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은 제법 포근했다. 얼마 전 길에서 만난 목련 나무에는 벌써 새순이 빼쭉빼쭉 돋아 있었다. 볕 좋은 한낮에는 봄 내음이 나는 것도 같았다. ‘오, 드디어 새봄이 오는 것인가’ 하고 설렜는데, 그런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주말에는 눈이 펑펑 내렸다. 롱 코트는 너무 무겁고, 패딩 점퍼를 입기엔 좀 무안한 그런 시기. 이런 때에는 울 블레이저를 꺼내야 한다. 적당히 따뜻하면서도 적당히 경쾌한 아이템. 컬러는 브라운이 좋겠고, 도톰한 소재에 헤링본이나 플레이드 패턴이 더해졌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울 팬츠 슈트를 입은 두 모델. 왼쪽 모델이 입은 슈트는 랄프로렌 제품이다. 1974년

랄프 로렌의 플레이드 재킷과 플란넬 팬츠를 입은 리사 테일러. 1976년


랄프 로렌이 만든 것이라면 출근할 때 입는 잘빠진 슈트도 좋고 밤의 파티를 위한 턱시도도 멋지지만, 나는 여유 있는 사이즈의 헤링본 블레이저를 추천하고 싶다. 영국 귀족들의 승마복에서 파생된 헤링본 블레이저는 조드퍼 팬츠나 라이딩 부츠와 입었을 때 가장 멋지고, 하늘하늘한 원피스나 캐주얼한 데님 팬츠 등과도 썩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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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블레이저로 더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하고 싶다면, 랄프 로렌이 의상을 디자인한 1977년 영화 〈애니홀〉을 참고할 것. 울 블레이저와 터틀넥 스웨터, 데님 팬츠, 체크무늬 셔츠, 에스닉한 스카프와 페도라 등을 활용한 다이안 키튼의 보이시 룩은 두 주인공의 톡톡 튀는 대사만큼이나 큰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 영화의 부제를 만들 기회를 준다면 나는 이렇게 쓰겠다. 〈울 블레이저를 입는 가장 쿨한 방법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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