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고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또 한 명의 여성이 있다. 이번 디올 컬렉션을 준비하던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무슈 디올의 여동생인 카트린 디올에게 주목했다. 치우리의 이번 컬렉션은 그저 ‘미스 디올’ 향수의 그 ‘미스’가 지칭하는 인물로만 알려져 있던 카트린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에 맞선 저항군의 멤버로 활동했다는 것, 1944년 나치에 체포돼 고문을 당했고 라벤스부르크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는 것, 그리고 살아남아 석방된 뒤에는 호미와 쟁기를 들고 가드너이자 식물학자로 살아갔다는 것. “카트린은 진정한 페미니스트였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스트란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을 뜻하죠. 그것은 모든 여성에게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자신을 믿고 미래를 생각한다는 것 말이에요.” 치우리는 박시한 재킷과 남성용 셔츠, 보일러 수트, 실크 드레스 등이 혼재하는 룩을 통해 여성스러움과 남성스러움의 경계를 허물었다. 그리고 자연에서 온 것에 주목했다. 라피아 프린지 드레스와 라피아처럼 보이는 효과를 내는 터서 실크 소재의 점프수트, 온갖 꽃과 잎사귀를 수놓은 드레스 등이 숲으로 꾸며진 런웨이를 활보했다. 특히 아름다웠던 건 액세서리들이다. 스테판 존스가 디자인한 라피아 소재의 모자들, 황마를 손으로 길게 꼬아 만든 벨트, 내추럴 소재의 레이스업 부츠와 에스파드리유, 말린 꽃에서 모티프를 딴 골드 주얼리 등이 자연에 대한 카트린의 깊은 경외감을 표현했다.
야자의 잎에서 얻는 섬유인 라피아, 밀알을 떨고 난 밀의 줄기를 꼬아 만든 밀짚, 칼라마스라는 동양 식물의 줄기에서 채취한 거친 섬유인 라탄, 그리고 종이를 꼬아 만든 우븐 스트로까지, 이번 시즌에는 다양한 방식의 크래프트 워크가 다채로운 형태의 액세서리로 선보였다. 제인 버킨을 연상시키는 룩을 런웨이에 등장시켜 데님과 바스켓 백의 조합이 얼마나 ‘쿨’한지 새삼 깨닫게 해준 셀린, 트로피컬 프린트 드레스에 라피아 백을 매치한 발렌티노, 가죽으로 트리밍한 라피아 벌룬 백으로 라피아가 더 이상 바캉스만을 위한 소재가 아님을 설파한 로에베까지. 가방뿐 아니다. 화창한 여름날을 기다리게 만드는 에스파드리유, 면이나 마 소재의 스트링을 발목에 감는 형태의 샌들과 부츠들,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형태와 컬러로 소개한 라피아 모자까지.
이 로맨틱 아이템을 보며 어떤 이는 〈빨강머리 앤〉을 떠올릴 것이다. 어떤 이는 〈작은 아씨들〉을 혹은 〈사운드 오브 뮤직〉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한 남자의 아내가 되기보다 모험가가 되겠다던 앤 셜리, “내 인생은 스스로 만들 거야!”라고 외치던 조 마치와 자신의 사랑은 스스로 선택하겠다던 에이미 마치, 그리고 평생 작가로, 독신으로 사는 길을 선택했던 루이자 메이 알코트, 권력에 강하게 저항했던 카트린 디올까지. 창조적인 예술가가 되려고 애썼던 뜨거운 여자들이 있다. 소박하지만 격식을 갖춘 옷을 입고 계절을 만끽하며, 세상이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열망했던 여자들. “당신은 올해 라피아 소재의 액세서리를 사거나 사고 싶어질 것!”이라는 한 문장이 이토록 길어진 까닭은 그녀들, 과거의 멋진 여성들이 자꾸만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 탓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