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랙 재킷은 Miss Gee Collection. 슬리브리스 톱은 Unnormal. 데님 팬츠는 System. 레이스업 슈즈는 Rachel Cox. 골드 이어 커프는 En Ce Moment.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 후배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교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신경전문외과의 채송화의 공식 인물 소개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새하얀 얼굴에 동그란 안경을 쓰고 씩씩하게 수술실을 드나드는 배우 전미도는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한눈에 눈에 띄고 호감 가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20대 때 이미 알았지만, 그럼에도 경험과 실력을 계속 쌓다 보면 그 재능을 쓸 수 있는 때가 오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말이 아직은 낯선 것처럼 그는 말한다.
그러다 “30대가 되자 ‘미도는 좀 애매하지’라는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왜 다른 사람이 내 한계를 긋지?’ 싶었는데 보세요. 이렇게 보란 듯이 좋은 작품을 만난 걸요.” 바로 그 ‘좋은 작품’인 신원호 PD의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성공을 의심한 사람은 없다. 향수를 자극하는 과거(〈응답하라〉 시리즈)도, 교도소 (〈슬기로운 감빵생활〉)같이 흥미로운 장소도 아닌, 그야말로 요즘 병원 생활을 그린 드라마는 매회 자체 시청률을 경신하며 순항 중이다. 99학번 의대 동기인 통칭 ‘99즈’ 다섯 명(조정석, 전미도, 유연석, 정경호, 김대명)을 중심으로 수많은 사람과 감정이 북적북적 오가는 이야기 속에서 굳이 단 한 명의 수혜자를 꼽으라면 역시 전미도 아닐까? 대학로 무대에 오른 지는 15년이 됐고, 한국뮤지컬어워즈 여우주연상을 2회 연속 거머쥐었으며, 이제 막 TV 데뷔까지 성공적으로 마친 배우. “매일 감사해요. 눈뜰 때 감사하고, 잠들 때 또 감사하죠”라는 대답은 진심일 것이다.

니트 톱은 Assist. 하이웨이스트 와이드 팬츠는 Etech. 플랫 슈즈는 Repetto. 이어 커프와 링은 모두 En Ce Moment.

스트라이프 니트 톱은 Miu Miu.
처음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당신의 이름을 봤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정말 좀 무서웠어요. 내가 뭐 잘못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주변에서 기뻐하는 것을 보며 차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됐죠. 신원호 감독님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던데요(웃음).
소극장부터 대형 뮤지컬까지 배우로서 이미 여러 변곡점을 겪었는데 그것과는 또 많이 다르던가요 제 이름 석 자가 타이틀에 오르거나 선배님, 선생님들과 작품을 해야 할 때도 물론 부담감을 느꼈죠. 하지만 SNS에서 느끼는 뜨거운 반응 같은 건 낯설어요. 드라마에 도전하게 된 이유로 ‘무대에 감사하는 마음을 잃어가는 것 같아서’라고 답한 적 있어요. 공연을 올리는 내내 계속 같은 장소에 있다 보면 정체된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거든요. 다행히 전혀 다른 분위기의 현장에서 지내는 동안 많이 환기됐어요.
사람들은 당신이 결혼했다는 사실에 놀라더군요 인생에 세 번의 터닝 포인트가 있었어요. 10대 때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던 순간과 20대에 종교를 가진 것, 그리고 30대에 결혼한 것. 결혼은 중요한 일이에요.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전에 없던 안정감이 생기기도 하고요. 뭘 하든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제일 중요하잖아요.
〈슬기로운 의사생활〉도 결혼의 다양한 양상을 자연스럽게 다뤄요. ‘99즈’ 중 두 명은 ‘돌싱’이고, 결혼 문제로 고민하는 커플, 이혼, 배우자와 사별 후 가까워지는 정로사(김해숙)와 주종수(김갑수)의 풋풋한 우정까지 아! 두 분이 함께 나오는 장면, 정말 좋아요.
궁금해요. 기혼자로서 이런 다양성이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느낄지 감독님이 40대의 사랑과 일, 가족 등 다양한 풍경을 보여주고 싶다고 하신 적 있어요. 등장인물의 부모뿐 아니라 여동생, 40대에 연애를 시작하는 준완이(정경호), 아들 우주와 행복한 돌싱 익준이(조정석) 등 정형화되지 않은 다양성을 그리는 것에 공감해요.
삶의 풍경은 정말 다양하니까요 전 방황하는 시간도 반드시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해요. 〈파우스트〉를 각색한 연극 〈메피스토〉에도 이런 대사가 있어요. “인간은 방황하지 않고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 누구나 고민을 하면서 언젠가 답을 찾는 것 아닐까요.
조정석, 유연석 배우 모두 당신을 채송화 역에 추천했다는 일화는 잘 알려졌죠. 조정석 또한 공연계 출신임에도 두 사람은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고요 오빠가 제 무대를 본 것은 뮤지컬 〈원스〉 때 한 번인 것으로 알아요. 사적인 관계 없이 공연 하나를 보고 저를 믿어준 건 평생 고마워해야죠.
채송화를 제외한 ‘99즈’는 모두 남자지만 드라마 전체에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가 많이 등장해요. 현장에서 만날 일이 있나요 서로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보려고 노력하죠. 민하(안은진)와는 원래 알았고, 겨울이(신현빈)와는 대본 리딩이나 회식 자리에서 가까워지려고 애쓴 덕에 많이 친해졌어요. 며칠 전에는 셋이 처음으로 따로 만나기도 했답니다. 아, 익순이(곽선영)는 대학교 동기인데 병원 인물이 아니다 보니 도통 만날 수 없더라고요. 확실히 여자끼리 ‘으싸으싸’ 하려는 건 있는 것 같아요.
송화만 여자인 것을 보고 ‘친구가 남자밖에 없는 게 말이 돼?’라고 생각했거든요 대학생 때 1년 휴학하고 복학해서 거의 남자 동기들과 학교를 다니긴 했어요. 저처럼 지방에서 올라온 자취생도 남자들이 많았고요. 정신적 지주까지는 아니어도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그때도 비슷했던 것 같네요(웃음).
도전해 보고 싶은 남자 캐릭터도 있나요 뭐든 다 하고 싶어 하는 편이에요. 욕심이 많아서 그런지 안 해본 건 다 해보고 싶더라고요. 내가 과연 저것도 해낼 수 있을지, 계속 시험하고 싶어요. 송화한테 끌린 이유도 고학력자에 똑 부러진, 해보지 못한 역할이라는 게 컸어요.
연극을 보며 배우는 이 주제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할 때가 있어요. 묵직한 화두를 던지는 작품이 당신의 시각에 변화를 미친 적도 있나요 김광보 연출의 〈비〉가 대표적이었어요. 안락사에 대해 종교적으로 찬반을 따지기 전에 그들의 심정을 대리 경험해 보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해 택한 작품이거든요. 앞으로 더 자주 거론될 문제인 만큼 어떤 게 정말 인도적이고 당사자를 위한 것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죠. 정해진 답은 없더라도 우리로 하여금 사고하게 하는 게 작품의 힘 같아요. 드라마 직전에 출연했던 국립극단의 〈오슬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야기였어요. 우리는 그들이 전쟁 중이라는 건 알지만 더 이상 깊게 관심을 갖지 않잖아요.

벨벳 소재를 덧댄 리넨 드레스는 Prada. 네트 디자인의 샌들은 Monobabie.

리넨 재킷은 Reiss.
병원에 대한 시각도 변했나요. 코로나 사태로 의료진의 헌신에 대한 공감대가 이뤄진 지금 같은 상태가 아니었다면 드라마가 주는 감동이 또 다르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저희 작품을 보면서 저런 의사들이 어디 있냐고 하는 분도 많다잖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작품을 통해 실제 의사들이 왜 그러는지 조금 더 이해됐어요. 대구행을 서슴없이 택한 자원봉사 의료진을 보며 받은 개인적 감동도 있고요. 송화의 대사이기도 한데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마냥 따뜻한 말, 희망만 심어줄 수는 없는 일이죠. 객관적이기 위해 때로는 거리가 필요하기도 하고요.
이 작품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따뜻하다는 건 명백해요. 당신이 바라보는 세상은 전 이상주의자예요. 감독님과 이우정 작가님도 워낙 따스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분들이고요. 그래서인지 현장 분위기도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좋아요. 서로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게 느껴져요.
그런 당신도 같이 일하기 힘든 유형이 있나요 말 안 통하는 사람. 자기 말만 한 뒤에 남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과는 다시 작업을 안 해요. 개인 특성으로서는 존중하지만 거기까지. 아주 굳건해요. 그 점에 대해서는.
인터뷰 중 가장 단칼에 답변이 나왔어요(웃음) 한 선배가 ‘좀 만만한 게 좋은 것 같다’고 했던 말에 동감해요. 말을 걸기 쉽지 않은 사람이 되는 순간 피드백을 받을 일이 사라지고, 그럼 결국 자아도취에 빠지기 십상이죠. 네가 뭔가 말할 때 나는 들을 준비가 돼 있다는 느낌을 주려 해요.
미도라는 이름은 ‘아름다운 길’이라는 뜻인가요 어릴 땐 저도 그런가 보다 했어요. 그런데 문득 ‘도읍 도’ 자 뜻을 찾아보니 그 한자에 아름답다는 의미도 있더라고요. 나는 아름답고 아름답구나, 이게 내 이름이구나, 생각하니 그 사실이 소름 끼치도록 좋았어요. 이름을 지어주신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여쭤보지 못했지만 억측이면 또 어때요, 이렇게 좋은 이름인데.
그래서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됐나 봐요 특히 봄에 그런 감정이 충만해요. 길 가면서 아스팔트를 뚫고 자라난 꽃을 보면 정말 아름답고 예뻐서 ‘환장’할 것 같거든요. 공연을 준비할 때도, 이번 현장에서도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름답더라고요. 제가 몰래 찍은 사진도 많아요. 드라마가 끝나면 SNS에 올릴 거예요.
마지막 회를 보고 나면 어떤 기분일까요 저희 다섯 명 모두 ‘시즌 2가 있어서 진짜 다행’이라고 매번 이야기해요. 작품에도, 서로에게도 애정이 많이 생겼거든요. 합주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은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경호는 1주일에 두 번씩 보자고 해요(웃음). 누구보다 저희가 시즌 2를 기다릴 거예요.
전미도에게 배우는 천직인가요 새로운 역할을 맡을 때마다 나는 왜 역량이 이것밖에 안 되지, 재능이 없구나, 다 때려치워야지 싶어요. 그럼에도 관객들이 보내는 박수를 믿고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죠. 이 일을 할 때 제일 재미있어요. 나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뭔가를 해낼 때의 즐거움도 엄청나고요. 그럼 전 이 일을 해야 되는 사람이 맞는 것 같아요. 천직, 맞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