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 무언가 느끼고 체험하고 각성했다. 3인의 피처 에디터가 코로나 시대의 한복판에서 떠올린 단상들, 그 두 번째.
SNS에서 사진 하나를 봤다. 스페인의 한 서점이 장르 서적의 위치 이동을 알리는 안내문이다. ‘디스토피아와 포스트-아포칼립스 서적을 현대사 코너로 옮깁니다’ 그날 나는 원인 모를 역병에 관한 좀비 드라마 〈킹덤〉 시즌2를 보며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자로 추가 확진된 인원과 그들의 동선 정보가 담긴 긴급 재난 문자를 수차례 받고 있었다. 2020년대의 시작과 함께 우리는 얼마나 더 디스토피아에 가까워졌을까. 모두가 마스크에 표정을 감춘 채 소통하는 극단적 풍경이 일상화됐고, 라이프스타일은 급변했다. 내 아침 루틴은 스마트폰과 함께 마스크를 챙기고 평소 쓰지 않던 안경까지 낀 채, 손 소독제를 소분하여 지퍼 백에 넣는 일이 됐다. 온라인으로 쇼핑하는 횟수도 늘었다.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는 마트의 생필품이 동나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든 모양이지만, 그나마 한국의 일상은 초고속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모바일과 온라인 쇼핑이 지탱해 준 듯하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시작하며 재택 근무가 ‘뉴 노멀’이 됐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재택 근무가 널리 시행되는 순간은 상상해 보지도 않았다. 절차와 계급 체계가 중요한 사회에선 결코 재택 근무를 표준화할 수 없을 테니까. 재택 근무야말로 나에겐 초현실이었다. 지난 10일 미국의 블룸버그 통신은 ‘유럽 전역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재택 근무 시행을 고려하고 있으나 경험이 없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초고속 인터넷 보급이 미흡한 점도 문제 중 하나로 꼽혔다. 한국의 재택 근무는 직급과 회사에 따라 의견이 분분했으나, 재택 근무를 시행한 주변인의 증언에 따르면 절차가 간소화되고 미팅, 회의를 모바일과 온라인으로 전환하면서 페이스를 크게 잃지 않고 차근차근 굴러간 듯하다. 재택 근무라는, 사회적 거리 두기의 일면을 나름 반기며 일하던 중 흥미로운 인터뷰를 접했다. 게임 ‘오리와 도깨비불’의 개발사 문스튜디오의 이야기였다. 엘리트 팀을 만들자는 것이 목표였던 두 공동 창립자는 전 세계 곳곳에서 괜찮은 연봉과 재택 근무를 조건으로 다양한 출신의 인재들을 고용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심지어 창립자 두 명도 각각 오스트리아와 이스라엘에 산다). 물리적으로 한 공간에서 일하는 환경을 포기한 그들은 지금 전 세계 43개국 국적에, 80명 이상의 직원들이 모두 집에서 일하며 게임을 제작한다. 직원 하나하나를 직접 감독하지 않고, 원격으로 서로 커뮤니케이션하며 일하기에 최적화된 툴이 개발된다면 더 많은 업계에서 문스튜디오와 같은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코로나19 바이러스 시대는 많은 회사와 근로자들에게 재택 근무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주었다. 어쩌면 지금이 모두의 고용 형태와 일의 방식을 디지털 기반으로 급격히 옮기는 분기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