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코로나19 그 이후, 미지를 향한 혐오

코로나19 그 이후, 우리는, 인류는, 서로 단절될까? 아니면 인류 공통의 질별에 함께 공감하며 위로할까.

BYELLE2020.03.28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 무언가 느끼고 체험하고 각성했다. 3인의 피처 에디터가 코로나 시대의 한복판에서 떠올린 단상들, 그 첫 번째. 
 
 
‘Don’t Fear the Unknown(미지의 것을 두려워하지 말 것)’. 수년 전 치앙마이 근방 작은 마을을 방문했을 때 사온 마그넷에 적힌 말이다. 냉장고 문에 붙여둔 빛바랜 문구를 며칠 전 오래도록 들여다봤다. 모르는 것, 미지의 것은 항상 우리를 두렵게 만든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낯선 피부색과 가보지 못한 나라,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 그 어느 때보다 세상의 모든 소식이 빠르게 공유되고 연결돼 있는 한편, 개인의 세계는 여전히 편협하고, 함부로 속단하기도 한다.  
‘코로나19’ 이후 개인적으로 가장 괴로운 것은 감염에 대한 공포가 아닌, 하루가 다르게 넘쳐나는 혐오와 배재의 표현들이었다. 공포를 기회 삼아 어떻게든 더 높은 클릭 수를 얻어보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언론사 헤드라인, 근거 없는 괴담, 정부나 의료기관을 향한 과도한 비방, 단체 채팅방에 공유되는 각종 ‘짤’과 ‘살천지’ ‘확찐자’ 같이 웃기지도 않는 농담까지. 특히나 특정 지역, 국가나 민족을 통틀어 저주에 가까운 말을 내뱉는 이들을 볼 때면 ‘그렇군요. 저도 당신과 제가 같은 한국인으로 싸잡혀 취급당할 걸 생각하니 아주 끔찍합니다’라는 말이 혀끝까지 나왔다. 혐오는 하나의 얼굴만 갖지는 않으며, 그 층위는 논리적이지도 않다. 유럽 등지의 동양인 차별에 분개하면서 지금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다른 민족을 향해 차별의 언어를 내뱉는 것이 어떻게 동시에 가능할까? 누군가는 ‘이때다’ 싶어서 고삐 풀린 듯 모든 것을 힐난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정 지역에 대한 봉쇄 요청과 멸시, 모든 종교에 대한 힐난…. 대상은 다양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쓸모 있는 태도는 나 또한 ‘차별’과 ‘혐오’를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 시혜적으로 평가하던 기준들이 언제든지 나를 평가하는 잣대로 되돌아올 수 있음을 알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 아닐까. 우리 모두는 출근길에 본 후원단체 광고 속의 아픈 아이가 마음에 걸려 후원금을 보내고도 점심을 먹을 때는 “00 은 싹 다 죽여버려야 해”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지만, 내가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내 혐오를 정당한 것으로 만들어주지는 않으므로. 무엇보다 고개를 돌리면 여전히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희망적인 뉴스들이 있다.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관계자들, 우한 교민을 환영한 격리 시설 지역 주민들, 지금 한국의 상황을 높게 평가하는 외부의 응원….
새로 찾아온 두려움이 있다면, 지금 우리를 습격한 뜻밖의 단절이, 미지의 대상을 향한 또 다른 혐오로 발전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인터넷과 항공, 이민과 유학 제도의 발달로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받아들이고 공존법을 배우는 도중에 이런 예상치 못한 전개를 맞이하게 됐기 때문이다. 도쿄에 사는 친구는 말했다. “어쩌면 우리는 지역간 이동이 이렇게까지 확대된, 일시적인 시기를 잠깐 산 것일지도 몰라.” 우리는, 인류는, 서로 단절될까? 그럼에도 인류 공통의 질병에 함께 공감하며 위로할까. 나는 후자의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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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김아름
  • 글 이마루
  • 디자인 전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