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LIFE

숨은 낙원 찾기 in 하와이

하와이로 떠난 다섯 번째 여정에서 발견한, 흥미진진하고 지속 가능한 낙원 여행법.

BYELLE2020.04.27
 
호놀룰루행 티켓을 쥐고 탑승 게이트가 열리길 기다리는 동안 나는 그레타 툰베리가 지난해 유엔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한 연설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읽었던 뉴스의 한 토막을 떠올렸다.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주 사이의 태평양에 8만 톤의 쓰레기가 떠다닌다는 이야기. 열대 섬으로 떠나는 낭만에 취해 비행기에서 와인을 홀짝이는 동안 우리는 사실 쓰레기 위를 날고 있었던 것이란 말인가. 돌연 나는 격렬하게 환경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여행은 직간접적 방식으로 환경 문제를 일으킨다. 하와이는 전체 GDP의 80%를 관광업이 차지하는,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관광지 중 하나다. 하와이가 지상낙원의 대명사가 되는 동안 그곳에도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후미진 해변을 전전하며 무념무상으로, 연방 물에 뛰어들며 시간을 죽이고 싶던 물렁한 마음에 스멀스멀 도전 정신이 피어올랐다. 당장 툰베리처럼 ‘기후를 위한 파업’을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놀고먹고 버리고 소비만 하는 여행 방식에서 슬쩍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와이를 갖가지 이유로 네 번쯤 여행했고, 이번 여정은 다섯 번째다. 한결같은 미소로 나를 반겨준 섬의 이면에 닿아보고 싶었다.
페이코의 레이 메이킹 클라스.

페이코의 레이 메이킹 클라스.

낙원의 맨 얼굴
내가 식물학자라면 아마도 하와이에서 평생 살고 싶었을 거다. 여기선 어떤 식물이든 어마어마하게 잘 자란다. 화산 활동이 끝난 지 오래인 이 화산 섬은 그 자체로 거대한 식물원이다. 그런데 이튿날 ‘트래블2체인지(travel2change.org)’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찾은 마노아 클리프 트레일에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오아후 섬의 생태계가 오랫동안 외래종에 잠식돼 왔다는 거다. 
 
트레일 초입에서 나를 맞아준 미조리는 카고 팬츠 차림에 맨발로 하이킹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10여 년 이상 이 숲의 토착 식물 복원 작업을 해온 ‘마노아 클리프 네이티브 리포레스트레이션 프로젝트’의 일원이다. 트래블2체인지는 이같이 지역의 지속 가능성을 목표로 행동하는 단체와 손잡고 다양한 여행 경험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자 비영리 조직이다. 미조리가 말했다. “이 숲에는 시나몬 나무가 있어요. 시나몬은 향기롭고 훌륭하지만 이곳의 생태계와는 맞지 않아요. 잎이 두꺼워 햇빛이 잎사귀를 투과하지 못하거든요. 시나몬 나무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땅에는 토착 식물이 자라지 못해요. 구아바와 대나무, 생강도 이 땅에는 어울리지 않는 외래종이에요. 엄청난 속도로 땅속 수분을 빨아들이면서 자라 토착종의 멸종을 이끌죠.” 
 
토착 식물의 잠식은 지난 100여 년간 일어났다. 인간이 무언가를 만들거나 짓거나 먹기 위해 외래 식물을,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고 마구 심었기 때문이다. 와이키키 최초의 호텔인 모아나 서프라이더는 1901년에 창업했다. 사실상 외래종은 하와이의 관광업과 함께 성장해 온 셈이다. 트래블2체인지 담당자 몬디가 말했다. “와이키키는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최고의 관광지이지만 진짜 하와이를 볼 수 있는 곳은 아니에요.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의 여행 방식에 변화를 일으키고 싶어요. 지속 가능한 여행이란 지역 커뮤니티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는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외길을 따라 울창한 숲속으로 걸어 들어갈수록 점차 더 많은 토착 식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윽고 특별보호구역이라고 적힌 영역에 들어섰다. 어린 시나몬 나무를 제거하는 작업에 착수하기 위해서다. 뽑고 또 뽑아도 ‘베이비 시나몬’은 끝없이 발견됐다. 그날 내가 어린 시나몬을 100개쯤 뽑았으니 토착 식물의 터전을 세 뼘 정도 더 넓힐 수 있었을까? 숲 생태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기분이란 생각보다 굉장했다. 예상하지 못한 희열이었다. 두 발로 걷고 발견하고 느끼며 내밀한 경험을 얻고 싶은 모험가라면, 언제든 색다른 여정을 꿈꾸는 여행자라면 트래블2 체인지를 통해 이 낙원의 맨 얼굴과 마주해 보기를.
트래블2체인지 프로그램인 토착 식물 복원 작업.

트래블2체인지 프로그램인 토착 식물 복원 작업.

하와이 포레스트 & 트레일과 함께한 선셋 & 럼 테이스팅.

하와이 포레스트 & 트레일과 함께한 선셋 & 럼 테이스팅.

팜 투 테이블에서 팜 투 보틀까지
“웬만하면 3개 이상의 섬에서 난 식재료가 한 접시에 고루 사용될 수 있도록 음식을 만들고 있어요. 이 세비체에 쓴 오이는 하와이 섬(빅 아일랜드), 토마토는 마우이의 농장에서 기른 겁니다. 생선은 오아후의 수산시장에서 구매했고요.” 와이키키 중심부에 있는 토미 바하마(tommybahama.com/restaurant)는 ‘팜 투 테이블’을 고집하는 레스토랑이다. 케네스 매켄지 셰프는 하와이 주요 섬의 농장과 직거래로 식재료를 공급받는다. “총 50~60곳의 농장과 일해요. 오래전부터 자세히 알던 곳들이죠.” 하와이에서 대규모로 운영되고 있는 팜 투 테이블 레스토랑은 이곳이 유일하다. “우리와 거래 중인 농장은 대부분 영세해요. 대형 레스토랑과의 계약으로 정기적인 공급처가 생겼으니 그들도 만족도가 높죠.”
 
그런가 하면 오아후 서부의 산기슭에는 ‘팜 투 보틀’ 방식으로 럼을 생산하는 코하나 럼 디스틸러리(kohanarum.com)도 있다. 농장과 양조 시설로 이뤄진 이 양조장에서는 사탕수수를 수확한 뒤 착즙하고, 즙을 증류기에 넣는 일이 거의 4시간 안에 이뤄진다. ‘팜 투 보틀’로 생산하는 럼은 무척 희귀하다. 사탕수수의 즙으로 양조하는 럼의 양이 전 세계적인 럼 생산량의 2%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98%의 럼은 설탕을 사용해 만든다.
 
“오래전 하와이 전역에는 100종 이상의 사탕수수가 자라고 있었어요.” 코하나 럼 디스틸러리의 잭이 방금 농장에서 가져온 사탕수수를 툭 썰어 착즙기에 넣으며 말했다. “플랜테이션 시대를 거치면서 그 수가 10여 종으로 줄었죠. 지금 이 농장에는 36종이 자라고 있어요. 품종을 되살리려는 노력 덕이죠.” 사탕수수도 품종에 따라 풍미가 모두 다르다.
 
코하나 럼 디스틸러리는 36종의 사탕수수로 다양한 맛의 럼을 빚는다. 특별한 럼의 여운을 음미하며 나는 선셋을 보러 이동했다. 럼을 마시고 선셋을 즐기는 이 여정은 ‘하와이 포레스트 & 트레일(hawaii-forest.com)’이 코하나 럼 디스틸러리와 연계해 선보이는 프로그램이다. 산행에는 내추럴리스트가 동행했다. 몇 해 전부터 하와이 여행 업계에서는 지역의 자연과 문화, 전통과 역사에 관한 정보를 여행자에게 전달하는 내추럴리스트들이 활동하고 있다. 나는 내추럴리스트에게서 이 땅의 꿈결같은 옛이야기와 전설을 들으며 와이키키 일대와 해가 넘어가는 서쪽 하늘이 모두 보이는 뷰 포인트를 천천히 걸었다. 놀랍게도 그 너른 땅은 개인 소유의 숲이었는데, 개발이 아닌 숲 복원 작업을 준비 중이라 했다.
레스토랑 토미 바하마 와이키키.

레스토랑 토미 바하마 와이키키.

사탕수수 주스로 럼을 빚는 코하나 럼 디스틸러리.

사탕수수 주스로 럼을 빚는 코하나 럼 디스틸러리.

영혼과 정신의 섬
오아후의 힙스터들이 모이는 복합문화공간 솔트(Salt)에 잠시 들렀을 때, 플라워 숍 페이코( paikohawaii)에서는 전통 방식으로 ‘레이(꽃 목걸이와 화관)’를 엮는 수업이 한창이었다. “하와이 사람들은 토착 식물의 꽃송이, 꽃잎, 풀 그리고 해초 등을 묶어 레이를 만들었어요. 대다수의 토착 식물은 영적인 의미를 지닌 하와이언 이름을 가졌죠.” 잎이 크고 길쭉한 식물 할라 페페(Hala Pepe)는 누군가 아프거나 위로가 필요할 때 사용됐다. 할라(Hala)는 ‘행운을 빈다’는 뜻이다. 이번 여행에서 발견한 사실이 또 있다. 하와이어로 “알로하(안녕)”와 “마할로(고마워)” 하고 인사할 때면 필연적으로 웃는 상이 된다. 알로하, 마할로가 지닌 억양은 어찌나 온화하고 다정한지. 나는 상점에서 2달러짜리 립밤 하나를 사며 점원에게서 들은 ‘알로하’에 달뜬 채, 도보 50분쯤 되는 거리를 하염없이 걸어 호텔로 돌아온 적도 있다. 
 
하와이어에는 이 섬의 햇살과 바람과 바다와 산이 다 담긴 것 같다. 그러고 보면 하와이가 지상낙원의 대명사가 된 이유 역시 이 섬이 지닌 맨 얼굴에 있다. 하와이언이 건네는 알로하와 마할로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럴 때마다 찬란하게 빛나는 그들의 미소를 본 사람이라면, 하와이에 머물며 하루에도 몇 번씩 무지개를 보거나, 섬 곳곳의 원시림을 두 발로 탐험해 본 사람이라면 ‘낙원’이라는 하와이의 오랜 별명에 이견을 내지 못할 테니까. 하와이의 자연을, 누구도 팔거나 살 수 없는 이곳의 소울과 바이브를 만끽한 여행자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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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이경진
  • 사진 하와이관광청 / 오아후관광청
  • 디자인 온세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