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3일간 40여 시간을 일했다. 작가로서 글을 쓰는 시간 외에 에너지를 얻기 위한 고강도 인터벌 운동과 규칙적인 수면에도 충분히 시간을 할애했고, 건강한 식습관도 유지했다. 하지만 뭐가 문제였을까? 4일째 되던 날, 모니터 위 글자들이 흐릿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자음과 모음이 모니터라는 거대한 수영장에서 둥둥 떠다니듯 흩어지다 의식 저편으로 사라지는 기분. 울렁거리고, 약간의 오한까지 느껴져 잠시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그대로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정신이 몽롱해졌다.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는데 이대로 몸이 작동을 멈추고, 며칠 앓아누울 것 같았다.
2020년, 우린 디지털 정보에 압도된 채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 번아웃. 조깅을 하거나 샤워할 때도, 심지어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실 때조차 인스타그램을 뒤적거리거나 이어폰을 꽂은 채 팟캐스트를 듣는다. 그러는 사이 심신은 과도한 불협화음을 견디지 못한 채 어느 순간 바람 앞의 촛불처럼 휙 꺼져버리고 마는 것. 워싱턴 주립대학의 수면연구팀은 학술 저널 〈슬립 Sleep〉을 통해 영양과 운동, 수면 등 웰빙의 세 가지 요소에 하나를 더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바로 ‘깨어 있는 휴식(Waking Rest)’.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건 멍 때리는 게 아닐까. 연구팀의 아만다 램프(Amanda Lamp) 박사는 ‟깨어 있는 휴식은 두뇌가 쉴 수 있는 조용한 시간, 명상하는 순간을 일컫는다”고 말한다. “쉴 틈이 있어야 다음 단계에서 일어날 일에 대비할 수 있어요. 임기응변과 즉흥성을 발휘하는 능력도 의식적으로 휴식을 취할 때만 가능하죠. 고민거리, 마감, 각종 투-두(To-do) 리스트에서 벗어나 머릿속을 비워야 해요. 뭔가 정리하거나, 거리를 두거나, 잠시 모든 걸 접어두는 게 될 수도 있고요.” 숙면과 힐링, 마음 근육, 미니멀리즘, 슬로 리빙 등 온갖 ‘웰니스(Wellness)’ 방법에 사로잡혀 있지만 정작 여기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빠져 있다. 모두 휴식을 맨 마지막으로 미룬 채 매일매일 해야 할 것들로 삶을 채우느라 분주할 뿐. 깨어 있으면서 아무것도 안 한다는 사실에 왠지 죄책감까지 느낄 정도 아닌가. 아만다 박사는 ‘깨어 있는 휴식’을 위해 꼭 ‘명상’과 ‘요가’ 같은 거창한 일을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아무 생각 없이 빨래 개기, 청소하기 혹은 반복적인 암기 등 정신적인 것과 연관되지 않는 행위면 무엇이든 좋다. 이런 맥락에서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것이 꼭 휴식이 아닐 수도 있음을 기억할 것. “백색소음처럼 흘려보내는 음악이 아니라, 음악을 좋아해서 듣는 경우라면 도리어 노래에 관한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우게 돼요. 그건 깨어 있는 휴식이 아닌 거죠.”
〈일만 하지 않습니다: 완벽하게 쉬고 집중적으로 일하는 법〉의 저자 알렉스 수정 김 방(Alex Soojung - Kim Pang) 역시 ‘의도적 휴식’을 강조한다. “4~5시간 집중적으로 일한 뒤에는 이에 상응할 만한 휴식과 다운 타임의 시기를 가져야 합니다. 진짜 중요한 건 시간보다 집중도예요.” 물론 정원을 가꾸거나 조깅을 하거나 개를 산책시킬 때도, 우리의 무의식은 여전히 뭔가를 판단하고 처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라도 가져야 발상 전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녀가 강조하는 바. 샤워를 하다가 문득 놀라운 아이디어가 스쳐 지나간 적 있다면 그녀의 말이 십분 이해될 것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을 말한 작가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은 매일, 적어도 1시간씩 ‘절대적 침묵(Absolute Silence)’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한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가볍게 걷거나 달릴 때도 스마트폰 없이, 이어폰 없이 1시간 정도 생각을 정리한다”고 말했다. 영화제작자 티파니 슈라인(Tiffany Shlain)도 〈24/6: 일주일에 하루, 플러그를 뽑는 것의 힘〉이라는 책을 통해 ‘멈춤의 기술’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매주 토요일 스크린 없는 하루를 보내는 거예요. 마치 유대교의 안식일처럼 말이에요.” 하지만 1주일에 하루조차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떨어질 수 없다면? “적어도 하루에 2시간, 오프라인 상태에 돌입하는 습관을 들이세요. 스마트폰이 손에 있는 한 끊임없이 타협할 수밖에 없어요.”
2020년식 휴식은 페미니즘과도 그 맥이 닿아 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과를 모두 해치운 뒤 멘탈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된 상태로 집에 돌아와서도 감정적인 노동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 실제 2019년 퓨(Pew) 리서치 센터의 조사 결과 10대 소년들이 10대 소녀들보다 1시간가량 레저 시간을 ‘더’ 갖는 것으로 나타났고, 나이가 들수록 이런 불균형이 더 심화된다고 보고했다. 오데사 모시페그(Ottessa Moshfegh)는 2018년 발표한 〈내 휴식과 이완의 해〉라는 소설에서 약을 처방받아 1년간 겨울잠에 돌입하는 여성을 그렸다. 비록 픽션이지만,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불합리를 거부하고 긴 외로움과 침묵을 택한 주인공이 마치 우리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많은 밀레니얼이 ‘할 일이 많은 여성의 삶을 잘 관리’하는 데서 벗어나 ‘할 일을 아예 제거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스스로 혹독하게 다그쳐 커리어와 육아, 두 가지 모두 훌륭히 병행하고, 늘 초과 달성함으로써 여성 보스가 되는 걸 고무적으로 받아들이라는 건 이미 한물간 마인드. 이 같은 주변의 말이 체벌처럼 느껴졌다면 이미 당신도 2020년식 휴식의 의미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방증이다. 제니 오델(Jenny Odell)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주목 경제에 대한 저항〉에서 발췌한 다음 글을 본다면 더욱 공감이 갈 것. ‘스스로 도구로 쓰이는 걸 거절하고 그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지금껏 지배적이던 자본주의의 생산성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난다는 걸 의미한다. 이는 깨어 있는 휴식, 의도적 휴식을 통해 나를 충전할 때 완성될 수 있다.’ 이쯤 되면 늦기 전에 새해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하지 않을까. 자신에게 맞는 휴식 찾기. 뭔가를 마치기도 전에 무턱대고 중단해 버리거나 계속 딴짓을 하라는 게 결코 아니다. 단지 우리 몸이 언제 휴식을 필요로 하는지 귀 기울이고, 그걸 받아들이며, 마음먹은 대로 쉬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