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우리가 전진해야 할 곳 #ELLE 보이스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처음으로 산 주식은 어떤 곡선을 그릴지, 특정 표현을 쓰고 어떤 장르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왜 어려운지. 우리의 삶은 여러 고민과 발전하고 나아지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여성의 시각으로 <엘르>가 전하는 세상의 단면들.

BYELLE2020.06.04

우리가 전진해야 할 곳

“여자들은 왜 갑자기 공부를 잘하게 된 거야?” 게임만 하고 공부는 뒷전인 아들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던 A씨는 아들 또래 여자아이들이 얼마나 공부를 잘하는지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는 공부 잘하는 여자애들을 보기 드물었단다. “전국권 등수에 여자는 거의가 뭐야, 아예 없었다고. 여자들이 원래 수학·과학에 약하잖아.” 이쯤 되면 그의 말을 끊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당시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여자들의 숫자가 남자보다 훨씬 적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본인도 얼마나 많은 역경을 딛고 공부했는지 늘어놓는 그의 얼굴 위로 뉴스 자료 화면에서 봤던 여성들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오빠나 남동생에게 고등교육의 기회를 양보하고 미싱 공장이나 가발 공장, 버스 안내원, 식모 등등을 전전하며 일한 과거의 10대 여자아이들. 뉴스 화면 속에만 있었겠는가. 
 
영화 〈82년생 김지영〉 관람자들이 눈물보가 터지는 장면으로 하나같이 꼽는 대목은 “미숙아, 그러지 마”다. 지영이가 외할머니에 빙의해서 “니가 오빠들 뒷바라지하겠다며 청계천 미싱 공장에서 일하다가 손 다쳤을 때도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했어”라고, 자신의 엄마 미숙에게 말하는 장면이다. 우리는 많은 엄마와 이모, 고모들이 그렇게 남자 형제를 위해 희생하며 커온 사실을 알고 있다.
 
시대가 바뀌었다.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딸바보’ 가정이 확연히 늘어났다. 명백한 조롱이 섞여 있던 ‘딸딸이 아빠’라는 단어는 거의 사라졌고, 오히려 아들만 있는 집안을 두고 사람들은 ‘불쌍하다’며 동정 어린 말을 건넨다. 이런 변화는 남자들의 성 평등 인식에도 영향을 준 걸로 보인다. ‘남성 차별’과 관련해 2019년 〈시사IN〉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30대 이상의 60%는 ‘심각하지 않다’고 답한 반면 20대 남자들의 68.7%는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아마 A 씨의 아들도 학교에서는 여자애들에게 공부로 치이고, 집에선 ‘사내놈이 여자한테 지느냐’며 핀잔을 듣고 자랐을 것이다. 이런 10~20대들이 받는 열패감은 고스란히 ‘여혐 현상’으로 터지는 듯하다. 30대 여성인 나로서는 갑갑한 노릇이다. ‘귀하게 키운 딸’이 늘었다 해도 성인이 된 여성을 책임감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아직 자리 잡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장 5월 말에 개원하는 21대 국회를 보자. 300석 가운데 여성 의원은 57명(19%)에 불과해 여전히 OECD 최저 수준이다. 여야 모두 지역구 공천에 여성을 30% 할당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10%대에 머물렀다. 그나마 국회는 두 자릿수 퍼센트나 되지, 중앙부처 고위 공무원의 여성 비율은 8.2%다. 다양성과 대표성이 너무 떨어지지 않느냐고 비판하는 목소리에 정당도 정부도 ‘구인난’을 호소하며 억울함을 숨기지 않는다. 걸맞은 경륜과 경험을 가진 여성 인재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인사 담당자의 말이다. “솔직히 여자들이 남자들에 비해 부적절한 문제가 터질 만한 요소가 적다. 그 때문이라도 여자를 주요 보직에 많이 추대하고 싶다. 숨은 인재가 있다면 제발 알려달라.”
 
찾기 어렵다는 말이 아주 과장은 아닐 것이다. 그 옛날 여학생의 모수가 절대적으로 적었던 것처럼 ‘경력 단절’없이 착실하게 커리어를 쌓아가는 여성들의 숫자 역시 턱없이 모자란 것도 사실이다. 과거만큼은 아니어도, 여성들은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자신들이 알아서 희생하고 적당히 그만둔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여자들이 먼저 손을 들고 비주류 보직을 택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여자들이 편한 자리만 가려고 한다”며 비아냥댄다. 또는 “여자들은 회식을 기피해서 관리자에 어울리지 않는다”고들 한다. “여자는 수학·과학을 못한다”는 말만큼이나 틀린 명제다. 
 
정부는 막연하게 ‘여성 30% 할당’ 같은 수치만 던지지 말고, 사회 전반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모수를 키워야 한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부부동시육아휴직제 같은 제도가 더 많이 생기길 기대한다. 이와 함께 더 많은 여성이 실무자급 하급자 위치에 만족하지 말고 더 높은 곳을 향해 전진하기를 바란다. 숱하게 ‘다 때려치우고 싶은’ 욕망이 찾아오더라도 자신의 사회적 역할은 비단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마치 멸종위기종을 보호하듯 스스로를 지켜내길 바란다. 오직 가족을 위해, 남자들을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삶은 우리 어머니 세대로 끝나야 하지 않겠나.
 
메르스 당시 함께 징계를 받았던 다른 이들이 사표를 내고 떠났던 것과 달리 꿋꿋이 버텨준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께 또 다른 의미로 감사하다. 이런 소수의 한두 명이 아닌 사회 전반, 국회·정부·사법부에서 최소한 성비에 맞는 절반 정도의 여성 리더들을 보고 싶다. 그래서 머지않은 미래에 이런 말을 듣고 싶다. “여자들은 왜 갑자기 일을 잘하게 된 거야?”
 
WRITER_심수미 
제48회 한국기자상 대상, 제14회 여기자상을 받은 JTBC 기자. 
30여 년간 인권 사각지대를 취재한 수 로이드 로버츠의 〈여자 전쟁〉을 직접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