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라니(좋은 이웃)에 대한 모든 것, <하쿠나마타타-지라니이야기> 이창규 감독과의 인터뷰 | 엘르코리아 (ELLE KOREA)

2005년 케냐의 쓰레기마을 고로고초에서 기적이 일어난다. 임태종 목사가 빈민가 아이들의 상처받은 영혼을 보듬어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합창단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지라니(좋은 이웃)어린이합창단은 절망의 땅에서 천상의 하모니로 희망을 노래하기 시작한다. 합창단이 만들어진 후, 비전의 차이로 시행착오를 거치는 과정을 영화 '하쿠나마타타-지라니이야기'가 포착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이창규 감독과 지라니문화사업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더불어 이 땅에서 영화감독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엿들었다.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에서 나오는 명대사 "하쿠나마타타"가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지, '지라니 이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하쿠나마타타, 지라니어린이합창단, 지라니, 서울기독교영화제, 고로고초 마을, 나이로비, 임태종, 이창규, 엘르, elle.co.kr:: | ::하쿠나마타타,지라니어린이합창단,지라니,서울기독교영화제,고로고초 마을

Q. 영화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2000년 군 제대 후 서울에서 경호원(삼성 에스원) 생활을 했다. 연애인들 경호를 가끔 나가면 영화현장을 볼 기회가 있었다. 그때 매력을 느꼈다. 나도 저런 거 해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막연히 해보려 하니까 방법도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냥 무작정 대학교 졸업영화나 단편영화의 연출부 보조를 했다. 아버지 선배 분이 연애인협회 회장을 하셨는데, 그 분이 이두용 감독님과 친했다. 그 분 소개로 이두용 감독님 밑에 잠깐 들어갔다. 이두용 감독님도 준비를 하셨지만 영화는 들어가지는 못했다. 당시에는 충무로영화제를 만든다고 움직이셨다. 실질적으로 영화를 배워다기보다는 나이드신 분들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옆에서 봤다. 젊은 세대들에게 밀려나셔서 전전긍긍하는 걸 본 거다. 사랑방 늙은이 취급 받는 모습. 미국과 같은 시스템이 아니니까. 그런 모습이 안타까웠다. 2001년부터 독립영화 판에서 일하면서 사람들에게 많이 까였다. 모 대학교 영화과 출신이나 아카데미 출신 사람들은 고전영화를 많이 이야기한다. 아무래도 공부를 했으니까.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해도 난 모르니까 무시를 자주 당했다. 내 나름대로의 신념이 있어도 "네가 뭘 아냐!"는 식이었다. 당시에는 고졸이었으니까. 그렇게 무시를 많이 당하다 보니까 나도 영화 공부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영화학교를 가려고 해도, 고등학교 성적을 따지니 들어갈 때가 없었다. 같이 일하면서 알게 된 감독님이 뉴욕에서 공부를 하셨는데, 아직 젊으니까 한국 영화판에서 찌질하게 일하지 말고 큰 무대로 나가보라고 충고를 해주셨다. 그것 때문에 2003년에 무조건 미국으로 갔다. 아무 생각없이 떠났다. 영어를 못하니까 가서는 엄청 고생했다.Q. 어떻게 학비를 조달했나?그 전에 회사를 다녔으니까 미국으로 갈 돈은 있었다. 유학을 가서 남들 하는 것처럼 아르바이트는 모조리 다했다. 아이스크림도 푸고, 햄버거도 뒤집고, 사진관에서 사진도 찍고. 당시 사진관에서 사람들이 명함을 주문하는 데 80, 90불 정도했다. 한국에서 출판사에서 표지 디자인을 해 본 경험이 있어서, 좀 아니까 멕시칸 친구를 설득해서 사업을 같이 했다. 한국에서 디자인하는 것을 EMS 쉽핑비를 떠안고 팔아도 70불을 남겼다. 미국이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라서 프로모션 판촉물을 많이 했다. 미국에는 그걸 만드는 데가 별로 없었다. 엄청 팔아 먹었다. 1년 반 재미를 보았다. 지금은 환율 떨어지고 EMS 비용이 올라가서 사업을 접었다. 그걸로 유학비용 반 이상을 충당했다. Q. 지라니 합창단과 인연을 맺은 계기는?2007년부터 장편영화를 기획했다. 발달장애에 관한 다큐멘터리였다. 거기서 알게 된 변호사 분과 일하다가 한국의 굿네이버스가 미국에 들어와서 설립하는 걸 알게 되었다. 알고보니 굿네이버스 이병희 국장님이 학교 선배님이셔서 더 친해졌다. 원래 지라니가 굿네이버스의 프로젝트였다. 거기서 독립해서 나온 거다. 굿네이버스는 구호단체다 보니 성격이 안 맞았다. 당시 임태종 목사님이 미국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설명회를 나왔다가 이병희 국장님과 함께 밥을 먹을 자리가 있었는데, 미국 영상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받았다. 지라니 합창단 콘서트를 할 때 중간에 영상이 필요했다. USC(남가주대)의 마지막 학기라 조교 생활을 하면서 졸업작품도 해야 했다. 미팅 자리에서 임 목사님이 "믿고 가겠다"고 하면서 그냥 가버리셨다. 내 결정을 듣지도 않으셨다. 내가 아프리카에 가면 2주 이상을 비워야 하는 거라 문제가 있었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었다. 제가 알고 있던 대학원 애와 함께 아프리카로 갔다.Q. 케냐에 갈 때 주사도 맞고 가나?그렇다. 주사를 8개 맞았다.Q. 사실 잘 모르는 분들은 케냐의 고로고초 마을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를 수도 있다.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의 중심에서 차로 30분도 안 벗어나 있다. 쓰레기 마을을 보고 색다른 다큐멘터리를 찍을 수 있다고 느꼈다. 알아 보니까 쓰레기 1/3이 한국, 일본, 미국에서 들어온다.Q. 와! 그런가?도네이션(기부)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서 386 컴퓨터를 기부한다. 몇 번 쓰고 고장이 나면 그냥 태워버린다. 그런 걸 추적을 해서 다큐멘터리를 찍어도 좋겠더라. 그러나 이 지라니 다큐멘터리의 목적은 이 아이들의 이야기니까. 고로고초 단도라 슬럼은 세계 3대 슬럼 중에 하나다. 미국 영화에도 등장할 정도로 큰 지역이다. 에 나오는 인도의 슬럼보다는 좀 작다. 치안이 안 된다. 경찰도 안 들어온다.아주 위험한 상태다. 내가 가기 전에 선교사가 칼에 찔리기도 했다. 게다가 내전이 있었다. 내란이 끝나고 일주일 있다가 들어간 거다. 더럽고 치안 상태가 너무 안 좋은 동네다. 수도 나이로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완전히 다른 생활을 하는 동네다. 우리나라로 치면 옛날 달동네다. 거기는 렌트비가 싸니까 돈 없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거기 사람들은 봉고차에 70, 80명이 매달려서 다닌다. 잡고 가다가 내리고 싶은데 그냥 떨어진다. 그걸 타고 나이로비로 일하러 간다. 그나마 그 사람들은 나은 거다. 직장이 있으니까. 직장이 없으면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길거리에서 음식을 만들어 판다. 인구의 40% 이상은 실업자다. 학교 건물도 작은 학고방에 애들이 20명 정도 앉아 있다.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중졸 선생도 있고. 그런 수준이다. 애가 다섯인데, 아빠가 다섯인 경우도 봤다. 영화에 넣지는 못 했는데, 인터뷰한 어떤 여자는 아기를 안고 있는데 남편이 없었다 "누구 아이냐?"고 묻자, "아빠를 모르겠다"고 하더라. 남자들이 책임감이 없다. 쓰레기장 돌다보면 아이들 시체도 버려져 있다. 그만큼 낙후되고 열악한 환경이라고 보면 된다.Q. 그런 장면들을 강하게 보여줄 수도 있었을 텐데?촬영적인 제약이 있었다. 영화에 총든 사람들이 개인 보디가드다. 경찰인데, 그날 근무가 없는 사람들을 사서 데리고 들어간 거다. 굉장히 비싸다. 비용적인 문제 때문에 쓰레기장을 거쳐서 마을로 들어갈 때는 단 한 번만 촬영을 했다. 합창단 연습실에서 가까운 데만 찍었다. 카메라를 들고 많이 돌아다닐 수가 없다.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서. 혼자 다니면 안 되고, 항상 그 동네 애들이랑 같이 다녀야 하고. 그런 제약 때문에 많은 걸 놓친 부분이 있다. 처럼 6개월 동안 살면서 찍었으면 얘기가 달라졌을 거다. 그리고 가기 전에 뭘 찍겠다고 충분히 기획을 한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분명한 그림 자체가 없이, 단순히 홍보영상 때문에 간 거다. 그런 걸 놓치고 나서, 미국에 돌아와서 많은 생각을 했다. 지라니 문화사업단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졌다. 마침 지라니 합창단이 2008년 6월에 미국 공연을 왔다. 그때 자비를 들여 촬영을 했다. 뉴욕 공연을 갔더니, 마침 지라니 조직에 문제가 생겼다. 문제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직원들의 불만이 엄청 쌓여 있었다. 케냐에 온 사람들도 말이 많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 문제들을 보다 보니까 소통의 문제나 방향의 문제가 나왔다.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도 계속 들렸다. 그래서 난 지라니 합창단이 없어질 줄 알았다. 그래서 지라니 아이들은 또 따른 희생양이 되는 걸로 생각했다.Q. 그렇게 되면 고로고초 마을 아이들은 엄청난 상처를 받을 수 있다.한국과 미국을 경험한 아이들이 이 지라니 합창단 단체를 통해서 꿈을 키웠는데, 공중 분해된다면 상처를 받을 거다. 그런 꿈이 있기 전에 실망하는 것과 꿈을 갖은 후 실망하는 것은 비교할 수가 없다. 실망이 몇 배로 커진다. 이 사건을 통해 이벤트성 구호 단체는 이렇게 사라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다. 그렇게 초점을 맞추고 찍다보니까, 지라니 아이들을 조망하고 비추기보다는 그 조직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인터뷰를 했다. 비평을 보니까 아이들을 더 보고 싶다는 말이 많던데. 내 다큐멘터리의 목표는 그게 아니었다. 지라니는 시카고로 넘어가고 난 다시 본업으로 돌아갔다. 아마 몇 년 기다리면 지라니 합창단이 없어졌다는 이야기가 들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면 한국으로 들어와서 지라니 조직에 들어왔다가 나간 스탭들과 인터뷰를 할 계획이었다. 영화적으로 클로징을 깔끔하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희생양이 되면 안 된다'는 케이스로 남을 줄 알았다. 이런 큰 사업을 하려면 '큰 비전을 갖고 제대로 소통하라'는 제안을 하고 싶었다. 그후 본의 아니게 미국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엎어지고, 돈을 벌기 위해 직장을 나가게 되었다. 극장 매니저를 했는데, 다시 연출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 일을 못하겠더라. 마침 최석환 작가님이 소개를 시켜주셔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필름포럼 임재철 대표님과 다른 일을 논의하다가 를 다시 마무리해 보라고 제안을 하셔서, 서울기독교영화제를 앞두고 편집을 했다. 그러다보니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촬영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내가 원래 의도한 것과 다르게 지라니 합창단이 망하질 않았다. 이 단체가 현재진행형이다. 망하면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겠지만. 임태종 목사님과 비전이 맞질 않는 사람은 다 떠났다. 비전이 맞는 사람은 남아 있고, 또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다. 오히려 그때보다 두 배 이상 성장을 했다. Q. 결과적으로 지라니 합창단은 시련을 겪고 더 성장을 한 셈이다.일단 임 목사님이 쿨하게 받아들이셨다. 내 잘못이 있다고 말을 하셨다. 책()에도 제일 미안한 게 미국 공연 때 스탭들이었다. 그렇게 쿨하게 인정을 하신다.Q. 임태종 목사님의 반성과 성찰이 있어서 극장 개봉이 가능한 영화다. 그래서 '오늘의 내'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셈이다. 기자 시사회 때도 바로 옆에 목사님이 있으신데도 "지라니 합창단 없어질 줄 알았다"고 말했다. 쿨하게 받으들이시더라. "그 상황에서 보면 그렇게 밖에 볼 수 없었다"고 인정을 하신다. 저로서는 굉장히 고마운 일이다. 그래서 마지막 결론이 지라니를 도와줬으면 좋겠다로 약간 쏠린 거다. 이런 의지가 있다면, 외부로부터 쓴 소리를 받아들이시는 분이면 앞으로도 올바른 방향으로 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사님이 영화에서 "위기 상황에서 내가 일일이 다 설명할 수 없다. 자신과 하느님께 정직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 뒤에 바로 엘리샤가 말한다. "쓴소리를 받아드릴 줄 알고, 우리의 단점을 강점으로 만들 줄 알아야 한다." 내가 그 인터뷰를 바로 뒤에 이어 붙인 이유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목사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어서 그랬다. 그런 부분들을 목사님이 잘 받아들이셨다.Q. 사실 그러기 쉽지 않다.맞다. 내가 담은 것들이 우려할만한 장면이 있었다. 그런 부분이 있다고 했더니, 목사님은 "어떡하냐, 그게 사실인데, 영화 하시라"고 하셨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었다. 기존의 기독교 다큐멘터리는 전부 "할렐루야'라고 찬양하는 식이다. 애들 한 두명 잡아서 슬프게 쥐여짜는 다큐멘터리다. 일단 객관적으로 접근하고 싶었다. 누구의 의견을 더 집어넣은 것은 없다. 지라니 쪽으로 살짝 치우친 감이 있긴 하지만, 객관적으로 그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했다. 보는 관객들이 팩트(사실)들만 던져주면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끔 말이다. 감독의 주관이 개입되어 있는 결말을 내기는 싫었다. 지라니 아이들이 불쌍하다고만 판단하지 말고, 지라니 단체 자체에 대해 생각을 해달라. 이 단체가 가는 길이 맞다면 관심을 갖고 후원을 하라는 얘기다. 내가 판단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이 판단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단체의 투명성과 리더십이나 비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단체가 계속되면서 지라니 합창단의 1기 아이들 40명이 고등학교를 갔다. 그냥 내버려두면 그 동네에서 고등학교 갈 수 있는 아이는 1, 2명이다. 그리고 지라니 합창단에서 그 아이들의 등록금을 전부 준다. 일단 아이들이 혜택을 받았다. 지금 2기 아이들 100명이 하루에 한 끼를 해결한다. 그러면 이들은 혜택을 보는 거다. 어떻게 보면 영화에서 곽 국장이 지적하듯이 그 돈을 분산해서 200, 300명에게 밥을 줄 수도 있다. 그건 비전의 차이다. 뭐가 더 낫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라니라는 단체가 존속함으로써 아이들이 많은 혜택을 보는 것은 사실이다. 어떤 분이 비평을 쓰신 걸 봤더니, 선교영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더라.한국인의 관점만 있고, 지라니 아이들의 관점은 없다고 했는데. 그런 걸 논하기 전에, 그런 곳에 먼저 가 봤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기독교를 논하고 구호단체를 논하기 전에, 그 단체가 있기 때문에 먹고 살 수 있다. 그런데 비판만 하는 분은 그 아이들을 돕지 않는다. 그러면서 잘 됐다, 못 됐다 이야기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Q. 최근 구호단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월드비전이나 유니세프 같은 경우 행정비 비율이 50% 정도 된다. 내가 만 원을 내면 오천원이 도움이 된다. 굿네이버스는 자원봉사자를 많이 뽑아서 행정비가 30%다. 사람들이 쉽게 착각을 해서, "내가 낸 돈을 왜 봉급으로 쓰냐"고 따진다. 누군가가 아프리카에 가서 아이를 도우려면 비싼 비행기를 타고 다녀와야 한다. 이들이 그걸 대신하는 거다.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희생정신이 훨씬 강한 사람이 돈도 얼마 안 받고 일하는 거다. 그렇게 일하는 데 그 정도의 생계비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문제를 생각해봐야 한다. 최근 구세군이 유흥비로 썼다고 문제가 되었는데, 그래서 도네이션 못 하겠다고 말들 하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실수는 당연히 비판받아야 하지만, 그 의미마저 왜곡되선 안 된다. 영화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은 좋다. 얼마든지 좋다. 준비를 오랫동안 한 영화도 아니고, 기획을 제대로 한 게 아니라 내가 봐도 빈틈이 보인다. 충분히 영화를 깔 수 있다. 구멍이 있는 작품이 있으니 비판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게 더 웃기는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비판을 해주는 게 더 좋다.Q. 무관심보다는 낫지 않나?그렇다. 왜 이렇게 까이는지 궁금할 수도 있다.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 하지만 남을 돕는 일의 밑바탕까지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Q. 벌써 다른 영화를 준비중이란 이야기를 들었다.한류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다. 미국에 숨피닷컴(soompi.com)이라고 있다. 얼마 전에 CEO인 조이스 김이 다녀갔다. 열다섯 살에 조기 졸업하고 미국에서 변호사하다가 친구랑 만들었던 블로그 같은 게 한류의 중심적인 메인 사이트가 됐다. 중앙일보 메인에 나오기도 했고. 우리가 한류라고 하면 흔히 아시아 중심이다. 지금 미국 안에도 한류가 불고 있다. 아시아 문화라고 하면 '일본은 닌자', '중국은 쿵푸'라고 생각이 될 정도로 남자들 중심의 문화였다. 지금의 한류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가 되고 있다. 미국 친구들이 한국드라마를 보고 나서 한국의 역사를 위키피디아에서 찾아봤다고 할 정도다. 한류를 이끄는 건 10, 20대 젊은 여성들이다. 젊고 예쁜 여성들이 좋아하니까, 그녀들에게 관심을 얻기 위해서는 남자들도 좀 알아야 하는 거다. 이런 식으로 전개가 되니까 원 타임 이벤트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컬처 웨이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미국 관객들을 상대로 이게 왜 웨이브인가 질문하고 싶다. 이미 아시아에서 있었던 것은 한국 TV에서 이미 여러 번 다룬 바가 있다. 우린 JYP의 홍보성 기사를 자주 봐왔다. 그런데 콘서트 가보면 전부 아시아인이다. 그런 걸 벗어나서 미국 속의 한류를 다루고 싶다. 사라라는 흑인 친구와 백인 스테파니, 두 명의 캐릭터를 뽑아 놓은 상태다. 사라는 한국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한국인이 있는 동네에 산 것도 아닌데, J-팝을 찾다가 K-팝을 알게 되었고, K-팝 때문에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 노래 가사와 드라마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은 대화가 가능할 정도다. 한국도 무척 오고 싶어한다. 스테파니는 K-팝 듣다가 미국 SM 오디션에도 참가를 했을 정도다. 어떤 과정을 거치기에 애들이 잘하는지 궁금해서 경험을 하려고 했던 거다. 자기가 궁금하니까.Q. 한류에 대한 완전히 다른 접근이다.그렇다. 미국인 친구들에게 접근하는 거니까. 오히려 이런 다큐를 통해서 미국 내로 한류를 더 알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런 현상을 한국사람들이 봤을 때 어떻게 느껴지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첫 번째 타겟은 미국이다. 3단계로 나누어서 접근을 하고 싶다. 문화와 경제의 상관관계로도 접근을 하고. 이 작업은 바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빠르면 내년 1월에 미국에서 촬영들어 갈 생각이다. 숨피닷컴이 3월 중순이 14주년이라고 하더라. 그때 맞추어서 홍보를 시작하면 4월, 5월에 영화를 릴리스하면 되지 않을까 본다. Q. 설명 들어보니 아주 좋은 기획인 것 같다. 기획력이 있다!장편영화도 하나 기획 중인데, 마사회 쪽에다 제안서를 내놓은 상태다. 내가 한국에 들어와서 3개월 동안 영화사들의 PD와 만나서 이야기만 했다. 영화 찍는 여건이 너무 어려웠다. 장벽이 높고. 영화사들이 너무나 조심스럽고. 입봉 감독들에게 거의 기회도 안 주는 편이고. 그리고 어떻게 보면 시나리오를 보고 투자를 결정하는 과정은 노동력 착취다. 시나리오가 통과해서 연출비와 대충 합쳐서 돈을 주는데, 그건 사실 시나리오에 대한 저작권료다.Q. 사실 입봉 감독들에게 연출료는 없는 상황이다.그건 연출에 대한 대가가 아니다. 그래서 상황을 보고 실망했다. 그래도 뭔가 변화가 있을 줄 알았다. 오랜 시간이 흘렀고, 영화사들도 많이 성장했으니까... 옛날과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대기업들이 영화시장에 들어오면서 더 심해진 것 같다. 그럴 바에는 제작 프로듀서를 겸하면서 내가 돈을 가져와서 내가 원하는 영화를 만들자는 생각이 들었다. 지라니 같은 경우도 제작비가 1,500 만원도 안들었다. 반 이상 지라니 문화사업단 쪽에서 지원을 받았다. 9분짜리 홍보동영상을 만들어 주면서 지원을 받았다. 영화 마케팅비도 지라니 합창단 공연과 영화를 동시에 홍보하는 조건으로 받았다.Q. 나중에 영화 만들면서 어떻게 살아남는가에 대한 책을 써야 겠다!(웃음) 이걸 하면서 먹고 살려고 그러는 거다.(웃음) 지금 현재 충무로 시스템에서는 3년에 영화 한 편 찍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영화감독을 직업으로 삼아서 살기에는 너무 어려운 여건이다. 그래서 가족을 갖기도 어렵다. 시스템이 참 웃긴다. 예전에 박지성 같은 경우도 맨유에서 퍼거슨이 출전할 기회를 안 주니까 문제였다. 연습만 매일 하면 뭘 하나? 기회를 잡아야 잘 하는지, 못하는지 알 수도 있고. 겨우 한 번 출전했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왼쪽 윙에서 넣었는데, 별로 였다고 하면 오른 쪽 윙에서 넣어서 어떻게 하는지 봐야 한다. 그래야 어디서 잘 뛰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영화감독은 그런 기회 자체가 없다. 연습만 10년해서 찍었는데 망해버리면 다음 출전 기회는 거의 갖기 어렵다. 그런 시스템이다. 요즘 영화판에 요구하는 타자는 9할대 타자다. 무조건 나오기만 하면 진루는 하는 사람을 원한다. (김)동원이 형 같은 경우도 이후 7년 만에 을 만들었는데, 제대로 개봉이 안 된다. (황)동혁이 형도 찍고, 손익분기점을 못 넘겨서 결국은 3년 쉬다가 이번에 로 촬영에 들어갔다. 찍으신 김영남 감독님도 마찬가지고. 먹고 사는 걸 해결하는 게 너무 힘들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을 잘 안 만난다.Q. 이런 감독님들은 독립영화 진영도 아니고, 상업 판에서 뛰는 분들인데도 이렇게 어렵다.이명세 감독님도 이 15억 넘게 손해보고 나서, 아직까지 영화를 못 들어가고 있으시고. 준비만 계속 하신다. 저번에 한번 뵈니까 시나리오만 쓰고 계시더라. 그렇게 백전노장들도 허덕이니, 기업과 딱 붙어서 잘 나가는 비즈니스형 몇 감독들만 살아남는다. 독식 체제라는 생각도 들고.Q. 장기적으로는 어떤 일을 해보고 싶나?기자님이 기획력이 있다고 칭찬해주신 것처럼, 미국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감독보다는 PD가 맞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앞으로 감독이 영화나 영상이란 걸 만들면서 먹고 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일조를 하고 싶다.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앞으로 방송국 드라마 시장에 콘텐츠의 공백이 예상된다. 지금 노는 감독들이 많다. 감독들끼리 '헤쳐 모여'하는 식으로 여러 명이 모여 TV시리즈물을 기획하면 좋을 것 같다. 미국의 에피소드 형식으로. 의 경우에는 10편의 감독이 다 다르다. 그런 식으로 캐릭터와 스토리라인, 구조는 같고 각 감독들이 자신이 일하는 팀을 갖고 에피소드들을 만들어서 그걸 방송국에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만 갖출 수 있다면 된다. 외주 제작업체에서 경험없는 PD들이 들어와서 만드는 작품보다는 훨씬 높은 퀄리티를 만들어낼 수 있다. 감독들도 스스로 욕심을 버릴 필요가 있다. 드라마는 영화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빠르게 많이 찍어내는 거니까. 디지털의 시대에는 이런 게 가능하다. 그런 작품을 기획해서 투자자들을 개발해야 한다. 내 영화와는 별도로 이런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싶다. 아직 충무로에서 경험이 없다보니까 네트웍크를 만들 수가 없다.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Q. 와! 그런 기획력이면 지라니 합창단의 노래처럼 "하쿠나 마타타(아무 문제 없어요)"겠다.먹고 살려고 그러는 거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