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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깊은 잠에 드는 뇌파 소리’ ‘꿈 없는 잠’이라는 소개부터 솔깃하다. 댓글은 약 5천여 개. “댓글 중에 15분만 들으면 된다는 말 듣고 15분 남은 좌표 찍고 들으면서 누웠는데, 레알 이걸 듣고 잔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침임” “오버하네, 하면서 댓글 보다가 정신 차려보니 아침이 밝았습니다” “아 진짜 이 영상 없이는 잠들 수 없는 몸이 됐어” 등등, 읽다 보면 귀가 팔랑거린다. 유튜브만큼 자칭 전문가와 뇌피셜을 근거로 한 팩트가 넘쳐나는 곳도 없지만 콘텐츠마다 뇌파에 대한 전문적이고 자세한 설명이 빼곡히 적혀있는 데다 의심스럽거나 궁금한 점을 묻는 말에 꼬박꼬박 장문의 답을 해주니, 꽤 믿음이 간다.
원리는 간단한 듯 복잡하다. 깊고 꿈이 없는 수면과 연관이 있는 뇌파인 델타파 소리를 재생하는 것. 게시물 밑에 “채널에 있는 뇌파 소리는 바이노럴(Binaural) 뇌파 소리로써, 양쪽 귀에 서로 다른 주파수의 소리를 들려줘 그 진동수 차이를 이용해 뇌파 조절효과를 냅니다”라는, 다소 이해하지 못할 설명이 적혀있는데 결국은 스테레오 스피커로 틀어 놓거나 이어폰을 꽂고 자야 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으나 개인적으로는 꽤 불편해서 스마트폰만으로 재생해 둔 채(적당히 효과가 있다고 한다) 밤 12시, 일단 누웠다.
오래된 냉장고가 위잉위잉 하는 소리와 비슷한 것 같다가 익숙해지면 어쩐지 동굴 한복판에 누워있거나 우주 속을 둥둥 떠다니고 있는 기분이 된다. ‘뭐지? 좀 무서운데?’ ‘내일은 꼭 장을 봐야지’ 같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잡념이 탁 꺼지듯 스르륵 잠에 빠진다. 잠이 드는 과정에서 ‘피곤하다’ ‘회사 가기 싫다’ ‘졸리다’는 단계가 빠진 기분. 새벽에 한 번 정도 일어났는데 아마 열대야 탓인 것 같다. 에어컨을 틀고 약 20초 만에 다시 취침 그리고 어느새 아침. 정말 꿈은 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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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명상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소리나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허리를 곧게 세운 바른 자세로 앉아 호흡하다 보면 심신이 이완된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지루하고 불편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힐링’이니 ‘마음 관리’ ‘긍정 확언’ 같은 말에도 비아냥을 감추지 못하는, 비관적인 현대인인 내게 이 채널은 개인적으로 불신하는 것들의 총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는 동안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잠재의식 수면 명상가이드, 원하는 것을 현실화/심상화하는 셀프 토크 기법’ ‘깊은 잠에 들며 내면을 치유하는 보이스 요가 수면 명상’ 등 제목만 봐도 손끝이 오그라든다. 하지만 2백43만회, 1백만회 등 폭발적인 조회 수, ‘수면’으로 검색하면 2~3번째에 (1번은 1천8백18만회를 기록한 수면 음악 콘텐츠이나 잠잘 때 음악 듣는 건 딱 질색이라 패스) 랭크되는 인기 영상을 보유한 채널이라 의심 반 호기심 반으로 플레이를 눌렀다.
댓글 중 이런 말이 있다. “진짜 되네? 하고 깬 다음에 바로 다시 잔 사람?” 바로 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동안의 빈정거림이 민망하게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게 꿀잠을 만끽할 수 있었다. 먼저 몸이 틀어지지 않았는지 균형을 체크하고 호흡으로 전신의 긴장을 푸는 보디 스캐닝과 근육 이완을 마치면 중력 명상에 들어간다. “셋을 세면 나의 몸이 순식간에 지구 중심부로 당겨져 들어갑니다. 하나둘 셋”을 말할 때는 약간 가볍게 가위에 눌린 기분 마저 밀려온다. 잠박사의 뇌파 영상이 정신적으로 푹 꺼지는 느낌이라면 이건 심신이 함께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이 든다. 어찌나 푹 잤는지 1시간 32분경부터 재생되는 렘수면 활성 사운드는 물론 마지막 부근에 있는 3번의 알람 같은 건 듣지도 못했다. (플레이 1시간 후에 스마트폰 종료 버튼을 누른 모양이다) 정확히 8시간 숙면 후 개운하게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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