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여행지에서 쓴 글 #ELLE 보이스

여행이라는 경험과 여행지에서 쓴 글은 분명 다르다. 그러나 창밖의 풍경이 원고를 완성하도록 도와주지는 않았다.

BYELLE2020.02.20
 
지난해 이맘때, 나는 청설모를 보며 글을 쓰고 있었다. 아니, 청설모를 창문 너머로 바라보고 있었다. ‘우아, 여긴 청설모도 사네’ 같은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머물던 방은 책상에 앉으면 창문 밖 소나무 언덕을 그대로 마주하는 구조였다. 책상 위에는 노트북과 아이패드, 공책과 펜 따위가 널려 있었지만 머릿속을 채운 건 글보다 다른 것들이었다. 그러다 보면 나무 위를 뛰어다니던 청설모는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지고 어디선가 노란 고양이가 어슬렁거리며 나타나 언덕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그 방은 작가들에게 창작 공간으로 한 달간 주어지는 곳이었다. ‘창작촌’이라는 이름이 붙은 그곳에서 나는 창작을 제외한 다른 모든 일을 했다. 업무 미팅을 몰아 해치웠고, 이틀에 한 번꼴로 종이책을 잔뜩 사들여 책상 한쪽에 쌓았는데, 그중에는 지금까지도 펼쳐보지 않은 분자생물학 교과서도 있었다. 아침에는 유명하다는 카페에 가서 화가들의 이름이 붙은 커피를 마시고, 오후에는 빵집에서 빵을 한 아름 사들고 돌아와 책 한 권을 골라 읽거나 쓰다 만 원고 파일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창문 블라인드를 걷어 올리면 어제와는 약간 달라진 창밖 풍경이, 울산의 내 방 작은 창문으로는 볼 수 없는 겨울 언덕이 보였다.
 
대학원에 다니며 소설 습작을 하던 시절, 나는 먼 곳으로 떠나 글을 쓰는 일에 대단한 환상을 갖고 있었다. 그때 내 일상은 규격이 엄격하게 짜인 공산품 같았다. 아침에 연구실로 출근하고, 논문을 읽고, 퇴근하면 기숙사 침대에 늘어져 있다가 겨우 몸을 일으켜 책상 앞에 앉았다. 집중해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퇴근 이후 한두 시간 정도였다. 그러니 여행지에서 글을 썼다는 작가들의 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똑같은 연구실과 실험실, 기숙사, 도서관을 벗어나 글을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다른 풍경을 바라보고 다른 거리를 산책하면 얼마나 많은 글감들이 머릿속에서 샘솟을까. 졸업 이후 작가로 지내면서 환상을 실현할 기회가 생겼다. 작업 공간을 찾아 헤매는 작가들을 위해 공간을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한 달 치 짐을 28인치 캐리어에 꾸역꾸역 밀어넣고 단기 레지던스로 두 번 떠났다. 통영, 전주, 대만으로 여행 가면서도 노트북을 챙겼고 호텔 침대 옆 테이블에는 혹시 모를 생각을 놓칠까봐 공책과 펜을 올려두었다. 그리고 지금은 치앙마이까지 와서 한 카페에 아이패드를 펼쳐놓고 앉아 있다. 그 모든 경험은 대체로 좋았지만, 한편으로 내게 슬픈 진실을 깨닫게 했다. 눈앞의 풍경이 아무리 새롭고 아름다워도 그것은 대부분 내 글과 무관하다는 것. 아름다운 창밖 풍경은 내가 원고를 완성하도록 도와주지 않는다. 특히 당장 써야 할 글이 있고, 그 글을 오늘밤까지 지구 반대편으로 보내야 한다면 말이다.
 
조용한 카페에 앉아 낯선 동네의 일상을 바라보는 것은 분명 여유롭고 즐거운 경험이다. 지금 내가 산책하는 곳이 매일 보던 집 앞 골목이 아니라는 사실은 어떤 정서적 충만감을 준다. 때로는 여행에서 만나는 난감한 것들, 이를테면 골목에서 마주친 들개라든가 항공편 결항으로 인한 끝없는 기다림, 실패한 파파야 샐러드는 나에게 유용해 보이는 단상을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산책은 산책일 뿐 그 자체로 영감이 되지는 못하며, 여행 중에 떠오른 단상을 휘갈겨 쓴 글을 다음날 읽어보면 대체로 참혹하기 짝이 없다. 그런 생각들은 평생 어디 써먹지 못할 아이디어로 공책에 남거나,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활용된다. 잘해야 긴 글의 한두 문장 정도로.
 
소설이라면 더욱 그렇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지금 현실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가 지금 명동에 있는지, 아니면 연희동이나 님만해민에 있는지 아무래도 상관없는 순간이야말로 진정 다른 세계에 빠져들 수 있다. 주인공들은 이미 태양계를 훌쩍 떠나 외계행성이나 블랙홀 근처를 서성이는데, 달라봐야 지구의 어느 동네에 불과한 풍경을 음미하고 있어서야 이야기에 몰입할 수 없다. 그러니 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쓴 소설이 내 방 침대에서 널브러진 옷가지들을 바라보며 쓴 소설보다 더 나으리라는 법도 없지 않을까. 그걸 알면서도 이따금 다음 문단으로 넘어가지 않는 순간마다 창밖으로 시선을 옮기며 생각한다. 그래도, 일단 와보길 잘했지. 환상을 하나씩 깨는 것도 여행의 부수적 목표이니까.
 
다른 행성이나 위성의 환경을 지구의 대기 및 온도, 생태계와 비슷하게 바꾸어 인간이 살 수 있도록 만드는 테라포밍이 진행 중인 어느 위성의 황무지, 별빛들 사이 머물 곳 하나 없는 공허한 우주 한가운데, 인류보다 오래된 존재들의 고향 행성을 상상할 때, 가끔 그 세계들은 내가 걸었던 동네처럼, 몇 시간이고 창문 너머로 무작정 바라보았던 풍경처럼 선명하게 느껴진다. 결코 가볼 수 없는 세계의 공기와 햇볕이 구체적으로 나를 감싸는 경험은 소설 쓰는 일이 내게 주는 가장 큰 기쁨이기도 하다. 그렇게 가상 여행의 즐거움을 알면서도 나는 왠지 평범한 지구의 또 다른 동네로 떠나는 꿈을 자주 꾼다. 이 풍경은 내가 쓰지 않아도 창밖에 있으니까. 아주 조금 다른 시공간은 더 멀리 있는 시공간으로 가는 길의 정류장 같은 것이니까. 그러니 나는 다음에도 다른 풍경을 보며 글을 쓰겠다는, 별다른 도움은 되지 않는 핑계에 기꺼이 속을 것이다.
 
writer 김초엽
93년생 소설가. 포항공과대학교 생화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펴냈다. 따뜻하고 보편적인 서사의 SF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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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김초엽
  • 에디터 이마루
  • 디자인 오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