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를 낸 자, 윤이형 작가를 기다리며 #ELLE 보이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 관련 불공정 계약 문제가 불거진 이후 절필을 선언한 윤이형 작가. 슬퍼하는 대신 노력하는 쪽을 택하는 사람, 윤이형 작가를 기다리며. 목소리를 낸 자에게 용기를!


목소리를 낸 자에게 용기를

지난가을, 스케이트보드를 타다가 팔을 다쳤다. 팔꿈치 뼈에 살짝 금이 가서 반깁스를 해야 했다. 반깁스는 절반만 석고로 고정하고, 나머지 반은 압박 붕대로 단단히 감아 고정하는 형태라 씻으려면 붕대를 풀었다가 다시 감아 고정해야 한다. 왼손으로 서툴게 붕대를 감을 때면 ‘이래서 사람이 혼자 살면 안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었다. 일상에 이런 작은 이유가 많아질 때 사람은 누군가 필요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고 말이다.

올해 초 출판된 〈붕대 감기〉라는 소설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어정쩡한 자세로 불편하게 붕대를 감던 그날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이 소설 속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피를 멎게 하고, 상처가 커지지 않기 위해 붕대를 감을 때, 그러니까 상처와 고통을 낫게 하려는 순간에는 누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하며 책장에 꽂아두었을 때만 해도 나는 몰랐다. 〈붕대 감기〉가 윤이형 작가의 ‘당분간 마지막’ 책이 되리라는 사실을. 사실 작가도 몰랐을 것이다. 문학사상사가 주관하는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과 관련해 출판사가 요구하는 계약은 우수상 수상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모른 채로, 혹은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작가들은 상을 받고 불공정한 계약을 감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올 초 김금희 작가의 문제 제기로 알려졌다. 불거진 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채로 지지부진하던 1월 말, 지난해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 작가인 윤이형은 더는 소설을 쓰지 않겠다는 글을 개인 SNS 계정에 남겼다. 자신의 작품이 훼손된 것으로 느껴지고, 불합리한 문단과 출판 시스템에서 노심초사 글 쓰는 것에 지쳤고 수치스럽다는 그의 무거운 말 앞에 ‘왜’라는 질문을 던질 수조차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늘 싸워왔기 때문이다. 문학계 성폭력이 가시화된 2017년 ‘#문학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안에서 피해자를 돕는 〈참고 문헌 없음〉이 출간되었을 때 그는 가장 적극적으로 힘을 보탠 현역 작가 중 한 명이었다. “지금껏 목소리를 내지 못한 일을 평생 부끄러워하겠습니다”라고 쓰며 ‘여성’ 작가로 계속 말하겠다고 했다. 그랬던 그가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겠다면, 그건 번복될 가벼운 선언이 아닐 테다.

믿기지 않는 상태로 며칠이 지났다. 그의 절필 선언이 알려지고, 기사화되고, 추측과 말이 보태진 뒤 그는 긴 심경문을 남겼다. 덧붙인 “문학사상사 일을 폭로하고 싸우기로 했습니다”라는 문장을 읽으며, 나는 그의 또 다른 소설 〈스카이 워커〉 속 문장을 떠올렸다. “나는 슬퍼하는 대신 노력하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윤이형 작가는 그렇게 또 그런 소설을 쓰는 사람다운 선택을 내린 것이다.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어떤 부분은 거의 바뀌지 않았고, 어떤 면에서는 더욱 견고해진 세계에 질문을 던지고 싸움을 거는 사람. 지치고 아픈 상황에 처해 있다 해도 여전히 ‘내가 고쳐나가야 하는 나의 세계’가 망가졌을 때 스스로 고쳐나가기를 선택하는 사람이었다. 첫 고발을 한 김금희 작가에 이어 다른 작가도 수상을 거부했고, 황정은·구병모·장류진·오은 등 많은 작가가 문학사상사의 업무를 거부하는 데 동참했다. 윤이형 작가가 싸우기 시작했던 그날 밤, 비로소 책장에 꽂아둔 〈붕대 감기〉의 첫 장을 넘겼다. 책 속에는 내가 예상한 그런 이야기가 훨씬 더 아름다운 방식으로 존재했다. 서로 공통점을 찾기 어렵고, 그래서 이해하기도 어려운 여성들이 희미하지만 끈질기게 연결돼 오늘을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끝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어쩔 수 없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여성들이 사실은 알지 못하는 사이 서로를 돕고 있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서로의 상처와 고통에 붕대를 감아주고 있는 용기 있는 작가들을, 그들을 응원하는 독자를, 윤이형의 소설을 읽을 수 있는 한국 문학 독자여서 늘 행복했던 나를 생각했다.

소설 속 인물들에게서 내게로 넘겨진 이 바통을 받아 나는 질문한다. 왜 작가만 고민하고, 목소리를 낸 사람들만 상처를 받는가? 왜 피해자가 대책을 강구하고 제대로 사과하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하는가?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무력함에 지쳐 떨어져 나갈 때, 그 구조 안에서 힘과 돈과 명예를 얻는 이들은 누구인가? 이런 질문들을 계속 소리내 말하면서, 나는 다시 올 윤이형의 소설을 기다리려 한다. 그리고 언젠가 붕대를 감아두니 팔의 상처는 결국 낫더라는 소식을 작가에게 들려주고 싶다. 괜찮아지지 않는 일도 있다는 사실을 역시 그의 소설 〈굿바이〉를 통해 알게 됐으나 이번에는 슬퍼하는 대신 노력하는 쪽을, 노력하며 기다리는 쪽을 택하겠다고.

Writer 윤이나
칼럼과 에세이, 드라마와 스탠드업 코미디까지 거의 모든 장르의 글을 쓰고 여러 권의 책을 냈다. 콘텐츠 팀 ‘헤이메이트’를 통해 여성의 고민을 여성들과 함께 나누는 중이다. 그 연장선에서 최근 〈우리가 서로에게 미래가 될 테니까〉를 펴냈다.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 관련 불공정 계약 문제가 불거진 이후 절필을 선언한 윤이형 작가. 슬퍼하는 대신 노력하는 쪽을 택하는 사람, 윤이형 작가를 기다리며. 목소리를 낸 자에게 용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