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대림미술관 속 구찌가 만든 유토피아

대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필독! 구찌가 대림미술관에 펼쳐놓은 현실화된 유토피아. 그곳에선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BYELLE2020.06.17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 No Space, Just a Place. Eterotopia〉가 열리는 대림미술관 전경.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 No Space, Just a Place. Eterotopia〉가 열리는 대림미술관 전경.

동시대적 미학으로 패션 신을 전복시킨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시대적 호기심이 서울의 독립·대안예술공간에 닿았다.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 No Space, Just a Place. Eterotopia〉는 구찌가 서울의 복합적인 예술 생태계와 다채로운 현대미술 신을 조명하는 전시 프로젝트다. 이는 ‘헤테로토피아’에 대한 구찌의 고찰에서 비롯됐다. ‘다른’이라는 뜻의 ‘헤테로’에 ‘장소’를 의미하는 ‘토피아’를 결합한 헤테로토피아는 유토피아와 대비되는 공간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장소인 동시에 모든 장소의 바깥에 있는, 현실화된 유토피아. 전시는 1층의 올리비아 에르랭어의 초현실적 작품으로 시작한다. 어느 빨래방 안, 인어의 꼬리가 세탁기 구멍에 낀 듯한 장면을 만든 설치물이다. 서울 어딘가의 빨래방을 그대로 옮긴 듯한 공간에 인어의 꼬리 조각이 더해진 작품은 초현실적 공상과 마법 같은 현실이 뒤섞인 듯 황홀하게 다가온다. 전시는 시청각, 합정지구, 통의동 보안여관, 탈영역우정국, 취미가 등 서울의 독립예술공간 10곳을 비롯해 메리엠 베나니, 세실 B. 에반스, 이강승, 올리비아 에르랭어, 마틴 심스까지 5명의 해외 아티스트에 이르는 15팀의 작품으로 이뤄진다. 그리고 이 15개의 세계는 서로 굉장히 다르지만 충돌하지 않는다.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에게 필요한 모든 이해가 실현된 작은 헤테로토피아인 것이다. 구찌가 서울의 전시장을 빌려 구현한 이 ‘다른 공간’에는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공존하고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게 만드는 동시대적 물음으로 가득하다. 
D/P는 이윤정 작가의 〈설근체조〉를 선보인다.

D/P는 이윤정 작가의 〈설근체조〉를 선보인다.

공간: 일리, 〈크프우프크 (QFWFQ) 유영하기〉.

공간: 일리, 〈크프우프크 (QFWFQ) 유영하기〉.

마틴 심스, 〈몸짓에 대한 메모〉, 2015.

마틴 심스, 〈몸짓에 대한 메모〉, 2015.

서울의 독립예술공간 오브는 각각 다른 프라이버시 수준과 집중도를 지닌 세 개의 방을 바탕으로 전시를 기획했다.

서울의 독립예술공간 오브는 각각 다른 프라이버시 수준과 집중도를 지닌 세 개의 방을 바탕으로 전시를 기획했다.

전혜림의 2019년 작인 〈그건 거기에 없는데〉와 2018년 작 〈퍼펙트 스킨〉, 2019년의 전시 〈육면체의 인덱스〉 중 일부를 전시한 합정지구.

전혜림의 2019년 작인 〈그건 거기에 없는데〉와 2018년 작 〈퍼펙트 스킨〉, 2019년의 전시 〈육면체의 인덱스〉 중 일부를 전시한 합정지구.

이번 전시의 총괄 큐레이터 미리암 벤 살라.

이번 전시의 총괄 큐레이터 미리암 벤 살라.

지금 가장 진보적인 큐레이터, 미리암 벤 살라(Myriam Ben Salah)

구찌가 서울의 독립·대안예술공간에 주목한 이유는 구찌는 한국미술계를 알아가고 그들과 교류하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나는 외부자이자 큐레이터로서 서울의 예술가들을 조사하며 주요 기관과 시장이 주도하는 미술계의 대안으로 예술가와 큐레이터들이 운영하는 독립예술공간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느꼈다. 
서울의 대안공간에서 당신이 포착한 것은 무엇인가 역사적으로 가게 앞과 다락, 창고 등 주류가 방치한 장소에 자리한 비밀스러운 현장이라는 점. 이들은 대개 정치적 성향이 강하고, 실험적이며, 예술적 논쟁을 중시하는 작업들을 널리 알려왔다. 이 부분에선 큐레이토리얼 컨설턴트로 함께한 여인영의 도움이 컸다. 그녀 덕분에 서울과 국제 무대의 미술 생태계에 존재하는 ‘구조’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이 전시가 한국의 문화 제작자들과 ‘함께하는’ 프로젝트가 돼야 의미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전시 주제와 구찌 하우스의 아이덴티티 혹은 비전이 어떤 부분에서 통할까 지금 시대는 우리에게 ‘다른 공간’, 즉 인간이 새로운 방식으로 교류하며 바람직한 미래를 일굴 장소를 새롭게 정의하길 재촉하는 듯하다.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작업에는 이런 아이디어와 관련된 요소들이 담겨 있다. 그는 구찌를 위해 디자인하는 동안 패션의 선봉에서 장르와 젠더 관계에 들어 있는 윤리적이고 심미적 가치를 탐구해 왔다. 이번 기회에 예술이 지닌 잠재력에 대한 미켈레의 비전과 내 생각을 대조해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어느 인터뷰에서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펑크적 시인’이라 표현한 바 있는데 그는 패션 왕국에서 시인으로 존재해 왔다. 위험을 감수하고 전형적인 형태를 뒤엎는 미켈레의 디자인은 규범에 저항하는 의식이자, 기존 구조에 의문을 던지는 시도다. 
 
구찌라는 이름 아래 함께할 예술가와 공간들은 어떻게 선별했나 먼저 서울의 독립예술공간 중 새로 부상하는 예술적 형태나 담론을 발견하고 지역의 사상 공동체를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둔 곳을 선정했다. 그런 다음 그들에게서 ‘다른 공간(헤테로토피아)’이라는 주제에 따른 제안서를 받았다. 더불어 다섯 명의 해외 예술가에게 같은 주제로 대안적 공간이라 정의되는 가까운 미래, 현실의 대안이라 할 수 있는 공상적 신화를 다루는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당신이 줄곧 염두에 둔 아이디어는 ‘대안’ 공간 또는 ‘다른’ 공간의 더욱 광범위하고 은유적인 정의. 
 
‘팔레 드 도쿄’에서 특별 프로젝트와 공공 프로그램을 조율한 이력을 필두로 다양한 지역과 분야를 넘나드는 큐레이팅과 저술 경력으로 이름을 알렸다. 경계 없는 왕성한 활동의 비결은 쌍둥이자리다. 한곳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한 번에 여러 일을 벌인다(웃음). 내겐 플랫폼과 지역을 바꾸며 일하는 게 건강한 정신 훈련이다. 다르거나 완전히 대립되는 관점으로 예술에 다가가게 해주니까. 
 
최근 당신이 탐구 중인 새로운 예술 화두는 아주 실험적 영역과 주류 영역, 전위적 개념과 그 개념이 대중문화를 관통하는 방식 등이 마찰하는 지점에 관하여. 현대미술이 살아남으려면 다른 분야와 다른 대중, 새로운 세대와 교류하며 더 포괄적인 언어를 고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리비아 에르랭어의 〈이다, 이다, 이다!〉의 전시 풍경.

올리비아 에르랭어의 〈이다, 이다, 이다!〉의 전시 풍경.

〈이다, 이다, 이다!〉는 작가가 LA의 빨래방에서 선보인 〈이다〉를 바탕으로 제작된 설치미술 작품이다.

〈이다, 이다, 이다!〉는 작가가 LA의 빨래방에서 선보인 〈이다〉를 바탕으로 제작된 설치미술 작품이다.

올리비아 에르랭어의 〈이다, 이다, 이다!〉의 전시 풍경.

올리비아 에르랭어의 〈이다, 이다, 이다!〉의 전시 풍경.

뉴욕에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에서 거주하며 활동 중인 1990년생 예술가 올리비아 에르랭어.

뉴욕에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에서 거주하며 활동 중인 1990년생 예술가 올리비아 에르랭어.

인어의 꼬리로 묻다, 올리비아 에르랭어(Olivia Erlanger)
이번 전시는 당신의 작품으로 시작된다. 당신이 창조한 초현실적이고 모호한 분위기의 빨래방에서. 어떻게 출발한 작품인가 작품을 처음 선보인 건 2018년 LA의 어느 세탁소에서다. 인어 꼬리 조각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했다. 당시 ‘마더컬처(Motherculture)’라는 공간을 큐레이팅하던 마일로 콘로이와 재레드 마데르라는 친구에게 이 아이디어를 전했더니, 세탁하러 간 빨래방에서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거기에 작품을 설치하자는 의견을 냈다. 
 
빨래방에 얽힌 특정한 기억이 있다면 나는 뉴욕 출신이고, 성인이 돼서 다시 뉴욕에 살다가 LA로 옮겨왔다. 뉴욕에는 빨래방이 여기저기 있다. 아파트에 세탁기나 건조기를 두는 사치를 누리는 사람이 얼마 없으니까. 20대 초중반에는 건조가 끝나길 기다리는 동안 절친 케빈과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즐거운 추억을 쌓았다. 
 
빨래방을 출세를 꿈꾸는 공간이라고도 해석했다 빨래방에 간다는 건 집에 세탁기나 건조기가 없다는 뜻이니까. 나는 이전에 서류 캐비닛과 차고 문을 활용해 작품을 완성한 적 있는데, 이번에는 세탁기를 활용했다. 이는 각각 다른 종류의 ‘가사 노동’을 가리킨다. 
 
인어 조각을 통해 사회 환경에 따라 때론 악마로, 때론 성적 매력을 지닌 형상으로 모습을 지속적으로 바꿔야 했던 여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으로 안다. 여성으로서 당신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나 성별과 관계없이 모두가 각자 주어진 환경에 따라 변화를 겪는다고 믿는다. 이런 유연성은 진화와 생존의 일부인 셈이다. 하지만 지금껏 전형적인 여성성에는 다른 존재로 손쉽게 변신하는 능력이 수반돼야 했다. 여성이나 여성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은 상반된 여러 속성을 동시에 보여줘야 했다. 여성은 섹시한 동시에 정숙하고, 영리한 동시에 순진하고, 순종적인 동시에 강인하라는 요구를 받아왔다. 이 속에서 나는 혼종성을 봤다. 예술이 사회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술이 ‘소통’한다는 사실은 믿는다. 이 작품을 선보이며 접한 강렬한 반응들이 있다. 인어 꼬리가 드럼 세탁기에 끼어 있는 초현실적 허상에 대한 무언가가 분명 다양한 관객에게 닿은 것 같다. 
 
당신의 생애 첫 작품은 무엇이었나. 무엇에 대한 관심에서 당신의 예술이 시작됐을까 만 6세 때 수업 시간에 앱솔루트 보드카 광고를 그렸다. 꽤 잘 그려서 복도에 걸렸는데, 1학년 학생에게는 굉장한 영광이었다. 그날 방과 후에 부모님은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여섯 살짜리가 어떻게 앱솔루트 보드카를 아냐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내 그림이 논란을 일으켰다는 사실에 뿌듯해했다. 그때 아버지가 “이제 너는 진짜 예술가야. 진짜 예술은 사람들이 말하게 한단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이후 어떤 것에 일관되게 호기심을 품어왔나 늘 교외와 가정에 관심이 많았다. 도시에 살다가 교외로 이사 가서 청소년기를 목적 없이 보냈거든. 영원히 변두리에 갇혀 있을 것처럼 말이다. 마치 새장에 있는 것 같았다. 살면서 그렇게 지루했던 시절은 또 없었던 것 같다. 드라이브를 하고, 인디 록 음악을 듣고, 쇼핑몰에 가고, 어떻게든 집에 가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 시기와 주변부를 계속 돌이켜보면서 영감을 찾으려 했던 것 같다. 
 
최근 작업을 통해 새롭게 살피고 있는 공간이 있다면 다층 주택부터 차고까지 다양한 건축물을 봤는데, 인어 조각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익숙한 감성을 보여주면서 환상을 곁들이고 싶다. 그렇게 누군가가 어떤 감성을 새롭게 융합 혹은 팽창시키거나 색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기를 바란다. 
 
다양한 인종과 젠더를 지닌, 각자 독립된 존재인 모두가 한 장소에서 공존하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그 한 장소가 만약 미국이라면 모두에게 양질의 교육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신에게 헤테로토피아란 대안의 가능성. 대안적이고 확산적인 라이프스타일 혹은 존재 방식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