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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욱의 봄날

배우가 돼볼까?' 불쑥 솟은 호기심을 붙잡아 기어코 자신의 계절을 만든 이재욱. 그와 함께한 어느 태연한 봄의 한낮.

BYELLE2020.03.02
 
푸른색 니트는 Acne Studios.

푸른색 니트는 Acne Studios.

 
이따금 우리에게 유용한 것들이 있다. 무해한 유머와 두둑한 배짱, 영감을 주는 여성들의 이야기. 그리고 어느 로맨스물의 매력적인 ‘서브남’. 최근 이 서브남 계보에 이름을 올리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슈퍼 루키가 있다.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이하 〈검블유〉)에서 ‘설지환’, 〈어쩌다 발견한 하루〉(이하 〈어하루〉)에서 ‘백경’을 연기한 이재욱이다. 이재욱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하 〈알함브라〉)에서 프로그래머이자 해커인 ‘마르꼬 한’으로 데뷔했다. 검고 짙게 그린 아이라인에 시니컬한 표정을 하고 어두운 골목을 누비던 캐릭터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 이재욱은 이후 두 편의 TV드라마와 한 편의 영화에 연이어 출연하며 자신만의 궤적을 그려나갔다. 지금은 곧 방영될 JTBC 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를 촬영 중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이재욱이 다섯 편의 작품에 이름을 올리며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걸린 시간이 고작 1년 정도라는 사실이다. 스튜디오에 딸린 정원을 성큼성큼 가로지르며 등장한 이재욱은 187cm쯤 된다는 큰 키를 슬쩍 구부려 눈을 맞추며 인사했다. “와! 안녕하세요!” 입 동굴을 만들며 시원하게 웃는 얼굴을 마주하자 문득 그가 〈어하루〉에서 탐나는 캐릭터로 ‘도화(정건주)’를 꼽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성격이 잔망스럽고 유쾌한 인물이라서요. 실제 저와 싱크로율이 높거든요.” 드라마 촬영장이 아닌 곳에서 만난 이재욱은 슈프림 데님 블루종과 나이키 스니커즈를 신은, 스물셋의 딱 요즘 남자다. 자신을 천진하게 드러내 자꾸 궁금하게 만드는 남자.
 
〈어하루〉에 출연하는 동안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가 큰 폭으로 치솟았어요 거의 120만 명쯤 늘었어요. 백경이라는 캐릭터로 과분할 정도의 사랑받았어요.  
사람들이 자신의 어떤 면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나요 정확하게는 모르겠어요. 미간인가요? 입술인가요?  
정확히 알고 있는데요? 팬들이 미간과 입술 이야길 많이 하죠. 〈어하루〉에서 백경을 연기할 때 미간을 잘 쓰더라고요 〈어하루〉 때 어떤 팬분은 저에게 ‘미간에 끼고 싶다’는 표현도 했어요(웃음).  
요즘 팬들의 ‘드립력’이란 보통이 아니죠 정말 그래요. 상상을 초월한 재미있는 말로 피드백을 받을 때가 많아요. 가끔 궁금해요. 왜 나를 좋아하는 걸까. 연기 잘하고 매력 있는 배우들이 그렇게 많은데. 우연이겠죠. 어느 시점에, 우연히 내가 누군가의 눈에 보였던 거라고 생각해요. 가끔 내 삶이 믿기지 않아요. 이런 화보 촬영도 신기하고요. 분장을 받으며 거울 앞에 앉아 있으면 꿈꾸는 것 같아요. 내가 어떻게 이런 걸 하고 있지?  
오늘 촬영한 컷을 전혀 보지 않더라고요 느낌만 알고 사진가의 이야기에 따라 움직이는 걸 좋아해요. 찍을 때마다 컷을 확인하면 너무 신경 쓰게 돼서요.
드라마 촬영장에서 모니터링도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알아요 아예 안 해요. 감독님의 ‘오케이’를 믿고 가요. 가끔 모니터링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죠. 무조건 멋지게 보여야 하는 ‘미션’이 주어진 신이라든가, 아주 자세한 연기를 해야 할 때.  
감독의 신호와 별개로 직접 눈으로 봐야 확신이 생기는 순간도 있을 텐데요 저는 감독님이 ‘오케이’ 하는 소리만 들으면 돼요. 감독님이 그냥 ‘오케이’ 하면 정말 괜찮았는지 물어보긴 해요. 조금 아쉬워하시면 한 번 더 해보겠다고 하죠. ‘오케이’가 아주 경쾌하게 날 때도 있어요. ‘컷! 오케이!’ 그럼 모니터를 볼 생각을 아예 안 해요.  
이건 맞고, 저건 틀리다는 걸 단순하고 확실한 방법으로 판단하는군요 애매한 걸 싫어해요. 확실한 걸 좋아하고요. 의사소통에서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예요.  
 
흰색 반팔 셔츠는 Juun. J. 머스터드 컬러의 니트 베스트 톱과 네이비 스트라이프 팬츠는 모두 Rochas by Mue. 갈색 통은 C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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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트 헨리넥 셔츠는 Rochas by Boonthe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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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스트라이프 반팔 셔츠와 팬츠는 모두 Salvatore Ferragamo. 아이보리 니트 베스트 톱은 Our Legacy by Be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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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를 시작할 땐 어땠어요? 배우가 내 길이라는 분명한 ‘촉’이 왔나요 문득 ‘연기를 해보면 어떨까?’ 궁금해져서 연기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하다 보니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강하게 사로잡혔고요. 그땐 그냥 연기를 해야 내가 당장 행복할 것 같았어요. 화려한 미래를 꿈꾼 것은 아니고요.  
연기할 때 살아 있는 기분이 들었나 봐요 오히려 연기할 때 내가 가장 초라했어요. 대체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채워도 채워도 부족한 기분이었어요. 그러니까 계속 하고 싶었던 거예요. 체호프나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접하면 너무 어렵고, 궁금해서 죽겠더라고요. 대체 체호프는 어떤 사람이었던 거지? 셰익스피어는? 호기심이 생기면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어 알아냈어요. 숙제도 착실히 해갔고요. 그런 자신이 신기했어요.  
어머니와 누나는 당신이 배우가 된 걸 아직도 신기해 한다죠 TV에 내 모습이 나오면 어머니는 옆에 앉아 있는 내 얼굴과 TV 속의 나를 번갈아 가면서 봐요. “내 옆에도 있고, 앞에도 있네?” 하시면서요. 어머니는 칭찬에 인색한 편이에요. 그래도 이 직업을 굉장히 응원해 주셨죠.  
어릴 때 이미 배우 될 기질이 있었다는 말씀은 없던가요 어머니는 내가 장사할 줄 아셨대요. 어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정말 많이 했거든요. 용돈벌이로, 중학생 때부터요. 패스트푸드점, 웨딩 홀 서빙, 고깃집, 편의점, PC방, 세차장…. 일하다 보면 사장님들이 하던 가게를 접고 업종 변경을 해요. 그럼 또 그 가게로 가서 새로운 일을 했죠. 차 유리창을 ‘선팅’하는 일도 해봤어요. 액세서리 가게에서 일하다가 옆집 옷 가게에서 일하기도 하고.  
그렇게 번 용돈으로 뭘 했나요 옷을 엄청 좋아했거든요. 신발도요. 번 돈으로 옷 사고, 신발 사는 데 썼어요. 당시에 나이키 조던 시리즈가 붐이었어요. 조던을 사 모으기도 하고, 슈프림 박스 로고를 색깔별로 모으고 싶어 애쓰기도 했죠. 그럴 정도의 돈은 없어서 실패했지만요.  
대학 입시 때는 또래 가운데 꽤 실력 있는 입시생이었어요. 1차 시험에서 5개 대학에 합격했다고요 학원에서 연기를 배우다가 문득 이걸 전공으로 삼고 싶은 거예요. 재수 끝에 성공했어요. 재수생이었던 1년 동안 정말 열심히 했어요. 학원에 매일 오전 10시까지 가서 맨 마지막으로 문 닫으며 나왔죠. 1차 시험에서 5개 대학에 합격했고 최종으로는 2개 대학에 붙었어요.  
그 후에는 굉장히 순탄했어요. 대학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TV 드라마에 캐스팅됐죠 1학년 1학기 말에 〈알함브라〉의 ‘마르꼬 한’ 역으로 캐스팅됐어요. 운이 좋았어요.  
‘마르꼬 한’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것은 아주 괜찮은 한 수였다고 봐요. 연출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캐릭터였지요 정말 그랬나 봐요. 이후 드라마 〈검블유〉 오디션을 보러 갔을 때 정지현 감독님이 저를 보자마자 외치셨거든요. “와! 마르꼬다! 마르꼬다!” “빨리 연기해 주세요!” 감사하게도 그 오디션을 통해 마르꼬와 180도 다른 ‘설지환’ 역을 받았죠. 선물 같은 시작이었어요. 마르꼬를 연기하게 됐을 때 꽤 설레었어요. 분장을 드라마틱하게 하는 인물이었잖아요. 극중에서 총도 맞고요. 굉장히 영화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인물로 드라마에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됐어요.  
 
파란색 수트와 그래픽적 셔츠는 모두 Wooyoungmi.

파란색 수트와 그래픽적 셔츠는 모두 Wooyoungmi.

베이지 니트는 Sulvam by Boontheshop. 베이지 벨트 팬츠는 Navy by Beyond Closet. 갈색 샌들은 Church’s.

베이지 니트는 Sulvam by Boontheshop. 베이지 벨트 팬츠는 Navy by Beyond Closet. 갈색 샌들은 Church’s.

 
배우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뭘까요 공감 능력요. 제가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에요. 배우는 대본에 있는 캐릭터를 보는 사람에게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해요. 원래 누굴 설득한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잖아요. 잘하려면 캐릭터와의 공감이 첫 번째인 거죠. 주어진 캐릭터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가에 따라서 표현의 깊이가 달라져요.  
그런 측면에서 악전고투한 캐릭터가 있나요 〈어하루〉의 백경요. 백경은 잔혹한 환경에 놓인 아이잖아요. 그의 못되고 나쁜 구석을 안쓰러운 심정으로, 입체적으로 전하고 싶었어요. 백경에 관해 처음 읽은 문장이 ‘말을 이런 식으로밖에 못하는 아이’였거든요. 정말 잘 보여주고 싶었던 캐릭터인데…. 많은 걸 놓친 것 같아요. 아쉬움이 많아요. 아직 제 경험치가 부족해서인지 한계가 있더라고요.  
〈어하루〉와 〈검블유〉 촬영 기간이 겹쳤던 것으로 알아요. 〈알함브라〉와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의 촬영도 겹쳤죠. 짧은 시간 동안 4개의 배역을 오가는 일도 쉽지는 않았겠어요 맞아요. 가끔 집중이 잘되지 않거나 판단이 흐려질 때가 있더라고요. 아직 아마추어구나, 멀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주 재미있었어요.  
지금은 방영을 앞둔 JTBC 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를 촬영 중이죠. 이장우 역을 맡았는데, 그는 어떤 남자인가요 좀 웃긴 남자예요. 장우가 등장하면 그 신이 살아 움직이면서 극에 활기가 생겨요. 그래서 연기할 때 기분이 굉장히 좋아요. 언젠가는 장우가 내뱉은 말 때문에 촬영 중에 웃음보가 터진 상대 배우가 거의 30분 동안 내 눈만 봐도 웃었어요. 웃다가 배가 아파서 울기까지 하더라고요. 장우 역을 하면서 처음으로 생활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실제론 어때요? 누굴 웃기는 데 소질이 있나요 엄청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재미없는 편은 아니에요. 장난기도 꽤 많아요.  
가장 즉흥적일 때는 언제인가요 식사 메뉴 고를 때요. 밥 먹을 시간이 되면 먹고 싶은 게 곧장 떠올라요. 떠오른 그것을 꼭 먹는 편이죠.  
그렇다면 이 인터뷰 후에 먹고 싶은 음식은 역시 인생은 ‘고기서 고기’이니까요. 고기를 먹을 생각입니다. 하하. 화보 잘 찍고 싶어서 어제 저녁부터 굶었거든요.  
봄 같은 날씨라, 낮술 한잔 곁들여도 좋겠어요 그러고 싶어요. 술 좋아해요. 최근 와인에 눈떴어요. 와인 선물을 종종 받아서요. 잘 두었다가 가끔 집에서 혼자 창밖을 바라보며 홀짝홀짝 마시는데 정말 기분 좋아요. 술을 분위기로 마시는 타입이라.  
이번 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제주도의 돈가스 가게 ‘연돈’에서 돈가스를 먹고 싶어요. 오래 줄을 서야겠지만 꼭 먹을 거예요. ‘인증샷’ 올릴게요.  
인기를 얻는다는 건 때로 양날의 검이기도 하죠. 쏟아지는 관심을 어떻게 다루고 싶은가요 내가 더 잘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잘해서 더 나은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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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사진 주용균
  • 에디터 이경진
  • 스타일리스트 남주희
  • 헤어 이선영
  • 메이크업 최수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