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크루즈의 신인 시절 앳된 모습을 볼 수 있는 1983년 영화 〈위험한 청춘(Risky Business)〉과 그를 톱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은 1986년 영화 〈탑 건〉. 엄청난 흥행성적을 기록했다는 점을 제외하고, 이 두 영화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가 레이밴 선글라스를 쓰고 등장한다는 것. 톰 크루즈는 레이밴의 웨이페어러 모델을 쓰고 〈위험한 청춘〉의 17세 고등학생을 연기했고, 해군 전투기 조종사 매버릭 대위 역을 맡았던 〈탑건〉에는 에비에이터 모델을 착용하고 등장했다.

〈위험한 청춘〉, 1983년


〈탑건〉은 미국의 젊은이들을 해군으로 모집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만든 영화였다(〈탑건〉을 상영하는 주요 극장에 미 해군 모집 부스를 설치했다). 영화가 상영되고 난 뒤 해군 파일럿 지원자의 수는 다섯 배로 늘었다고 한다. 그런데 영화가 흥행한 뒤 홍보 효과를 누린 건 해군뿐 아니었다. 레이밴 역시 그 덕을 톡톡히 봤다. 영화가 개봉한 해에만 36만개 이상 판매되었고, 톰 크루즈를 통한 PPL 마케팅 이후 전체 판매량의 40% 이상 증가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저수지의 개들〉, 1992년 @imdb.com

〈맨 인 블랙〉, 1997년 @imbd.com
이외에도 레이밴 선글라스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1992년 영화 〈저수지의 개들〉, 윌 스미스 주연의 1997년 영화 〈맨 인 블랙〉 등 수많은 영화에 등장했다(〈티파니에서의 아침을〉의 오드리 헵번이 착용한 선글라스가 레이밴 제품이라고 잘못 알려졌지만 사실 올리버 골드스미스 제품이다). 하지만 가장 ‘찰떡’이었던 PPL은 역시 〈탑 건〉이다. 전투기 조종사인 주인공이 레이밴의 탄생 역사와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레이밴 선글라스의 시작은 1937년, 미 육군 항공단 소속 파일럿 존맥크래디 대위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그는 비행할 때 강한 자외선 때문에 겪는 두통과 구토 증세 때문에 고민하다가 1920년, 바슈롬사에 보안경 제작을 의뢰했고, 바슈롬사는 가시광선과 자외선을 차단하는 G-15 렌즈를 개발했다. 그것이 지금의 레이밴의 보잉 선글라스의 시초다.
이후 바슈롬사는 이 렌즈가 일반인에게도 유용할 것이라고 판단했고 ‘빛을 차단한다’는 뜻의 레이밴이라는 이름의 브랜드를 런칭해 일반인에게도 판매하기 시작한다. 군인에게서 시작된 선글라스에 날개를 달아준 건 할리우드 스타들이었다.

쥴리아 로버츠. 2009년 @게티 이미지
재미있는 건 파일럿 영화의 고전 〈탑 건〉이 〈탑 건:매버릭〉이라는 제목으로 34년 만에 돌아온다는 사실. 올해 개봉 예정인 이 영화에도 바슈롬의 첫 선글라스이면서 여전히 레이벤에서 가장 유명한 모델인 에비에이터가 등장한다. 자외선과 적외선을 차단하고 선명한 시야를 확보해주는 녹색 렌즈의 보잉 선글라스. 눈동자를 어느 방향으로 굴려도 사각지대가 없는 잠자리 모양의 선글라스. 34년이나 지났는데도 방부제 미모를 자랑하는 톰 크루즈처럼 에비에이터도 그 모양이 거의 이전과 똑같다.


얼굴을 거의 다 덮을 만큼 커졌던 프레임이 눈알만큼 작아지기도 하고, 무지갯빛 찬란한 컬러가 등장했다가 미래적인 디자인도 나왔다가. 매년 새로운 디자인의 선글라스가 등장하지만 레이밴은 시대와 트렌드를 초월한다. 에비에이터, 웨이페어러, 카라반, 클럽마스터 등 독특한 스타일을 선보이며 동시대의 아이콘으로 성장했고, 수년이 지나도 그 모양을 유지하는 브랜드. 트렌드에 따라 뜨고 지는 브랜드가 아닌 전통을 유지하는 브랜드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