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라는 경제 정의의 문제 || 엘르코리아 (ELLE KOREA)
SOCIETY

기후 변화라는 경제 정의의 문제

캐나다 출신의 저널리스트 나오미 클레인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와 어두운 미래를 통찰하는 이 시대의 지식인이다. 20년 넘게 사회운동에 몸담아온 그가 인류를 위협하는 지구온난화와 거대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ELLE BY ELLE 2020.04.15
 
한국에서 발간된 나오미 클레인의 저서〈쇼크 독트린〉.한국에서 발간된 나오미 클레인의 저서〈노NO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 시대에 가장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는 지식인이자 환경운동가로 손꼽히는 나오미 클레인(Naomi Klein). 2000년부터 클레인은 비상한 통찰력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노동력을 착취하고 마케팅으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거대 기업을 다룬 첫 저서 〈슈퍼 브랜드의 불편한 진실: 세상을 지배하는 브랜드 뒤편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가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 자유무역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이 책은 1999년 11월, 시애틀에 WTO(세계무역기구) 회의에 반대하는 4만 명의 군중이 모였을 때 출판됐다. ‘자유시장경제는 이미 부유한 사람들을 더 부유하게 만드는 시스템’이라 통렬히 고발하는 그의 다음 책 〈쇼크 독트린: 자본주의 재앙의 도래〉는 2007년에 출간됐다. 그 다음 해 미국 경제는 금융위기를 맞았다.
 
클레인이 최근 집중하고 있는 주제는 기후 변화다. 그는 현재의 경제 시스템이 지구의 자연 시스템과 충돌하고 있으며, 이를 막기 위해 광범위한 경제 및 사회적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2014년에 펴낸 책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자본주의 대 기후〉가 출간된 그 주에 약 60만 명의 사람들이 ‘국민의 기후 행진’에 참여했다.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작가 이브 엔슬러는 “클레인은 예언자예요. 아마 노암 촘스키를 제외하고 나오미처럼 큰 그림을 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지난해 6월, 토론토에서 열린 ‘모두를 위한 그린 뉴딜’ 행사에서 만난 그의 연설에서도 사태의 위급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녹색 인프라와 재생에너지에 투자하여 화석연료 경제에서 벗어나, 더 공정한 세계를 만드는 그린 뉴딜식의 계획이 경제적으로 유익하고 재정상으로도 실현 가능한지를 설명하는 데 42분 중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도전 과제는 절망감을 이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것이 너무 늦었고,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충분히 해낼 수 없다고 느낄 수 있어요. 네, 그렇습니다. 세계적으로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보수 우파가 커지고 있지만, 그들만이 급증하는 정치 세력인 건 아닙니다. 우리도 있죠”라고 말했다. 내가 클레인에게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은 기후 변화에 직면해 희망을 유지하는 법이었다. UN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의 지난 보고서에서는 인간이 초래한 기후 변화로 지구 온도가 2040년까지 산업화 이전 대비 2.7℃ 상승하고, 가뭄과 산불이 심화되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빈곤에 시달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최소 5000만 명의 사람들이 해안 침수로 이재민이 될 수 있으며,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여야 계속되는 지구 온난화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명시했다. 저서에서 클레인은 어려움이 많은 건 분명하지만 이 난관은 극복될 수 있다고 말한다. 내가 카페에서 물었을 때, 그는 연설할 때의 모습보다 덜 낙관적이었다. “솔직히 말해 ‘희망’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아요. 다만 자신에게 무엇을 할 것인지,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그냥 포기할 것인지 질문을 던질 뿐이죠.”
 
클레인은 행진을 좋아하지 않았고 자신이 체력적으로 구호를 외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라고 했지만, 차츰 기후 운동에 관여하게 됐다. 그는 2011년 백악관 앞에서 ‘키스톤 XL 파이프라인(캐나다와 미국을 잇는 대규모 송유관 건설 프로젝트)’ 반대 시위를 하면서 처음으로 체포됐다. 또 2015년 캐나다 작가와 예술가, 지도자, 환경운동가 등이 연합해 도약 선언(Leap Manifesto)을 발표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이 선언은 후에 클레인의 주요 논지가 된, 우리 사회의 불평등 문제는 ‘지구를 위한 마셜 플랜’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의 근간이 됐다. 2016년 10월 말, 그녀는 기후 변화와 관련된 공로로 시드니평화상을 수상하기 위해 토론토를 떠나 호주로 갔다(비행으로 오염을 초래하면서 환경오염 방지에 대한 업적으로 상을 받는 아이러니 때문에 수상 거절까지 고심했다).
 
클레인은 당시 미국 대통령 선거인단투표에서 버니 샌더스를 지지했고(클레인의 부모는 미국에서 태어났고, 그는 캐나다와 미국 시민권자다), 힐러리 클린턴의 기업 커넥션을 자주 비판했지만,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대통령선거 3일 후, 클레인은 자신의 수상 소감을 시작하며 연설을 성급하게 준비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그는 두 가지 버전의 연설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트럼프가 승리했을 때의 버전을 쓸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손가락이 파업에 들어간 셈’이었다. 하지만 그 후 신간 집필에 착수한 그는 〈노 NO로는 충분하지 않다: 트럼프의 충격 정치에 저항하고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얻는 법〉을 3개월 만에 내놓았다. 이 책에 담긴 기후 변화와 관련한 전망은 지극히 암울하다. 그는 책에서 “우리는 앞으로 4년 동안 그 사이에 배출된 온갖 온실가스 때문에 극심한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피할 가능성은 줄어들 것이다.”  
 
선거 날 저녁, 클레인의 아버지는 그에게 “우리가 캐나다로 이민 온 것이 기쁘지 않니?”라는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당시 클레인과 남편 루이스, 아들 토마는 미국 뉴저지로 이사하기 직전이었다. 클레인이 럿거스 대학 언론·문화·여성학 석좌 교수로 임명됐기 때문이다. 토론토에서 그와 대화를 나눈 지 일주일 후, 나는 책으로 가득 찬 클레인의 대학 사무실을 방문했다. 대화가 끝난 뒤, 클레인은 자신의 흰색 프리우스로 나를 기차역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는 붉은 고기를 피하고 있지만 생선과 해산물은 먹는다. 또 전보다 비행기를 덜 이용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비행기를 탄다. 그는 “라이프스타일에 집착하지 않으려 해요”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런 노력이 절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클레인은 친환경 제품을 구입하기만 하면 충분하다는 인상을 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저는 정말이지 규제 없이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사는 일상의 세세한 부분까지 그가 위선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했다. 클레인의 조모이자 저명한 페미니스트 작가인 미셸 랜즈버그는 한 기자가 클레인의 쓰레기통을 살펴봤을 때를 회상했다. “환경에 대해 말한다고 해서 꼭 삼베 옷을 입어야 하나요?” 클레인은 자신의 커리어를 쌓는 동안 “논란이 많은 토론을 위해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정치 스펙트럼으로부터 공격을 받아왔다. 우파에서 그는 극좌파 생태사회주의자라 불리지만,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분석(클레인은 자본주의를 완전히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이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런 비난에 대해 그는 대부분 무시하거나 혹은 반박하거나 기록한 것을 살짝 수정하기도 한다. 토론토에 있는 그의 집에 ‘아마 중국에서 생산됐을’ 플라스틱 장난감 집이 있다는 기사가 난 후, 클레인은 그 장난감 집을 ‘중고’라고 트위터에 올렸다.
 
10대 시절에는 그도 메이크업과 쇼핑을 좋아했다. 에스프리의 로고가 멋지다고 생각해서 매장에 취직했으나 태도가 불량하다고 해고됐다. 고등학교 졸업 앨범에는 그가 “과산화수소를 훔쳐 감옥에 있을 가능성이 높은 소녀”라고 적혀 있다. “저는 그저 80년대의 평범한 아이였어요.” 진보주의자 부모 아래서 자신만의 확고한 개성을 만들어간 클레인은 토론토 대학에 입학해 저널리즘에 집중했다. ‘1차 인티파다’로 알려진 팔레스타인 민중 봉기가 있었을 때, 클레인은 학생 신문에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 그 후 폭탄 테러 위협을 받으면서 자신의 기사를 반대하는 유대인 학생연합이 주최하는 모임에 참석했다. 클레인은 “제 옆에 앉은 한 여성이 ‘만약 나오미 클레인을 만나면 죽여버릴 거야’라고 말했어요”라고 2000년 〈가디언〉지에서 밝혔다. “저는 ‘내가 나오미 클레인이야. 그리고 나도 너희처럼 유대인이야’라고 당당히 서서 말했죠. 방 안에는 정적이 흘렀어요.”
 
3년 후, 클레인은 〈글로브 앤 메일〉에 취직하기 위해 학교를 중퇴했고, 좌파 성향의 잡지 〈디스〉 편집장을 거쳐 1996년 학교로 돌아갔다. 당시 그는 TV 저널리스트이자 유명한 정치인 가족 출신인 애비 루이스(Avi Lewis)와 사귀고 있었다. 클레인은 루이스의 창고 다락방으로 이사했고, 학교를 다시 그만두고 〈슈퍼 브랜드의 불편한 진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이키 공장 직원을 취재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신혼여행의 일부분을 보내기도 했다(지금도 두 사람은 공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커플이다. 루이스에게 클레인에 대해 묻는 이메일을 보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라는 제목의 답장을 보내왔다).  
 
2009년 WTO 주재 볼리비아 대사는 지구 온난화의 원인을 적게 제공한 빈곤 국가들이 기후 변화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며, 이는 선진국의 경제적 배상에 대한 논쟁을 야기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클레인은 처음으로 기후 변화에 대해 책을 쓸 마음이 생겼다. “아, 기후 변화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경제 정의의 문제라는 생각을 했죠.” 지구 온난화에 대한 클레인의 생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순간은 2009년 UN 기후변화회의 참석을 위해 코펜하겐에 갔을 때다. “이제 드디어 ‘지구 온난화 문제가 해결되는 걸까?’라며 잔뜩 기대했었죠. 하지만 세계 지도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하고는 그냥 걸어 나왔어요.” 이 경험은 클레인에게 대단한 충격이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지구 온난화를 인간이 야기했다고 생각하는 미국인이 2년 동안 71%에서 51%로 줄어든 새로운 설문조사를 보았다. 그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질문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가 그 결과물이다.
 
클레인은 오랜 시간 임신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한동안은 지구 온난화 때문에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해 이중적인 감정을 가지기도 했다. “저는 아들을 물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싸우는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전사처럼 상상했어요.” 요즘에도 클레인은 토마의 미래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는 〈가디언〉의 영상 팀과 함께 아들을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 데려갈 기회가 있었다.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의 4분의 1이 이미 파괴됐지만(클레인은 이를 ‘죽음의 천사’가 지나간 것 같다고 묘사했다), 그날 토마와 함께 방문한 지역은 산호들이 살아 있었다. 그리고 토마는 ‘니모’와 해삼을 보았다. 그날 밤, 클레인은 아이를 침대에 누이며 “토마, 오늘은 네가 바닷속에 비밀이 있다는 걸 발견한 날이야”라고 말했다. 그 다음 아들이 한 말 때문에 클레인은 울음을 터뜨렸다.  토마는 더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네, 제가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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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사진 Lia Clay
    글 Molly Langmuir
    에디터 김아름
    디자인 온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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