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결승선을 향하여 #ELLE보이스

가족'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8월. 혈연이든, 뜻을 같이하는 친구나 공동체이든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건 연결돼 있다는 감각,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BYELLE2020.05.21
 
요즘 부모인 내가 장거리 달리기 선수처럼 느껴진다. 옆에서 속도를 조절해 주거나 결승선을 가늠해 줄 페이스메이커도 없이 달리는 기분이랄까. ‘코로나 사태’라는 처음 겪는 상황 앞에 어른들은 깊어지는 불안과 당혹감을 아이들 앞에서 감출 수 없다. 이제 막 말을 배운 동네 꼬마까지 코로나, 코로나 외치는 모습을 보면 ‘이런 의미의 2020 원더키드를 꿈꾼 것 아니었는데’ 싶으면서 미안함, 무력감에 휩쓸리게 되는 것이다. 부직포 필터로 얼굴의 절반을 가린 채 집 밖을 나서는 아이들은 햇볕도 절반만 보고 다닌다. 그래서 결심했다. 어른인 내가 정신을 단단히 잡아야겠다고. 아이들을 반드시 지켜야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지난 두 달을 버틴 것 같다. 그러나 봄이 와도 집을 떠나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며 나를 포함해 부모들은 지치기 시작했다.

 
4월 중순임에도 아이들은 여전히 집에 있다. 딸 나은이는 올해 한 번도 등원하지 못해, 결국 얼마 전 어린이집을 퇴소했다. 아이와 살을 부빌 시간이 강제로 늘어난 것이다. 처음 가정 보육을 결심할 때의 각오는 비장했다. 놀이기구와 책도 잔뜩 주문했다. 다양한 놀이 키트가 품절 사태를 겪는 걸 보며 전국의 생면부지 부모에게서 나와 같은 각오를 느꼈다. 나처럼 집에서 일하는 홈 워킹 맘, 재택 근무자, 어쩔 수 없이 출근하되 짬짬이 돌봄 휴가를 내는 부모 등. 모두 최선의 방식으로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편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에 사는 엄마들의 불안감은 깊어 보였다. 잠깐의 외출조차 불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온종일 집 안에 갇힌 아이와 이웃 간 층간 소음 문제를 피하지 못해 아이에게 언성을 높이고 마음 아파했다. 부모님 댁이 시골에 있는 가정은 아이와 함께 잠시 거처를 옮기기도 하고, 인구 밀도가 낮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부모도 있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지 않고 코로나 청정지역까지 위협하는 이기적인 여행이라며 비난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지만 말이다. 강원도 화천에 사는 나로서는 마음 무거운 소식이었다. 그럴 때면 사람 한 명 없는 허허벌판 위에서도 똑같이 마스크를 끼고 일상을 보내는 모습, 강원도의 늦은 봄 풍경을 SNS에 나누는 것이 내가 주변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유일한 방법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태풍이 지나가기만 바짝 엎드리고 기다릴 수 없다. 그동안 ‘견디는 일상’을 살았다면 이제는 ‘그럼에도 잘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했다. 장기전에 임해야 할 때인 것이다.
 
비행기 탑승 안내 중 유사시 부모가 먼저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후 아이를 도와주라는 내용이 있다. 어린아이, 노인 부모, 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해 나 자신부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 설 수 있을 때 타인을 도울 수 있다. 부모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휴식 시간을 사수해야 하는 이유다. 매일 심심하다고 노래 부르는 아이를 달래면서, 사람은 가장 심심할 때 가장 창의적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아이에게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놀이의 주체자를 더 이상 내가 아닌, 아이에게 두기로 한 것이다.  
 
마침 SNS에선 다양한 캠페인들이 번져나가고 있었다. 그중 ‘#7days7covers’와 ‘#쇼미더놀이’ ‘#집콕’ 해시태그가 눈에 띄었다. 일주일 동안 일곱 권의 책을 읽고 표지만 소개하는 부담 없는 릴레이 캠페인 ‘7days7covers’는 불안에 지친 마음을 독서로 환기하는 계기가 됐다. ‘쇼미더 놀이’는 아이행복연구소에서 시작한 캠페인이었다. 아이와 함께 노는 모습과 ‘지금 너의 놀이를 보여줘’라는 취지였다. 서서히 지치기 시작하는 부모에게 좋은 놀이 팁과 센스 있는 엄마들의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양육 시기를 서로 독려하고 있었다.
 
마치 몰아 쓴 여름방학 일기장처럼 이번 기회에 아이를 더욱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나를 더 지치게 만들었다는 걸 인정하기 시작했다. 유머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였다. 웃음이 서로의 불안을 달래고 있었다. 매일 최전선에서 고생하는 의료진과 관계자를 생각하면 푸념이 철없는 하소연처럼 느껴지겠지만, 분명한 건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멘탈부터 지키며 아이와 지치지 않고 열심히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마스크 속 침묵과 외로움을 느끼는 한편, 그럼에도 나의 가족, 이웃들이 여전히 무탈하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어려움 속에 길어 올린 농담과 유머는 결국 우리의 생존법이자 지혜다. 코로나가 종식되면 무엇을 하고 싶냐는 긍정적인 질문을 일부러 안부처럼 서로 던지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아이 손을 잡고 화천 오일장을 나서고 싶다. 맨 얼굴로 서로 인사를 나누고, 핫도그도 먹고, 주근깨가 생길 만큼 햇살을 맘껏 쐬고 싶다. 나란히 앉아 웃음꽃 피우는 시장 할머니들의 안부도 묻고 싶다. 긍정적인 미래를 향해 달리는 마라토너의 마음가짐으로 오늘 하루도 힘을 빼고 페이스 조절에 나선다. 나 자신부터 행복 ‘플렉스’해야 할 때니까.
 
WRITER 전지민  
전 에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그린 마인드〉 편집장. 지금은 강원도 화천에서 가족과 함께 여성, 엄마로서 지속 가능한 삶을 고민하는 내용을 담은 〈육아가 한 편의 시라면 좋겠지만〉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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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 이마루
  • 사진 unsplash
  • 디자인 온세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