 즐겁다. 정치적이거나 이념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즐길 수 있는 에너지가 참 즐겁다. 패션이 순수예술이 될 수 없을지는 모르나 전보다 더 예술에 가까워진 것만은 확실하다. 사실 패션 디자이너들을 많이 그려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신 작업은 무척 패셔너블하게 느껴진다. 일단 세련되고, 감각적이고 패션 세계가 좋아하는 톤이다.패셔너블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싫은 것도 아니다. 그저 크리에이터들이 패션으로 어떤 걸 만들어내는지 궁금할 뿐이다. 1 서울에서 처음 만난 로버트 노키와 정욱준.2 식스 센트(Six Scents) 작업의 일환으로 그린 정욱준의 포트레이트.패션 디자이너와 작업하면서 재미난 에피소드는 없었나? 마크 제이콥스는 페이스북으로 나에게 연락했다. “마크 제이콥스인데 당신 작품이 마음에 든다. 나도 그려줄 수 있겠냐?”는 식의 캐주얼한 메시지였다. 의아하기도 했지만 의문이 더 컸다. 사이버 세상은 100% 신뢰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지 않는가. 몇 번이고 진짜 마크 제이콥스인지 물었다. 반신반의하며 그의 집으로 향했다. 그가 문을 열면서 내게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이봐요 형씨. 나 맞죠!” 물론 웃으면서.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있는가? 오늘도 올 블랙으로 아주 멋지게 입고 왔다. 원래 패션에 관심이 많은가? 오프닝 파티 때문인가? 맞다. 파티 준비해야지. 그리고 사진 촬영도 있어서 신경 썼다. 개인적으로 앤 드뮐미스터를 좋아한다. 그녀의 의미심장한 눈빛을 닮은 옷이 참 좋다. 그녀의 포트레이트도 작업했는데 아직 미완성이다. 아마 처음부터 다시 작업할 것 같다. 아, 그리고 물론 준지도! 내가 앞에 있어서 그런가? 어쨌든 고맙다. 그런데 왜 이렇게 유명인만 그리는가? 초상화는 그 사람이 가진 고유 이미지에 많이 의존하게 되지 않은가? 인물의 중요도가 곧 작품의 무게감이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당신이 참 영리하다고 느낀다. 유명인을 많이 그리긴 했지만 내 작업은 유명인과 명성에 대한 결과물은 아니다. 일반인도 많이 그렸는데 책으로 만들거나 전시를 위해 선택된 작품에 유명인이 많을 뿐이다. 어쩌면 셀프 포트레이트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관심을 가진다는 건, 나와 맞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니까. 나와는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지만 각각의 인물은 내가 흥미로워하는, 나와 맞는 어떤 코드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작업 프로세스는 어떻게 되는가?일단 인물을 만나고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토대로 그림을 그린다. 심플하다. 그림도 블랙, 책 제목도 블랙 머티리얼, 오늘 입은 옷도 블랙. 컬러는 싫어하는가? 노, 절대 그렇지 않다. 하지만 모두들 그렇게 오해한다. 블랙은 중립적인 컬러라 좋아한다. 색깔도 내레이션이 될 수 있다. 빨간색을 사용하면, 이를 수용하는 사람은 즉각적으로 ‘불, 사과, 섹시함’ 등 다양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녹색도 마찬가지다. ‘평화나 환경’ 같이. 그러나 블랙은 컬러에 비해 다소 연상되는 이미지가 적다. 블랙 컬러 옷을 좋아하는 건 실용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작업에서는 컬러를 사용할 때도 있지만 컬러풀한 옷이 많이 없는 건 사실이다. 원래 당신 포트레이트는 큰 사이즈로 만든다. 하지만 갤러리에는 작품의 디테일만 볼 수 있어서 좀 아쉽다. 개인전이 아니라 책 발간 기념 때문에 한국에 오느라 오리지널은 가져오지 않았다. 는 한 아티스트의 작품을 다양한 미디어로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든 책이다. 이번이 첫 번째 볼륨이다. 책은 포트레이트 작업의 디테일 컷과, DVD, 티셔츠로 구성돼 있다. 앞으로 작업은 포트레이트와 연관이 있을 것인지 아니면 블랙 머티리얼이라는 색깔 혹은 화법과 연관이 있을 것인지 궁금하다.사실 모르겠다. 난 그렇게 영리하지 않다. 계산하며 살지도 않고. 물론 아티스트로서 계획과 방향성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일을 한번 시작하면 빨리 하는 편인데 무엇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그것에 도달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앞으로 그리고 싶은 인물이 있다면? 미안하지만 이것만큼은 말해 줄 수 없다. 이제 우리 작업 좀 해볼까? 당신 사진을 찍어 포트레이트 준비를 해야 한다. 내가 한국 행을 결심한 큰 이유 중 하나다.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2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