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배우 송혜교.
보테가 베네타의 쇼가 예정된 2월 22일 토요일이 다가올수록 밀란의 ‘패피’들 사이에는 묘한 기대감이 감돌았다. 불과 1년 만에 보테가 베네타를 가장 동시대적 브랜드 반열에 올려놓고, 지난 연말에는 영국 패션 어워즈에서 무려 4개의 트로피를 휩쓴 다니엘 리. 그의 세 번째 컬렉션은 또 어떤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환호하게 만들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밀란 중심부에서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쇼장은 이른 오후부터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온 바이어와 에디터를 비롯해 스타를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보기 위해 모인 소녀들까지. 현장은 마치 다니엘 리가 주최하는 거대한 파티장 같았다. 배우 송혜교가 등장했을 때는 뜨거운 취재 열기에 일대 소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2020 스프링 컬렉션의 블랙 아우터웨어와 골드 체인 디테일의 파우치 백으로 올 블랙 룩을 연출한 그녀의 세련된 스타일은 쇼가 시작되기 전부터 인스타그램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쇼장에 들어서자 온통 새하얗게 칠한 벽과 바닥이 눈에 띄었다. 이 도화지 같은 공간을 어떤 그림으로 채울지 궁금증이 고조될 무렵, 조명이 꺼지고 현악기 선율이 흘러나왔다. 하얀 벽에는 고대 그리스 건축양식에서 영향을 받은 팔라디언 건축물의 이미지가 프로젝션을 통해 떠올랐다. 일순간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탈리아 외곽 지역에 있는 어느 팔라초로 이동한 듯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신예 모델 토비아스 디오니시의 블랙 수트를 시작으로 네온이 감도는 라임, 핑크 등 강렬한 색채가 더해지며 쇼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즈음 다니엘 리는 이 컬렉션을 통해 단단한 것을 부드럽게 만드는 데 집중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각진 테일러드 수트에 스트레치 밴드를 덧댔고, 반짝이는 비즈 드레스는 풍성한 드레이핑을 따라 흐르듯 출렁거렸으며, 몸의 형태를 그대로 감싸 안은 니트 웨어는 그가 생각하는 부드러움의 미학에 방점을 찍은 듯 보였다. 하우스의 헤리티지인 인트레치아토 기법은 더욱 대담한 재해석을 거쳐 길고 치렁치렁한 프린지 디테일로 거듭났다. 그 사이사이로 스칼렛, 버터, 롤리팝, 키위, 초콜릿 등 다니엘 리가 새롭게 명명한 컬러 팔레트가 생동감을 더하며 눈길을 사로잡았다. 무려 59벌에 이르는 남녀 컬렉션이 런웨이를 스쳐 지나간 이후,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 열광적인 반응은 밀란 패션위크의 어느 쇼보다 뜨거웠다.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새로운 ‘패션 지니어스’의 탄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