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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 속 젠더 #ELLE 보이스

한자의 어원을 짚어 나가는 일은 무척 흥미롭다. 공부에 접어든 21일 차, 처음으로 계집 녀(女)자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크고 선명하고 유일한 남자 곁에서 지어미와 며느리, 아내는 노예 취급을 당하고 있었다.

BYELLE2020.02.27
 
지난여름부터 천자문 공부를 하고 있다. 4자씩 의미를 이루는 한자 어구를 하루에 2세트, 그러니까 8글자씩 써보며 익힌다. 우리의 언어 환경이 한자문화권이기도 하고, 혹시 나중에 중국어를 배우고 싶을 때도 연결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서가에 오래 꽂혀 있던 천자문 책을 찾아 펴자 동거인, 김하나 작가도 테이블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혼자라면 금세 포기했을 텐데, 함께 하는 사람이 있으니 어느새 규칙이 우리를 끌어갔다. ‘아점’을 마치고 커피 물을 끓일 때면 누구 하나가 자연스럽게 이면지와 만년필을 꺼내고 있는 것이다. 중간에 해외 출장을 다녀오면서 휴지기를 갖거나 업무가 너무 많아 건너뛴 적도 있지만 아프거나 바빠도 그만두지 않고 이어온 건 책임감 반, 자존심 반이다. 팀플에서 적어도 나 때문에 망하게 하진 않겠다는 마음이라고 할까. 하루에 30~40분씩, 그렇게 어느새 100일을 훌쩍 넘겼다.
 
천자문 공부가 재밌을 수 있었던 것은 절실하지 않아서다. 능력 검정시험을 보려는 것도 아니고 업무에 필요해서 익히는 것도 아니다. 천하에 쓸데없는 공부는 부담도 스트레스도 주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무용한 교양을 배우고 익히는 일이 꽤 즐겁다. 술을 마시지 않고도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기분과 비슷하다. 사물 모양을 본뜨거나 다른 글자 여럿을 결합한 한자의 어원을 짚어 나가는 부분은 특히 흥미롭다. 예를 들어 ‘예술’에 쓰이는 재주 예(藝) 자는 나무를 심는 사람의 모습에서 발전됐다고 한다. 정원을 가꾸는 행위가 예술적 재주의 원형과 닿아 있다니 멋지지 않은가. 이런 식으로 한 글자씩 써나가다 보면 뇌세포들이 기지개를 켜는 느낌이 든다. 규칙적인 운동이 몸에 에너지를 주듯, 규칙적인 공부는 뇌에 활력과 탄력을 공급하는 것 아닐까. 교훈을 얻게 되는 어구도 제법 있다. ‘망담피단미시기장(罔談彼短靡恃己長; 남의 모자란 점을 말하지 말고 나의 좋은 점을 믿지 말라)’은 내가 좋아하는 한자 성어다. ‘축 화혼(祝 華婚)’ 같은 간단한 한자어를 외워 써서 부조금을 건넬 수 있게 된 것도 작은 뿌듯함을 준다.
 
천자문에는 흐름이 있다. 하늘·땅·별·우주 같이 거대한 세계를 바라보며 기술하던 시선은 계절의 절기, 기상 현상과 작물들로 이동했다가 문자를 지어내고 옷을 만들어 입는다는 문명을 향해 나아간다. 현대사회의 복잡함이 생겨나기 전의 농경시대, 단순한 삶의 조건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하며 그 관점의 이동이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그랬다. 공부에 접어든 21일 차, 처음으로 계집 녀(女) 자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천자문에서 여성이 처음으로 등장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모정렬남효재량(女慕貞烈男效才良)’. 여자는 곧은 절개를 사모해야 하며, 남자는 어질고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본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남자들에게는 높은 이상을 부여하면서 여자에게는 고작 남편에 대한 정조를 지키라는 목표를 주고 있다. 이후에 나오는 부창부수(夫唱婦隨)는 남편이 이끌고 아내가 따른다는 뜻으로, 일단 부부 가운데 남자에게 리더 역할을 준 것으로도 모자라 지아비 부는 생긴 모양을 봐도 큰 대(大) 위에 한 일(一) 자를 합해서 만들어진 게 선명하다. 심지어 하늘 천(天)과도 닮았다. 반면 지어미, 며느리, 아내의 뜻으로 쓰이는 부(婦)는 여자가 손에 빗자루를 들고 청소하는 모습을 표현했다고 한다. 이 대목을 공부하면서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크고 선명하고, 유일한 남자 곁에서 지어미와 며느리, 아내는 노예 취급을 당하고 있었다. 이때 그만두지 못하는 바람에 그 뒤에도 첩과 본처가 함께 길쌈을 하며 수건을 들고 시중을 든다느니, 정실에게서 태어난 아들이 대를 잇고 제사를 지낸다는 헛소리들을 한참 더 익혀야 했다. 글자만 옛날 것이 아니라 거기에 담긴 사상도 놀랍도록 낡았다는 걸 발견했다.
 
125일을 꼬박 채워 천자문을 마치면 〈명심보감〉, 〈논어〉를 읽어보거나 라틴어 공부를 해볼까 했지만 지금은 마음이 바뀌었다. 그 속에 과연 여자가 있을까? 있다면 빗자루를 들고 청소하고 있을까? 수건을 들고 시중을 들고 있을까? 정조를 지키는 게 최고의 가치라고 배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역시 천자문을 떼고 난 뒤 책거리로는 책을 불태우는 퍼포먼스가 마땅할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얼마나 많은 고전이, 그 고전이 쓰여진 언어 자체가, 학습서가, 법률이나 헌법이 권력을 가진 남성에 의해 만들어졌을지 생각하면 아득하다. 그 언어를 통해 문헌을 보며 사고하고 교육받은 사람들은 여성을 차별하면서 그 근거를 이렇게 댈지도 모른다. “그거 원래 그래. 천자문에도 그렇게 나와 있잖아.” 나는 이제 싸울 수 있을 것 같다. “응, 천자문 그거 쓴 늙은 중국 남자가 진짜 빻았거든.” 사람은, 특히 여자는 역시 배워야 한다.
 
writer 황선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저자이자 운동 애호가. 오랜 시간 잡지 에디터로 일한 그는 여성의 일과 몸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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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황선우
  • 에디터 이마루
  • 사진 unsplash
  • 디자인 오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