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엘르〉가 초대한 7명의 여성. 자기다운 방식으로 세상을 탐구하고, 멋진 창조물을 만들며, '나'를 완성해 가는, 멈추지 않는 여자들의 꿈과 도전에 관한 이야기. 첫 번째, 그레타 거윅의 열정.


블루 컬러 재킷과 팬츠는 모두 Balenciaga. 팔찌는 Cartier.
미안해요.” 셔츠 아래로 젖이 가득 찬 가슴을 부여잡는 그레타 거윅의 목소리는 그러나 사과보다는 경탄에 가까웠다. “할 때 확실히 해야 하거든요. 이 일을 우아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좀 민망하긴 해도 부끄럽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아요.” 그렇다. 촬영을 위해 만난 런던의 스튜디오 화장실 안에서 거윅은 모유를 비축하고 있다. 이 모든 건 태어난 지 갓 6개월 된, 뉴욕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아들을 위해서다. 가만, 런던과 뉴욕이라고? 놀랍게도 거윅이 런던에서 머무는 시간은 불과 48시간뿐. 〈엘르〉와 촬영을 마친 후에는 파트너 노아 바움백 감독의 영화 〈결혼 이야기〉 런던 프리미어에 참석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려갈 예정이다. 프리미어가 끝나고, 어렵게 짜낸 모유를 담은 보관통이 히드로 공항의 보안검색대를 통과한 후 얼음 냉장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계획을 털어놓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오늘 촬영 내내 보여준 열렬한 낙천성이 서려 있었으나 글쎄, 듣기만 해도 진이 빠지는 계획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레타 거윅에게는 지쳐 쓰러질 시간조차 없다.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각본을 쓰고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야 할 뿐 아니라 최근작 〈작은 아씨들〉을 둘러싼 반응을 가늠했을 때 앞으로 몇 달간은 전 세계의 수많은 시상식에 참가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그녀의 최우선 순위는 눈앞에 서 있는 내게 최대한 넉넉한 시간을 내주는 일이다. 처음 만난 내 손을 잡고 화장실로 끌고 들어가 젖병을 씻는 순간에도 소중한 시간을 1초라도 더 내주려고 애썼다. 이런 상황에 나는 결국 웃음이 터져서 오스카 후보가 돼도 정말 이런 일을 직접 해야 하는 거냐고 물었다. 2018년 〈레이디 버드〉로 역사상 다섯 번째로 오스카 감독상 후보에 오른 여성이 된 그녀는 올해 각본상 후보에 올랐다. “그럼요. 그건 절대 달라지지 않아요. 하지만 혹시 상을 타면 모르죠. 누가 문을 활짝 열고 들어와 서프라이즈! 이제 하기 싫은 일은 하나도 안 해도 된다고 해줄지도.” 루이자 메이 알코트의 소설을 옮긴 영화 〈작은 아씨들〉에서 거윅은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영화는 엠마 와슨, 시얼샤 로넌, 티모시 샬라메, 메릴 스트립을 아우르는 출연진 그리고 편협한 사회적 요구를 벗어나려는 젊은 여성들을 그리는 강렬한 줄거리로 우리가 들어본 모든 영화상에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나 역시 영화를 보며 뜻밖에도 네 번이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각본을 쓰면서도, 영화를 찍으면서도 울었죠.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감정적이지 않지만 그래도 이 이야기가 당신을 울렸다니 기뻐요.”
1년 전 〈레이디 버드〉의 성공을 축하하는 시상식의 애프터 파티에 그녀는 다섯 명의 ‘절친’과 동행했다. 변호사, 사회복지사, 간호사 등 서로 직업은 다르지만 똘똘 뭉친 버너드 여대 동창들의 왓츠앱 단체 채팅방 이름은 ‘여섯 가위와 강 하나(Six Scissors and a River)’로 알려져 있다. “아, 미치겠다.” 이름을 들은 거윅은 부끄러운지 숨을 ‘훅’ 들이마신다. “친구 결혼식에서 다 같이 춤췄는데, 친구 한 명이 저희 그룹 이름을 그렇게 소개해 버린 거예요. 그 뒤에는 그냥 그게 이름이 돼버렸어요.”
성장기 소녀와 어머니의 파란만장한 관계를 그린 〈레이디 버드〉는 거윅 자신의 이야기처럼 보였다.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거윅도 1990년대에 캘리포니아 주 새크라멘토의 가톨릭 여학교를 다녔고, 값비싼 등록금을 마련하기 전까지는 어머니와 다투며 사춘기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36세가 된 거윅은 오히려 150년 전을 배경으로 한 〈작은 아씨들〉이 더 자신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이토록 개인적으로 느껴지는 영화는 다시는 찍을 수 없을 거예요.” 〈프란시스 하〉를 본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훌륭한 배우이기도 한 그녀의 작품 속 감정을 이해하려면 TV가 없는 성장기를 보낸 그의 배경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아마도 이런 환경은 〈작은 아씨들〉의 주인공 조 마치를 비롯한 책 속의 등장인물에 집착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최근 어떤 책에 실린 ADHD 테스트를 해봤는데, 어릴 때 라디오 채널을 계속 돌리는 사람이었냐는 질문이 있더라고요. 부모님 자동차에 타면 방송국 주파수를 다 꿰고 있던 저는 보지도 않고 다이얼을 돌려 채널을 맞추곤 했거든요. 부모님이 제발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요. 그 순간에도 ‘다른 방송국에서 더 좋은 노래가 나올지도 모르는데’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죠. 반면 요즘은 어떤 노래가 좋다 싶으면 더 이상 감흥이 없을 때까지 그 노래만 반복해서 듣고 또 들어요.” 〈해리 포터〉 시리즈 일곱 권을 일주일 만에 독파한 적도 있다. “저와 일해 본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세요. 어느 단계에 들어가면 저는 씻지도 않고 전화도 안 받고 성질도 사나워져요. 산만할 때도 있지만 엄청나게 집중할 때도 있거든요.” 그녀는 자신이 기자가 돼도 아주 잘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리고 마감이 수없이 밀어닥치는 일을 나는 좋아해요.”
이토록 극도로 집중한 덕분에 그녀는 이전에는 알아채지 못했던 루이자 메이 알코트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알코트가 이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 있어요. ‘나는 반쯤은 내가 여자의 몸을 갖고 태어난 남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대여섯 명의 어여쁜 소녀들과 사랑에 빠졌지만 남자에 대해서는 한 번도 그런 느낌을 받지 못한 게 아닐까.’ 요즘은 그런 사람들을 부르는 단어가 있잖아요!” 거윅은 둘째인 조도 그 연장선에 있는 캐릭터였을 거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캐릭터에 그런 면(레즈비언스러운 면)을 명백하게 부여하는 건 너무 단조롭게 느껴졌어요. 조는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것 그리고 그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위해 싸운 사람이었던 거죠.” 〈작은 아씨들〉은 풍요롭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네 자매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조는 출판사에 자기 원고를 팔기 위해 노력하고, 에이미는 재능과 씨름하며, 메기는 모성과 양육에 좌절하고, 베스는 병에 걸려 쓰러진다. “두려움 없는 야심, 소녀 시절에 허락됐던 그 감정은 어른이 된 뒤에도 되찾고 싶은 행복이죠.” 거윅이 말한다. “내가 바로 그렇거든요. 언제나 좀 더 어렸을 때의 나 자신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지요.”

그린 컬러 레더 재킷은 Givenchy.


블랙 재킷과 팬츠는 모두 Giorgio Armani. 안에 입은 화이트 셔츠는 Eton. 부츠는 Yang Li. 은빛 커프링크스는 Cartier.

블랙 코트는 The Row.
거윅 역시 항상 예술과 전투를 치렀다. 언제나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대학원 희곡 창작 과정을 등록하는 데 실패했고 대신 연기로 진로를 돌렸다. 그리고 〈한나는 계단을 오른다〉나 〈프란시스 하〉 같은 소규모 영화에 출연하며 밀레니얼 세대의 ‘잇’ 걸로 떠올랐다. 영화 〈재키〉에서는 퍼스트레이디가 속내를 털어놓는 충실한 심복으로 내털리 포트먼의 옆에 섰으며, 위트 스틸먼의 〈방황하는 소녀들〉에서는 신 스틸러로 활약했다. 그러나 거윅의 인생 최고의 순간은 그녀가 이야기를 직접 만들 때 찾아왔다. 파트너 노아 바움백과 공동으로 각본을 집필한 〈프란시스 하〉와 〈미스트리스 아메리카〉 말이다. 두 사람은 노아 바움백이 당시 아내였던 제니퍼 제이슨 리와 공동으로 각본을 쓴 영화 〈그린버그〉에 거윅이 캐스팅되면서 2010년에 처음 만났다. 수년이 흐른 뒤 리와 이혼한 바움백이 거윅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동안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몰라 고군분투하는 자기 망상적인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였기 때문일까? 할리우드의 대규모 촬영 세트를 장악한 그레타 거윅의 모습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았다. 과연 그녀는 연기자들과 스태프에게 명령을 내리고 지휘하는 일을 잘해낼까? “물론이죠.” 그녀의 답이다. “다들 제 지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니까요. 배우기 싫어하는 애들을 교실 한가득 앉혀두고 억지로 수업하는 게 아닌걸요. 나를 만족시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란 말이에요.” 그녀는 자신의 본능을 믿는다. “리허설할 때부터 자꾸 최면을 걸어 나와 같은 꿈을 꾸게 만들어요. 본격적으로 영화를 찍을 때가 되면 모두 같은 꿈을 꾸고 있으니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를 확률이 낮아지죠.” 그래도 완고한 마치 고모 역할을 맡은 메릴 스트립에게 최면을 거는 것은 꽤 어렵지 않았을까? “감독으로서는 완전히 겁을 먹었죠! 그녀에게 내가 감히 뭐라고 하겠어요? 엄청나게 현명하고 영화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많이 알 텐데요. 제가 써넣은 대사가 한두 줄 있었는데, 매끄럽지 못했어요. 그때 메릴이 ‘내가 왜 저런 대사를 하죠?’라고 물으면 진짜 그럴싸한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는 정신이 번쩍 들어요. 그 덕분에 다음엔 좀 더 잘하게 돼요. 사실 불행한 일이죠. 그러려면 처음에는 메릴 앞에서 바보처럼 보이는 걸 감수해야 하거든요. 물론 메릴은 정말 멋진 사람이에요!”
〈작은 아씨들〉에 로리 역할로 출연한 티모시 샬라메는 그레타 거윅의 감독으로서 존재감을 확인시켜 줬다. “배우들과 대화하는 특유의 방식이 있는데 통찰력이 남달라요. 자기 자신도 배우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영화에 대해, 연기와 연출에 대해 말할 때 본능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법을 아는 것 같아요.” 거윅은 배우들과 협업하는 걸 좋아한다. “몸이 200개쯤 돼서 모든 걸 자기가 다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감독들도 있죠. 하지만 저는 사람들이 뭔가를 가져와서 나를 놀라게 해주면 좋겠어요. 그들이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그래, 저게 바로 내가 기여한 부분이야. 내 재능이 헛되이 쓰이진 않았군!’이라는 느낌을 받길 원해요.”
1시간 전 내게 화장실에서 사과했던 그녀는 다시 한 번 양해를 구한다. 어느덧 〈결혼 이야기〉 프리미어에 입을 드레스를 갈아입어야 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마침 노아도 런던에서 프리미어가 있어서 우리가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뜻밖의 행운이에요. 이런 일을 하다 보면 항상 일하고 있거나 일이 없거나, 둘 중 하나니까요.” 이 말은 두 사람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데, 실제로 이들이 사는 뉴욕에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두 사람의 관계에 매료돼 있다(바움백은 최근 그들 관계의 비결을 밝히며, 항상 거윅을 감동시키기 위해 노력한다고 털어놓았다). “혼자 쓰는 것보다 누군가와 함께 쓰는 게 훨씬 재미있기 때문에 공동 집필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같은 방에서 일하는 건 아니에요.” 거윅은 설명을 이어간다. “집필 초기에 우리는 아주 많은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 서로 웃기려고 하지만, 글을 쓸 때는 각자 따로 쓴 뒤 바꿔 읽어요. 특정 장면에 대한 아이디어가 생기면 ‘그럼 내가 한번 써볼게’ 하고 쓸 수 있는 데까지 써본 다음에 노아에게 주고, 그러면 그가 고치거나 아이디어를 더하는 식이죠. 그 반대일 때도 있고요.” 커플은 현재 마고 로비를 바비 인형으로 캐스팅한 영화의 각본을 쓰고 있다. 독특한 유머 감각과 실존적 고뇌로 가득한 지적인 페미니스트 바비의 탄생이 짐작되는 바, 바비의 제조사인 마텔은 자신들이 지금 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걸까? “최악의 경우 영화에서 우리를 자르는 것 말고 또 뭐가 있겠어요!” 거윅은 웃음을 터뜨린다.
육아에 대해 묻자 거윅은 이렇게 답한다. “아기들은 항상 환상에 빠져 있어서 사람과 눈을 마주치면 기쁨을 느껴요. 마치 ‘앗,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또 여기 있네!’ 하고 깨닫는 것처럼요. 그러다 다시 환상의 세계로 돌아가지요. 아기를 바라보는 건 굉장히 흥미로워요. 심지어 우리 아기는 아주 착하거든요. 종일 들여다보고 있어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러더니 유머 감각을 섞어 덧붙인다. “전 정말 그 애가 마음에 든답니다.” 마치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거윅이 비밀이라면서 내게 슬쩍 알려준 아이의 이름에 대해서는 할리우드 식 괴상한 이름이 아닌, 꽤 전통적인 이름이라는 것까지만 밝히겠다. 그녀는 두 사람이 도우미를 쓴다는 점을 꼭 강조하고 싶다고도 했다. “어머니와 친구들은 물론, 도우미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그녀는 “3시 50분, 5시 25분, 6시 45분…”이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다 다시 사과를 한다. “미안해요. 언제 다시 젖을 짤 수 있는지 시간을 계산해 보고 있었어요.” 수유하는 다른 친구의 젖을 아들에게 먹인 적이 있다면서 그게 자연스러운 방식이라고도 했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아이들에게 모유를 먹여야 해요. 아이의 면역체계를 튼튼하게 해주니까요.” 거윅은 갓 엄마가 되어 전수해 줄 지혜가 없다면서도 이 말은 남겼다. “어떤 준비를 해도 생각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어느 정도는 현실을 부정하는 마음이 계속 남아 있거든요. 친구들이 베이비샤워 파티를 열어줬을 때 수유용 브래지어를 선물 받았는데, ‘원래 브라들도 서랍에 꺼내 놔야겠어. 가끔은 입을 때가 있겠지’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 하지만 대체 언제요? 아기가 1시간 반마다 한 번씩 젖을 먹는데 대체 언제 수유용 브라가 아닌 브라를 입을 수 있겠냐고요. 새 삶이 시작되는 한편, 과거의 삶도 이어질 거라고, 그때는 그렇게 믿었던 거죠.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깜짝 놀랄 정도로 선명하게 깨닫는 순간이 찾아와요.”
밝은 모습과 달리 거윅은 마냥 낙관적인 사람은 아니다. “언제나 깊은 자기 회의에 빠져 있다고 보면 돼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죠. 때로는 지독하게 스트레스를 받고 예민해지기도 하지만, 언제나 한편으로는 ‘이런 일을 하게 되다니 정말 멋지군. 내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 하는 마음이 들거든요.” 스트레스가 심할 때는 촬영장이 해결책이다. “영화는 일분일초가 중요한 예술이란 말이죠. 제작 비용이 워낙 많이 들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는 데 1초를 쓰면 그동안 다른 일은 포기한다는 의미가 돼요. 몇 주일간 공황 상태에 빠지기도 하는데, 그게 또 끝내 주는 기분일 때도 있죠.” 거윅은 영화 홍보와 시상식 또한 좋아한다고 솔직히 말한다. “훌륭하다는 칭찬을 듣는 건 좋지만, 다음 작품을 만들 때 달라지는 건 없어요. 세상의 인정과 관계없이 그냥 나 자신과 계속 춤을 추는 것 같달까요.”
떠나기 전,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을 수정받는 그녀는 이미 스태프와도 자연스럽게 친구가 된 모양이다. 그러고는 내게 택시에 함께 타서 이야기를 마저 나누자고 한다. 작별의 포옹을 할 때 나는 그녀의 넷째 손가락에 반짝이는 무언가를 보았다. 약혼반지인가? “아, 맞아요. 하지만 아직 결혼한 건 아니에요. 벌써 몇 년째 끼고 다니고 있거든요. 순결을 서약하는 반지죠.” 그러더니 짓궂게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처참히 실패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