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마다 체포되는 여자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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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마다 체포되는 여자

제인 폰더는 지난 60년 동안 모든 대중문화를 경험하고 변화시키며 시대정신을 이끌어왔다. 이제 그녀는 영화와 레드 카펫에서는 노인 차별, 거리에서는 기후 변화와 맞서 싸운다. 다시 한 번 최전방에서.

ELLE BY ELLE 2020.04.13
 
울 재킷은 Alexandre Vauthier Haute Couture. 화이트 우븐 셔츠는 Chanel. 크리스털 귀고리는 Gucci by ssence.com. 화이트골드와 다이아몬드 링은 Messika. 팬츠는 개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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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폰더는 목소리보다 이미지가 더 멀리, 더 빨리 전파된다는 것을 안다. 지난해 11월, 워싱턴 D.C.에서 샘 워터스톤, 테드 댄슨과 함께 기후 변화에 무신경한 미국을 규탄하는 시위 ‘파이어 드릴 프라이데이’를 시작한 이래 폰더는 금요일마다 시위에 동참 중이다. 소셜 미디어에 정통한 이 82세의 여인은 카메라 시선을 확실히 잡아 끄는 선명한 빨간색의 트렌치코트와 베레 차림으로 시위에 나선다. 그리고 매주마다 플라스틱 수갑(아이러니하게도 일회용)을 차고 끌려 나간다. 제인 폰더는 체포되는 모습도 멋져 보인다. 폰더가 처음 체포된 건 1970년 클리블랜드에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폰더는 캐나다에서 투어 강연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비타민을 플라스틱 통에 넣어 휴대했는데, 그것을 마약으로 오인해 리처드 닉슨의 명령에 따라 체포됐다. 폰더는 이중 관절의 소유자다. 지난 9월 초 토론토에서 그녀는 메스칼주를 마시며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본인의 이중 관절 덕분에 당시 머그 샷(Mug Shot)을 찍을 때 수갑에서 손을 빼내 주먹 쥔 손으로 단결 인사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제인 폰더는 곧 풀려났고, 그녀의 인생 첫 ‘체포 사진’은 전설이 됐다. 사진에서 폰더는 삐죽빼죽한 뮬렛 스타일의 머리를 하고, 왼쪽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제인 폰더가 첫 번째 오스카상을 수상한 영화 〈콜걸〉에 등장한 모습 그대로다. 그녀의 머그 샷은 이후 여성 저항운동의 상징이 됐다. 그녀가 털어놓은 또 다른 비밀은 워싱턴 D.C.에서 시위 선두에 서기 위해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그레이스 앤드 프랭키〉 제작진에게 4개월 휴가를 요청했다는 사실이다. 폰더는 그레타 툰베리와 자신의 ‘구루’인 캐나다 작가이자 사회활동가 나오미 클레인(이달 〈엘르〉의 지구의 날 스페셜에 그녀의 인터뷰 기사가 있다)에게 고무돼 ‘편안한 삶 깨뜨리기’에 열중하고 있는 느낌이라며 자신의 근황을 설명했다.
 
우리가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은 건 오후 7시 무렵이었다. 거의 12시간을 연설과 인터뷰로 보낸 폰더는 마침내 샹그릴라 호텔의 프라이빗한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의 앉은 자세는 무척 꼿꼿하다. 모두가 구부정한 자세로 살아가는 이 시대에 제인 폰더의 도도한 자세는 자못 비범하기까지 하다. 그녀는 신중하게 생각하고 아름답게 다듬은 문장을 구사하며, 톡톡 튀는 지성을 카리스마 있게 전달하는 능력을 가졌다. 제인 폰더는 토론토에서 로레알 파리 에이지 퍼펙트의 자랑스러운 모델로 활동 중이다. 폰더는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 “그들은 내 나이 때문에 나를 선택했다. ‘이런 나이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라고 썼다. “로레알 파리의 생각은 확고해요. 아름다움은 단지 젊음이나 모델의 완벽함에 있지 않고 인종과 나이를 뛰어넘어 모든 인간에게 있다고 믿죠.” 폰더는 덧붙였다. 
소셜 미디어에 정통한 이 82세의 여인은 카메라 시선을 확실히 잡아 끄는 선명한 빨간색의 트렌치코트와 베레 차림으로 시위에 나선다.
제인 폰더의 정체성에는 그녀가 맺어온 관계의 변화가 영향을 미쳤다. 전설적 배우 헨리 폰더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1959년에 어빙 펜이 촬영한 사진으로 〈보그〉 커버 모델이 되면서 대중의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 후 얼마간의 뉴욕 무대 활동, 궁극의 메소드 연기 코치 리 스트라스버그의 트레이닝을 거쳐 60년대 프랑스영화의 섹스 심벌로 떠올랐는데, 그 시절 그녀는 1968년 작 SF 고전영화인 〈바바렐라〉를 연출한 로제 바딤과 결혼했다. 폰더는 당시 학생운동으로 소용돌이 치던 프랑스에 살며 사회적 정의를 대변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는 그녀로 하여금 베트남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강하게 비난하는 반전 운동가로서 정체성을 갖도록 이끌기도 했다. 이때부터 폰더는 전형을 탈피한 심각하고 무거운 인물을 연기했다. 스크린 속 자신의 이미지를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제인 폰더는 일곱 번에 걸쳐 오스카에 노미네이트됐는데, 그녀에게 두 번째 오스카상을 안겨준 1978년 작 〈귀향〉과 1979년 작 〈차이나 신드롬〉에서 보여준 변화가 대표적이다. 이 시절 그녀는 캘리포니아의 활동가 톰 헤이든과 재혼해 진보적 민주당원으로 변신했다. 제인 폰더는 항상 대중문화의 흐름보다 한 걸음 혹은 두 걸음 앞섰다. 1980년 작 〈나인 투 파이브〉를 통해 직장에서의 불공정한 여성 지위에 꽤 일찍이 스포트라이트를 비췄고, 한 시대를 풍미한 책과 비디오 시리즈 〈제인 폰더의 워크아웃〉을 출시하며 사업에 손대기도 했다. 당시 폰더는 남편인 톰 헤이든과 추진 중이던 사회 정의 프로젝트의 기금 마련을 위해 이 사업을 기획했지만, 예상치 못한 덤으로 전 세계에 레그 워머를 유행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됐다. 다음 단계의 제인 폰더는 CNN 설립자인 테드 터너 여사였다. 영화산업에서 잠시 은퇴한 상태였던 그녀는 여성 미디어 센터의 기반 작업을 조용히 수행하고 부부의 근거지인 조지아 주의 청소년 임신을 막는 일을 하면서 90년대와 2000년대 첫 10년의 초반을 훌륭하게 은둔하며 보냈다. 2001년, 그녀가 줄곧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전남편”이라 부르는 테드 터너를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 그녀는 페미니즘과 기독교를 받아들이며 자신의 회고록 집필을 시작했다. 한없이 깊은 물속으로 침잠하여 자신을 돌이켜보는 시간을 지낸 뒤, 폰더는 2005년의 히트작 〈퍼펙트 웨딩〉으로 화려하게 돌아왔다. 제인 폰더의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빛나는 경력 중 〈퍼펙트 웨딩〉이 바람처럼 거둔 성공은 시위를 향한 그녀의 투지를 호도하는 결과를 낳았다. 지금도 여전히 시위의 선두에 나서려는 폰더, 즉 진짜 폰더는 우리가 알고 있는 화려한 이미지의 제인 폰더와 상충한다. 어쩌면 제인 폰더의 성공은 그녀가 자신의 정체성과 이미지의 상충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인할지도 모른다. “저는 완전한 모습 같은 건 너무 불편해서 싫어요.”
 
하지만 제인 폰더는 무엇이든 자신이 하려고만 하면 바르게 해낸다. 또 그녀는 이 체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인기 TV 드라마에 출연하면 대중과 새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으며, 명성은 그녀에게 활동 근거를 제공하지만 그녀를 낱낱이 까발려 놓기도 한다는 것을 말이다. 폰더는 통제력을 충분히 단련하지 못한 채 데뷔했던 어린 시절부터 40대까지, 폭식증과 싸우며 보낸 나날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녀는 인생에서 외모의 역할을 규정하는 목소리 때문에 항상 힘들었다고 했다. 요즘 제인 폰더는 자신의 사회운동의 파급력을 높이기 위해 소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중이다. 그녀가 소셜 미디어에 정통한 사람이 되기 위해 취한 방법은 정직함을 원칙으로 삼는 것. “나는 소셜 미디어에서 진정으로 정직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아주 긴 투쟁을 벌였어요. 그리고 이제는 초췌하게 보이는 사진들도 그냥 올리죠. 한번은 이가 빠진 모습도 올렸어요! 포르투갈의 한 레스토랑에서 갑자기 이가 빠져버렸거든요.” 제인 폰더가 자신의 진실을 밝힌 회고록 〈My Life So Far〉(2005)와 나이 듦에 관한 저서 〈Prime Time〉(2011) 그리고 HBO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제인 폰더 인 파이브 액츠〉(2018)를 통해 그녀는 자신이 다른 누구와 연결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을 찾았다. “나는 그때 진실은 보편적이라는 걸 알았어요. 충분히 착하지 않고, 아빠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야 하고, 충분히 예쁘거나 날씬하지 않으며, 충분히 똑똑하지도 않다는 사실이 모든 여성에게는 보편적인 진실이고요.” 성공적인 경력에도 불구하고 제인 폰더는 자신에게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남자들과 결혼해 왔다고 한다. 뉴웨이브 영화 스타였던 바딤, 사회 정의의 전사였던 헤이든 그리고 최고의 부유층 거물인 터너와 말이다. 관계는 매번 끝났다. “나는 ‘그와 함께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을 것이고, 나는 끝장날 거야’라고 생각했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주변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병이 그녀를 공허하게 만든 것이다. 지금 제인 폰더는 독신이다. 이것은 매우 의식적인 선택이었다. 그녀는 인생의 이번 챕터를 자신에게 바치기로 했다. 인터뷰 중에 제인 폰더는 반복해서 말했다. “난 이제 결혼과 담을 쌓았답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단체 행동이에요. 그리고 여성은 단체 행동을 잘합니다.여성의 장점이고 힘이죠.
 파이유 트렌치코트와 르마리 브로치는 Alexandre Vauthier Haute Couture. 골드와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이어링은 Joanna Laura Constantine at Archives. 골드 링은 Charlotte Chesnais at Archives. 팬츠는 개인 소장품.

파이유 트렌치코트와 르마리 브로치는 Alexandre Vauthier Haute Couture. 골드와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이어링은 Joanna Laura Constantine at Archives. 골드 링은 Charlotte Chesnais at Archives. 팬츠는 개인 소장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그레이스 앤드 프랭키〉에서 제인 폰더는 여자들 우정의 중요성을 보여주며 그녀의 진짜 삶을 비춘다.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하는 배우 릴리 톰린은 스크린 밖에서도 폰더의 절친이다. “나를 진정으로 위하는 사람들, 내가 진정으로 위하는 사람들은 바로 여자 친구들이에요. 나는 50년대를 관통하며 성장기를 보냈는데, 성장기의 정점에 엄마가 자살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래서 나는 전적으로 엄격한 개인주의자인 남자들에게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폰더는 엄마의 자살 이야기를 잠시 이어갔다. 그녀의 이야기를 지면에 모두 옮기기는 어렵지만, 이미 제인 폰더는 저서를 통해 그것이 본인에게 얼마나 깊은 상실이었는지 이야기했다. 그 일은 폰더가 12세일 때 일어났고, 그녀를 남성 롤 모델에 의지하게 만들었다. 제인 폰더는 수십 년이 지난 후에 엄마의 인생을 조사하고 그녀의 병원 기록을 살펴본 후에야 비극과 화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폰더는 성인이 된 이후에야 부모와 조부모가 그들의 인생과 이야기를 지닌 개별적 존재임을 이해하게 됐고, 한 걸음 도약해 엄마의 자살이 그녀의 잘못이 아님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 고통스러운 여정 때문에 폰더가 젊은이들에게 그토록 각광받는 것이리라. 폰더는 툰베리 같은 젊은이에게서 영감을 얻는 동시에 그들을 걱정한다. “젊다는 것은 항상 어려운 일이잖아요. 나이 든 사람은 적어도 걱정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아요. 이미 위기를 겪었고 살아남았으니까요.” 연기는 공감의 기술이다. 우리는 이제 폰더가 여러 활동을 통해 이 세대가 직면한 것들 속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녀는 말한다. “젊을 때 사람들은 생각하죠. 나는 앞으로 어떤 사람을 알게 될까? 무엇을 하게 될까? 그런데 지금은 불확실성이 너무 큰 시대예요. 내가 젊을 때보다 100배는 더 상황이 악화됐죠.” 그녀는 눈썹을 올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인다. “그러나 사실 내게는 옛날도 전혀 좋은 시절은 아니었어요. 그래도 나는 백인이기에 누릴 수 있었던 특권이 있었어요. 유색인, 동성애자, 장애인에게는 모든 것이 더 어려웠겠죠.” 폰더는 여러 차례 자신이 특권을 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발언을 해왔다. 지혜를 향한 그녀의 여정은 자신의 인생을 여러 차례 반추하게 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치유의 순간도 경험하게 했다.
 
폰더는 우리에게 앞을 보기 전에 뒤를 돌아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당신의 눈에 띄는 문제를 발견했다면 그것은 당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정신적 상처가 있어요. 우리는 살면서 그것들을 관리하는 법을 배워요. 그것들을 구석으로 추방하고 꼬리표를 달아 나오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법을 배우죠.”  폰더는 “내가 어릴 때, 사람들은 여자를 ‘서로를 쓰러뜨리려 경쟁하는 고양이’로 생각했어요. 하지만 여성이 뭉치면 못 이룰 것이 없죠”라고 말하며 눈을 반짝였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단체 행동이에요. 그리고 여성은 단체 행동을 잘합니다. 진화론적인 이유로 여성은 개인주의에 영향을 덜 받아요. 어떤 면에서는 이것이 여성의 장점이고 힘이죠. 어떤 훌륭한 일도 대중운동 없이는 일어나지 않아요. 세계가 기후 문제에 집중하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대중운동이에요.” 함께 걸으면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걸 제인 폰더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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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LEANNE DELAP
    에디터 이경진
    사진 MAX ABADIAN
    디자인 온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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