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의 작품이 전시된 로에베 마이애미 디자인 디스트릭트 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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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et Beauty, 루시 리(Lucie Rie, 1902~1995)
도자기에 소리가 있다면 리의 작품에서는 히사이시 조(Hisaishi Joe)의 고요하면서 완벽한 연주가 흐를 것 같다. 우아함과 단순함, 그 속에 정밀함까지 갖춘 작품들은 리를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도예가 중 한 명으로 만들었다. 처음부터 유명했던 건 아니었다. 주로 돌과 광물 같은 물질을 사용해 항아리와 사발을 빚던 오스트리아 태생의 리는, 1938년 나치의 박해를 피해 런던으로 거처를 옮겼다. 당시 영국 도자기들은 모더니즘 스타일의 접근이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은 색채와 강렬한 형태, 표면과 질감에 있어 자신만의 고집을 이어갔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리의 독특한 그릇과 나팔꽃 형태의 화병은 현대 디자인의 아이콘이 됐다. 시간이 흘러 현재까지도 많은 아티스트들이 리를 추종하며 영감을 받고 있다. 사진가 구본창은 우연히 그녀의 사진 속에 담긴 조선시대 달 항아리를 발견하고 흐릿하지만 강인한 백자를 주제로 한 〈백자〉 시리즈를 시작했고, 이세이 미야케는 리를 만나기 위해 런던을 순회하다 결국 자신의 컬렉션 의상 속 단추 제작을 리에게 맡기는 쾌거를 이뤘다. 로에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J. W. 앤더슨은 대표적인 리의 수집가 중 한 사람. 이런 팬심은 로에베 마이애미 디자인 디스트릭트 스토어 전시로 실현되기도 했다. 리는 눈을 감을 때까지 도자기라는 세계에 자신을 빚었다. 자신이 사랑하고 가장 잘하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은 것이다.
(왼쪽) 서정적인 컬러 그러데이션이 아름다운 퓨어 컬러 블러쉬 06, 6만8천원, Suqqu. (오른쪽) 빈틈 없는 루시 리처럼 이에 못지않은 완벽주의자 세르주 루텐의 예민하고 날렵한 감각이 담긴 레 뽈리떼쓰 컬렉션 로 다르므와즈, 100ml 19만3천원, Serge Lute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