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운 좋게도 멋진 다리가 있는 아름다운 도시이자 동양인으로 북적거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성장했어요. 그리고 제가 다닌 UCLA는 ‘동양인 사이에서 길을 잃은 백인의 대학(University of Caucasians Lost Among Asians)’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해요. UCLA는 동양인의 ‘와칸다’와 마찬가지였어요. 맞아요, 그 학교에는 수많은 동양계 미국인 학생들이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디자인이나 재즈를 공부하는 이들도 있었어요. 영화를 전공하던 한 일본계 미국인 여학생은 정말 아름다운 스톱모션 영상을 만들었는데, 점토로 빚은 벌거벗은 모습의 인간들이 사랑을 나누고 서로 녹아서 하나가 됐다가 다시 새로운 인간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그 영상은 충격적이면서 도발적이었고 아름다운 동시에 무섭기도 했어요. 동양계 미국인 여성도 그토록 복잡한 감정을 담은 근사한 예술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됐어요. 아버지는 다른 동양계 미국인의 성공에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계셨어요. 마거릿 조의 파일럿 프로그램 〈올 아메리칸 걸 All-American Girl〉(한국계 이민 가족을 다룬 TV 시트콤)이 방송됐을 때, 우리 가족은 부엌 식탁에 둘러앉아 조그만 텔레비전으로 그 방송을 시청했어요. 우리 집 냉장고 문에는 마이클 창이나 크리스티 야마구치, 루 다이아몬드 필립, 타이슨 벡포드의 스크랩 기사가 붙어 있었지요. 부모님은 매우 진보적이었고,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동양계 미국인을 열렬히 응원하는 편이지만, 정작 제가 뉴욕으로 가서 코미디언이 되고 싶다고 했을 때는 그렇게 우호적이지만은 않으셨어요. 제가 코미디언으로 성공한 마거릿 조와 저명한 작가로 인정받는 맥신 홍 킹스턴의 이름을 들먹이자 부모님은 “그 사람들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잖니. 네가 그 사람들처럼 될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단다”라고 말씀하셨죠. 아시아 사람은 예측할 수 있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우리는 안전한 것을 원해요. 열심히 노력하면 그에 대한 보상이 주어질 거라는 걸 확인하고 싶어 하죠. 그런데 연예계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할지도 모르잖아요. 성공에 이르는 쉬운 길은 없지요. 그리고 성공을 했더라도 그것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고요. 그럼에도 이민자 부모님, 조부모님 그리고 증조부모님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막대한 위험을 무릅쓰고 아무런 길잡이도 없이 미국으로 건너오셨어요. 그때는 구글 맵이나 휴대폰 같은 것도 없었잖아요. 저는 그들처럼 용감해질 자신이 없어요. 저는 인터넷을 검색해서 후기가 좋지 않은 식당에는 가볼 생각조차 않거든요.

저도 물려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동양인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돈을 절약하는 습관이에요. 이민자들은 이곳에선 모든 것이 비싸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게 되죠. “와, 쌀국수 한 그릇이 50센트도 넘어?” “저 임신 중인 코미디언의 라이브 쇼 티켓이 내 디젤 자전거 한 대와 맞먹어.” 그들은 절대로 돈을 아끼는 습관을 버리지 못해요. 훌륭하게도 그것은 정말 유용한 생존 기술이기도 하죠. 제가 두부처럼 변하고 있는 두유 병을 들고 버릴지 말지 고민하는 걸 어머니가 보면 아직은 먹을 수 있다고 말씀하실 게 뻔해요. 아직도 어머니는 제게 헬스장에서 씻고 오라고 말씀하세요. 그러면 우리 집에서 물을 아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절약하는 습관은 제가 미국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뉴욕으로 이사했을 때 도움이 됐죠. 어느 정도 성공한 지금도 여전히 지독하게 아끼면서 살고 있어요. 제가 싫어하지만 계속 친분을 유지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유는 단지 그녀가 레몬나무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죠. 누군가의 잔디밭에 들어가 쓰던 유아용 욕조를 집어온 적도 있어요. 그렇게 해서 전 주택 융자금을 모두 갚을 수 있었어요!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 개봉했을 때, 40대 후반의 매우 재능 있는 동양계 미국인 여배우 한 명은 그 영화 관람을 거절했으며 앞으로도 절대 보지 않을 거라고 제게 고백하더군요. 이유는 단순히 자신이 그 영화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그 배우는 자신의 신발을 내려다보며 “굉장히 소외된 느낌이 들어요”라고 솔직하게 말했어요. 할리우드에서 동양계 미국인에게 좀처럼 기회가 찾아오지 않는다는 현실이 그녀를 초조하게 만들고 또 질투심을 갖게 한 것이죠. 저는 그녀에게 제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던 바로 그 질문에 대해 멋은 없지만 진실을 담아 대답해 주었어요. 10년은 한 우물을 파야 한다고 말이죠. 제가 할리우드에서, 아니 다른 어디에서든 성공하려는 젊은 동양계 미국인 여성에게 조언해 주고 싶은 말은 이거에요. 자신을 동양계 미국인 여성으로 생각하는 관점에서 벗어나세요. 버블 티를 마시거나 아웃렛 쇼핑을 하고 동양계 미국인들과 어울리지 마세요. 다른 미국 사람이 생활하는 방식에 자신을 노출시켜 보면 우리 모두 보편적인 투쟁을 하며 살아가는,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임을 깨닫게 될 거예요.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어울리면 오직 그 사람들만 웃게 만들 수 있어요. 그렇다고 오해하지 마세요. 연예계에 있는 다른 동양계 미국인과 잘 어울리는 것도 중요해요. 제가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했을 때, 코미디언 바비 리(Bobby Lee)가 저를 태우고 숯과 쇠고기 냄새로 가득한 ‘숯불집’이라는 한국 식당으로 데려가줬어요. 자리에 앉자마자 리는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내가 전부 계산할게. 마음대로 주문해”라고 말했죠. 연예계에 종사하는 다른 동양계 미국인과 이런 식의 유대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저는 일체감으로 뭉친 나만의 공동체를 갖게 된 셈이죠. 그들은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고, 제가 다른 이들로부터 존중받길 바라죠. 그러니까 여러분에게도 자신만의 공동체와 함께 그 바깥세상, 둘 다 필요하다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결과가 아닌 과정과 여정에 집중하라고 조언해 주고 싶어요. 이미 언급했지만 우리는 종종 예견 가능한 결과를 추구하는 편이지요. 그렇지만 창의력이 요구되는 직종에서 성공하려면 자신의 일을 정말 사랑해야 해요. 진정으로 말이에요. 아주 오랫동안 사랑해야 할 거예요.
위 내용은 앨리 웡이 펴낸 〈디어 걸스 Dear Girls〉(2019년 10월 15일 미국에서 출간)에서 발췌한 내용을 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한 것. 〈디어 걸스〉는 앨리 웡이 자신의 두 딸(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유쾌하고 진심 어린 인생의 조언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