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이정진이 포착한 보이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사진가 이정진이 땅 위에서 채집한 광활한 흑백 풍경 앞에 서면 주위의 소리가 멀어진다.

이정진, Voice 39, 2019

이정진, Voice 39, 2019

사진가 이정진.

사진가 이정진.


20년간 미국과 캐나다의 광활한 자연이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을 렌즈로 포착해 왔다. 인적 없는 대자연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나 나는 자연 속에서 가장 깨어 있다. 자연을 보고 있는지, 나를 보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가 된다.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 편이다.
처음 대자연을 렌즈에 담은 날은 1989년, 장소는 미국 서부의 사막이었다. 필요 없는 것을 너무 많이 쥐고 살았다는 걸 그날 그곳에서 깨달았다. 허물이 다 벗어지는 기분이었다.
자연을 작업 대상으로 삼는 이유가 있나 〈뿌리 깊은 나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몇 년 했다. 그때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어보고 작가가 돼야겠다고 다짐했다. 누군가를 관찰하며 그의 감정을 포착하는 일이 영혼을 훔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촬영에 삼각대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맞다. 현장에서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카메라가 가방에서 나올 때를 기다린다. 직감이 발동하도록 스스로를 잘 비우는 일이 유일하고도 중요한 준비다. 어떤 장면이 나를 건드리면 즉각적으로 찍는다. 몇 장 찍고 그 자릴 떠난다. 움직이는 피사체를 찍는 포토그래퍼처럼.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Voice’ 시리즈는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으로 사용한 작업이다 그런데 거의 아날로그 카메라인 것처럼 사용했다. 찍고 나서 컷을 확인하지 않았고, 촬영을 마치고 모텔에 돌아가서도 안 봤다. 촬영하는 동안에는 내가 뭘 찍었는지 궁금하지 않다. 눈으로 목격하고 느낀 순간 그 자체로 소중하기 때문에.
파블로 네루다의 ‘시’에 본인의 작품을 투영하기도 했는데 시를 발견했을 때 전율에 휩싸였다. 옛 시인이 내 마음을 대필한 것처럼 느껴졌다. 시의 마지막 부분은 이러하다. “허공에 취해/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지.” 내가 사막에 카메라 들고 슬렁거릴 때 느낀 감정과 일치한다.
스승인 로버트 프랭크는 당신의 사막 사진에 대해 “인간이라는 야수가 배제된 풍경”이라 표현했다 자신과 내 작업을 대조하여 표현한 말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 작업에 야수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내 작품에는 마음과 정신이 들었다. 내 작품은 자화상이고 일기장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내 작품에서 ‘작가 이정진’을 보는 게 아니라 자신의 얼굴과 감정을 비춰보더라. 굉장한 영광이다.
뉴욕 중심부에 살며 활동 중이다. 도시에서 무엇을 찍어본 적은 자연 속에 가면 눈이 환해져 모든 게 잘 보이는데, 도시에서는 그렇지 않다. 자연을 찍는 건 나와 마주하는 일이다. 왜 그 먼 곳까지 가야 나를 볼 수 있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이정진, Voice 43, 2019

이정진, Voice 43, 2019

이정진, Voice 40, 2019

이정진, Voice 40, 2019


이정진의 개인전 〈Voice〉는 PKM 갤러리에서 3월 5일까지 열린다.
사진가 이정진이 땅 위에서 채집한 광활한 흑백 풍경 앞에 서면 주위의 소리가 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