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빛으로 가득한 백색의 갤러리 같은 집 안. 오픈 룸 형태의 공간에 거실과 부엌, 다이닝 룸 등 여러 기능의 공간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창조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는 부부, 캔디스 레이크와 디디에 라이언.
영국의 건축가 디디에 라이언(Didier Ryan)과 전직 모델 출신이자 포토그래퍼 캔디스 레이크(Candice Lake)의 집에는 동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가 많다. 런던 남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래된 철길 아래에 자리한 건물은 마치 옷장 뒤에 숨겨진 비밀의 세계 같다. “어이쿠!” 소리가 나게 하는 좁은 복도와 두 개의 문을 지나 환한 집 안에 들어서면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보아뱀 배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마법들 덕분에 아치웨이 스튜디오(Archway Studios)라 이름 붙은 집은 2013년 뉴 런던 아키텍처 올해의 하우스(New London Architecture House of the Year) 상을 수상했다. 기차가 달리는 철로 아래에 이처럼 아늑한 보금자리가 있다는 걸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 이 집은 햇빛이 잘 들어오도록 설계되었을 뿐 아니라 세심하게 배치한 창문 덕분에 외부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다. 열차가 지나가는 소리도 크게 들리지 않는다. 언더커런트 아키텍츠(Undercurrent Architects)의 설립자인 라이언은 늘 전형적인 건물은 만들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이 말이 얼마나 비상업적으로 들릴지도 잘 알고 있다. “매 프로젝트마다 장소에 걸맞은 최적의 공간을 짓는 데 중점을 두는 동시에 계속해서 진화하려고 노력해요. 이미 했던 작업을 반복하거나 5%씩 변화를 주기만 하는 작품은 만들고 싶지 않아요.”
스틸로 만든 좁고 긴 아치형의 외관.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건물이다.
계단으로 이어진 2층 한 벽면에 꾸민 서재. 에토레 소트라스가 디자인한 ‘아쇼카’ 램프를 비롯해 20세기 디자인 피스들이 놓였다.
캔디스 레이크의 취향이 묻어나는 다채롭고 컬러플한 인테리어. 인디아 마다비,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 등 개성 강한 디자이너들의 가구와 소품이 섞여 있다.
식탁 위에 놓인 소품 하나하나가 눈길을 끈다.
유리창을 통해 햇살이 쏟아지는 2층. 굽이치는 지붕의 실루엣이 환상적인 느낌을 선사한다.
그러나 혁신에는 어려움이 따르는 법이다. 서더크(Southwark) 의회는 이곳에 거주용으로 적합한 집을 지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 개발 계획 신청을 거절했다. 라이언은 지역 정치인을 찾아가 겨우 그 결정을 뒤집을 수 있었다. “어느 날 라이언이 우리 집을 지을 땅을 샀다고 하는 거예요. 초록 잔디밭을 상상하고 왔는데,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어요”라고 레이크는 회상한다. 과거 골동품 창고와 자동차 정비소가 자리했던 너저분한 공터는 현재 완전히 바뀌었다. 레이크는 친구인 ‘몬테 베라 디자인’의 피아 바요트 코를레트(Pia Bayot-Corlette)와 함께 20세기 디자인 피스를 풍부하게 갖춘 갤러리 같은 인테리어를 완성했다. 맥시멀리스트를 자처하는 그녀는 벽에 걸린 그림부터 인디아 마다비가 디자인한 기하학적 패턴의 푸프,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가 선보인 원시부족 무늬의 사이드 테이블까지 감각적인 패턴과 프린트로 자신의 집을 가득 채웠다. 오픈 룸 형태의 집에서 러그와 카펫은 공간의 기능을 구획하는 역할을 한다. 계단을 통해 주 공간과 분리된 위층에는 빛이 환히 들어오는 사무실이 있는데, 지나가는 열차를 내다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은 열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려고 몇 시간씩 계단에 앉아 있곤 했어요”라고 레이크는 말한다.
런던에서 건축을 공부한 라이언이 태어난 곳은 호주로, 대부분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그의 프로젝트들은 실내에서도 웅장한 풍경과 건축의 아름다움이 연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재개발이나 리모델링 작업처럼 제한된 조건에서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건물을 만드는 도전도 즐긴다. “이 집이 화제가 되면서 거친 주변 환경에 세련되게 호응하는 건물을 짓고자 여러 기술적 난제를 극복한 모든 노력을 인정받은 기분이에요”라고 라이언은 말한다. “바라는 건 이 작은 집이 도시에 긍정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으면 좋겠어요. 런던 뒷골목에는 이런 오래된 철로와 다리가 셀 수 없이 많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