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진의 진심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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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의 진심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배우와 엄마로 살고 있는 한혜진이 두 개의 삶을 긍정하는 힘에 관하여.

ELLE BY ELLE 2020.05.07
 
백리스 니트 톱과 레더 스커트는 모두 Salvatore Ferragamo. 이어링은 Mama Casar.

백리스 니트 톱과 레더 스커트는 모두 Salvatore Ferragamo. 이어링은 Mama Casar.

퍼프 슬리브 셔츠와 그린 팬츠는 모두 Salvatore Ferragamo. 후프 이어링은 Thomas Sabo.

퍼프 슬리브 셔츠와 그린 팬츠는 모두 Salvatore Ferragamo. 후프 이어링은 Thomas Sabo.

홀터넥 톱은 Recto. 와이드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손에 든 턱시도 재킷은 Ermanno Scervino. 드롭 이어링은 Ille Lan.

홀터넥 톱은 Recto. 와이드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손에 든 턱시도 재킷은 Ermanno Scervino. 드롭 이어링은 Ille Lan.



딸 시온이가 어느덧 6세라죠 이제는 정서적으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네요. 아이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고 눈치도 봐야 해요. 예전엔 잘 먹고, 싸고, 잘 수 있게 해주기만 하면 됐는데(웃음). 어려워졌어요. 
 
어떤 엄마인가요 단호할 땐 아주 단호해요. 안 되는 건 끝까지 허용해 주지 않아요. 하지만 딸과 친구처럼 지내고 싶은 엄마이기도 해서 둘이 꽤 재미있게 놀아요. 다칠 위험만 없다면 자유롭게 하도록 둬요. 
 
일 욕심은 여전한가요 1년에 한 작품씩은 하고 싶어요. 배우로서의 욕심은 이 정도만 부리려고요. 아직 너무 부족한 연기자다 보니 작품을 통해 조금씩이나마 발전하고 싶어요. 결국 작품을 많이 해야 좋은 배우가 되더라고요. 또 일을 하지 않으면 아이가 내 우상이 될 것 같기도 해요. 아이만 바라보며 살면 내 생각대로 아이를 컨트롤하려 들지도 몰라요. 일을 해야 아이에 대한 집착이나 염려, 욕심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MBC 드라마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 이후 2년 정도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요 한국에 가끔 들러 광고나 예능 활동을 조금씩 하고 그 외에는 남편과 딸을 위해 살았어요. 영국에 사는 동안 자기계발도 하고, 운동이나 영어 공부도 하려 했는데 외국 생활이라는 게 녹록하지 않네요. 나를 위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런 시기는 어떤 마음으로 보내나요 그냥 받아들여요. 다행히 내가 그렇게 화려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보통의 삶에 익숙해요. 시간은 많은데 만날 사람은 별로 없고, 평탄한 날들이었어요. 세 식구가 한국에 살았다면 뿔뿔이 흩어져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르죠. 영국에서는 셋이 함께 평온한 저녁 시간을 자주 즐겼어요. 영국 생활을 통해 더 단순해진 것 같아요. 욕심부리며 달리지 않아도 충분히 기쁘게 살 수 있다는 것도 알았죠. 일이 있을 땐 일에 집중하고 일이 없을 땐 엄마로, 아내로 사는 삶에 집중해요. 그렇지 않은 삶을 살 여력은 없거든요(웃음).  
 
가장 개인적인 기쁨을 누리는 순간이 있다면요 주중이면 딸은 학교에서, 남편은 구단 훈련장에서 점심을 먹어요. 그럼 늘 혼자 책 한 권이나 랩톱 들고 동네 카페에 가요. 책을 읽거나 넷플릭스 보면서 브런치를 먹죠. 아무도 나를 모르니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나만의 시간을 누리곤 해요. 
 
곧 방영될 tvN 드라마 〈외출〉을 촬영 중이에요. 14년 차 워킹 맘 한정은 역할이죠. 14년 동안 일하면서 아이를 키운 엄마라니 내공이 대단한 사람일 듯해요 일 때문에 아이를 늦게, 어렵게 가졌고, 그래도 자신의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에요. 직장에서 받는 성차별적 대우에 신물이 나지만, 주택 담보 대출 등 경제적 사정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지도 못하죠. 아이는 키워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친정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요. 작품이 정말 좋아요. 오래 고민하다가 용기를 갖고 도전했어요. 
 
왜 용기가 필요했나요 어려운 작품이거든요. 이제껏 참여한 작품 중 가장 세요.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과 대본 보다가 너무 힘들어서 덮어버리기도 했어요. 아이가 있는 여자라는 이유로 감내하거나 돌파해야 하는 현실이 그려져요. 
 
한정은은 그런 현실을 당차게 헤쳐 나가나요 일단 한정은은 진짜 멘탈이 강해요(웃음). 속이야 어떨는지 몰라도요. 
 
지난 작품과 배역을 되돌아보면 배우 한혜진의 전문 분야가 보여요. 굳세고 당찬 여성 캐릭터요. 그런 인물에 매력을 느끼는 걸까요 나를 그렇게 보는 것 같아요. 도무지 뭘 쉽게 얻을 것 같지 않은 인상인 건지, 어려움을 맞닥뜨렸을 때 무너지지 않고 잘 헤쳐나갈 것 같은 이미지인 건지. 사실은 아닌데요(웃음). 
 
현실에선 누구나 그런 걸요. 무너지기도 하고 헤쳐나가지 못할 때도 있고요 예전엔 조그만 문제에도 당황하거나 화가 났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아니에요. 아이도, 가정도, 남편도 있잖아요. 결혼과 동시에 많은 변화를 겪다 보니 달라졌어요.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건강하기만 하면 돼요. 
 
옐로 튜브 톱 드레스는 3.1 Phillip Lim. 블랙 턱시도 롱 재킷은 Ermanno Scervino. 이어링은 Ille Lan.

옐로 튜브 톱 드레스는 3.1 Phillip Lim. 블랙 턱시도 롱 재킷은 Ermanno Scervino. 이어링은 Ille Lan.

 
늘 그랬던 것 같아요. 이유 있는 역할이라면 멋있어 보이지 않을지라도 받아들이죠. 
 
결혼한 해에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에 출연했어요. 아이가 있는 기혼 여성 역할을 맡았죠 결혼하자마자 초등학생 아이를 둔 엄마 역할이 들어온 거예요. 내 나이 서른셋이었는데. “아이가 이렇게 크다고요? 조금 더 어릴 순 없는 거겠죠?”라고 말했던 기억이 나요(웃음).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변화를 그냥 받아들였어요. 늘 그랬던 것 같아요. 이유 있는 역할이라면 멋있어 보이지 않을지라도 받아들이죠. 이유를 찾기 힘든 캐릭터는 조금 힘들고요. 
 
그때나 지금이나 남자 배우들은 기혼에 아이가 있어도 싱글 남성 역할을 자주 하지 않나요 그러니 여자 배우들이 결혼과 출산을 고민할 수밖에요. 그래도 지금은 채널도, 콘텐츠도 조금씩 다양해지고 있어요. 기혼의 엄마가 주연이거나 여성 중심의 흥미로운 서사를 가진 작품이 많아졌죠.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점점 줄어들 거라 생각해요. 그럼 할 수 있는 걸 하면 돼요. 주연이든 조연이든 좋은 작품이라면 하고 싶어요. 의미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요. 이제 남편과 아이가 없는 여성 캐릭터를 제안받는 일은 드물 테지만요. 
 
〈외출〉도 여성 서사가 두드러지는 드라마인가요 맞아요. 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중심축이거든요. 이런 작품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여성 중심의 서사도 이제 좋은 시청률과 많은 공감, 호평을 얻을 수 있다는 걸 모두 알잖아요. 
 
이런 변화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다고 느끼나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리모컨을 쥔 여성들이 원하는 이야기가 무엇인가에 대해 다양한 답을 구하고 있는 것 같아요. 
 
영화〈26년〉에서 연기한 심미진이 떠오르네요. 국가대표 사격 선수 출신의 저격수 역할이었죠. 심지어 그때 들었던 기다란 총은 M16을 저격용으로 개조한 진짜 총이었다면서요 그 역할을 맡은 건 행운이었어요. 당시 배우들이 그 작품에 출연하길 많이 꺼려서 내 차지가 됐거든요. 심미진이라는 캐릭터에는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어요. 
 
다년간 고정으로 〈힐링캠프〉 같은 토크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좋은 MC로 인정받은 경험을 더 살리고 싶지는 않은가요 좋죠. MC 제의는 꾸준히 와요. 사실 〈힐링캠프〉에 출연할 때만 해도 배우가 예능 MC를 하면 모두가 마이너스라고 생각했어요. 선입견이 엄청났어요. 그 무렵의 나는 그걸 편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어떤 제안에도 ‘그런 건 절대 안 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거든요. ‘재미있겠네. 한번 해볼까?’라고 생각했죠. 지금도 그래요. 
 
데뷔한 이래 줄곧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었나요 처음엔 굉장히 보수적이었어요. 흥행에 몇 번 실패하고 나니 내려놓게 되고, 겸손해졌달까요. 어떤 경험이든 도움 되는 면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마이너스가 되는 경험은 없는 것 같아요. 
 
보수적이던 때엔 어떤 룰이 있었나요 작품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작품이 아닌 걸 하면 내가 망가질 것 같았죠. 그땐 선뜻 뭔가를 하려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잘되는 작품을 하고 싶었고요. 어렸고, 한 작품의 시청률이 저조하면 심적 압박과 스트레스로 힘들어했어요. 그다지 좋은 안목을 가진 것도 아닌데, 내 딴에는 잘되는 작품을 따라가려고 노력했죠. 
 
〈힐링캠프〉 MC로 맹활약하던 시절, 당신의 무기는 무엇이었나요 예능 대본을 외웠던 거요(웃음).  〈미운 우리 새끼〉 진행자로 출연할 때까지도 나는 대본을 외웠어요. 다른 예능 선배님들은 대본을 훑어보기만 하고 현장에서 직감으로 하시거든요. 내게 주어진 질문을 충실하게 던지다 보니 함께 출연한 선배님들이 놓친 부분을 챙기게 되고, 그게 나름 내 역할이 됐어요. 배우로서의 습관이 좋게 쓰인 경우죠. 또 리액션이 워낙 큰 편이에요. 친구들과 대화할 때도 아주 크게 감탄하고 고개를 끄덕여요. 이건 집안 내력이에요. 엄마도 그러시고, 두 언니도 그래요. 리액션을 크게 하는 사람 앞에선 어떻게든 반응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 사람을 향해 한 마디라도 더 하게 되죠. 
 
그때 ‘돌직구 한혜진’이라는 별명도 얻었어요. 솔직하지만 무해한 재치를 발휘하는 MC였죠 사실은 말조심하는 습관이 몸에 뱄어요. 말 한마디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질타를 받을 수도, 사랑을 받을 수도 있는 직업을 가졌잖아요. 그게 오히려 토크쇼 진행할 때 장점이 된 모양이에요. 진심으로 궁금한 걸 묻거나 말했지만, 말의 모양새를 다듬는 습관이 들어 있었던 거죠. 
 
평소에는 어떤가요? 무해한 농담을 즐기나요 장난을 잘 쳐요. 제 안에 누굴 웃기고 싶다는 본능이 있나 봐요. 학창시절에도 친구들 별명은 거의 다 제가 지어줬어요. 남편, 아이와 함께 있을 때도 주로 그런 역할이에요. 남편에게 “나같이 재미있는 여자 어디서 못 만나”라고 말하곤 하죠(웃음). 
 
남편과 유머 코드가 잘 맞나요 잘 맞아요. 가끔 내가 짓궂은 농담을 해도 남편이 유머러스하게 잘 받아줘요. 
 
자신의 인생에선 모두가 다 철학자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무엇을 진리라 믿으며 살고 있나요 선한 영향력이라는 게 존재하고,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거요. 누군가 나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나에게 관심이 얼마나 있든 나를 아는 사람의 수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요. 게다가 남편도 잘 알려진 사람이니까요. 둘 모두 선한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국에서 지내는 동안 남편과 이런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 이왕이면 그렇게 살자. 불평불만 하지 말고.” 
 
배우가 된 이후 오래도록 꿈꿔온 걸 이뤘던 순간이 있나요 아직은 없어요. 더 달려봐야 알 것 같아요. 시대는 계속 변해요. 촬영 기법도 달라지고요. 〈외출〉의 경우 컷 수가 정말 많아요. 예전 드라마들은 타이트 샷 위주로 촬영했지만, 요즘은 느슨하고 여유 있게 잡은 앵글을 선호하죠. 배우고 경험해야 할 건 언제나 많아요. 열심히 해야 해요. 
 
요즘 당신의 인플루언서는 누구인가요 여자 배우들요. 그들에게는 있고 나에겐 없는 매력, 장점, 연기력 같은 걸 보면서 많이 배우고 느껴요. 요즘은 〈부부의 세계〉 김희애 선배에게 빠져 있어요. ‘얼마나 많이 대본을 공부한 걸까. 준비한 만큼 현장에서 100% 다 해내는 분이구나. 대단하다. 존경스럽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보고 있죠. 정말 멋있어요.  
 
스트라이프 패턴의 드레스는 Ports 1961. 이어링은 Mama Casar.

스트라이프 패턴의 드레스는 Ports 1961. 이어링은 Mama Casar.

 
볼륨있는 실루엣의 블랙 드레스와 벨트, 이어링은 모두 Alexander McQueen. 블랙 스틸레토 힐은 Gianvito Rossi.

볼륨있는 실루엣의 블랙 드레스와 벨트, 이어링은 모두 Alexander McQueen. 블랙 스틸레토 힐은 Gianvito Ros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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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사진 목정욱
    에디터 이경진
    디자인 온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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