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대신 거리로 나선 10대 운동가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SOCIETY

학교 대신 거리로 나선 10대 운동가들

그레타 툰베리는 우연한 등장이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기후 변화 대처를 촉구하며 거리로 나온 10대 운동가들의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할 이유.

ELLE BY ELLE 2020.04.17
 

알레산드리아 비야세노르(16세, 미국)

16세의 알레산드리아 비야세노르(Alexandria Villaseñor)는 이미 뉴욕 시위 현장의 베테랑이다. 2018년 12월 14일, 비야세노르는 뉴욕 유엔본부 앞에서 ‘기후 변화를 위한 등교 거부’라 쓰인 피켓을 들고 홀로 시위를 시작했다. 시위한 달 전, 비야세노르는 친척집 방문 중에 캘리포니아 최악의 산불 ‘캠프파이어’의 피해를 직접 겪었다. 연기가 집으로 스며들어왔고, 돌돌 만 수건으로 창문과 문틀을 막았다. 당시 캘리포니아의 대기질은 세계 최악이었다. 계절 불문하고 산불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상황이 비정상이라는 걸 깨달은 비야세노르는 얼마 후 그레타 툰베리의 유엔 연설을 봤고, 고민 끝에 ‘학교 파업’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몇 주 동안은 아무도 없었어요. 그러고 나서 어른들이 피켓을 들고 함께하기 시작했죠”라고 비야세노르는 회상한다. 시위 10주차에 접어들면서 처음으로 학생 시위대가 생겨났다. 이렇게 얻은 추진력을 활용하기 위해 비야세노르는 10대들이 주도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Earth Uprising’을 설립해 전 세계 청소년 지도자들을 연결하고 지구를 위해 함께 싸울 수 있도록 독려해 왔다(이 웹사이트에서는 스페인, 러시아, 파키스탄, 케냐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일어나는 시위와 기후 변화 대항 캠페인을 볼 수 있다). 비야세노르는 지난 9월에 배터리 파크에서 열린, 25만 명이 참가한 학교 파업에서 툰베리를 소개했다. 또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후 변화 행사에서 연설하고, 자신의 영웅 제인 구달과 만났으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사진도 찍는 등,
일반적인 10대가 할 수 있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했다. 유명세가 온라인상의 악플,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사람들의 괴롭힘, 심지어 살해 협박으로 이어지는 불상사도 생겼다. 하지만 소녀는 멈추지 않았다. “우리가 이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결과라고 생각해요.” 비야세노르가 타협해야 했던 것은 또 있다. “학교생활은 정말 재미있지만, 지금 우리는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게 하도록 교육받을 권리를 희생해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비야세노르는 말한다. 
금요일마다 학교를 몇 번 결석하고 나서, 그는 환경운동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도록 사립학교로 전학했다. 최근 유엔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온도를 산업화 전보다 1.5℃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인류는 비야세노르가 26세가 되는 2030년까지 에너지와 교통을 비롯한 인간 문명 시스템을 유례없는 정도로 바꿔야 한다. 심지어 그렇게 해도 화재와 홍수, 가뭄 등 기후 변화가 원인이 되는 자연재해 발생 빈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런 상황의 위급함은 비야세노르로 하여금 매일 더 목소리를 높이게 한다. “10대들이 힘을 가질 나이가 될 때까지 내버려두면 너무 늦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항의하고 행동을 취할 겁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밖으로 나올 거예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김도현(18세, 대한민국)

코로나19 여파로 개학이 무기한 미뤄진 상황이지만 김도현은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가 속한 청소년 환경단체 ‘청소년기후행동’이 지난  13일 헌법재판소에 위헌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핵심 슬로건은 ‘기후 변화 말고, 안전한 미래’. 정부의 기후 관련 정책이 생명권, 환경권, 평등권 등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같은 취지로 네덜란드에서 먼저 진행된 소송은 2018년에 승소해 네덜란드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율을 기존보다 25% 이상 높여야 한다는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김도현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건 2년 전. 봄과 가을이 점점 짧아지고, 폭염으로 에어컨 없이는 잠들 수 없는 밤이 길어졌고, 기후 문제는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기구)에서 나오는 보고서도 그렇고, 환경에 관한 최신 연구결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교과서는 여전히 대중교통을 타고, 물을 아껴 쓰라고 말할 뿐이에요.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의 말에 따르면 기후 변화는 보다 구조적인 문제다. 정부나 기업이 나서서 사회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지구 표면의 온도 상승을 1.5℃ 아래로 유지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이런 위기감 속에서 김도현은 2018년 친구들과 함께 청소년기후행동을 조직해 거리로 나섰다.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한 국제적인 청소년 파업 시위 ‘내일을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에 발맞춰 지난해 3월, 5월, 9월 결석 시위를 진행했다(지난해 9월에는 약 600여 명의 청소년이 시위에 참여했다). 각종 거리 캠페인과 ‘응답하라 청와대’ ‘응답하라 국회’ 등의 청원 시위 역시 무더위 속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그 사이 세계재생에너지총회(KIREC)에서 기조 연설자로 나서는 일도 있었다. “우리가 왜 학교를 가지 않고 거리로 나왔는지 생각해 주셨으면 해요. 어른들이 화력발전소를 짓기로 결정했을 때 우리에게 선택권은 없었어요. 하지만 그 결과는 오롯이 저희가 지게 되겠죠.”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은 오히려 증가했다. 4·15 총선을 앞두고 발표된 공약을 봐도, 여전히 환경과 관련된 밀도 있는 공약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한 해 동안 언론의 주목도 많이 받았고, 저희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고 말한 정치인도 많았어요. 하지만 정책 변화가 하루 아침에 일어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이번 기후 소송처럼 올해는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할 계획이에요. 다행히 저희를 도와주고 싶다는 어른들이 꽤 많아요.” 김도현의 말처럼 변화는 분명 시작되는 중이다. 지난 9월, 서울시 교육청에서는 청소년기후행동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시키기로 결정했다. 청소년 환경 교육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된 서울시 생태교육 중장기 계획안이 조만간 발표될 예정이다. “위기가 곧 기회라고 생각해요. 이제까지 인류가 살아온 환경을 완전히 바꾸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려볼 수 있는 기회요. 그러니 체념하기보다 나 한 사람의 변화가 커다란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 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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