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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국의 회사에서 퇴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라파엘의 한국 살이3

아마 지금 컴퓨터 앞에 앉아 “퇴사하고 싶다”라고 중얼거리는 당신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 우리의 회사 생활을 지옥으로 만드는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일들에 대하여.

BY권민지2020.02.07
금요일 오후 5시 55분, 친구에게서 온 카카오톡 메시지. “곧 도착! 불금이니까 맛있는 거 먹자!” 책상 정리는 1분 만에 끝났다. 퇴근까지 4분. 간만에 드디어 야근 없는 날이다. 그런데, 갑자기 컴퓨터 화면의 오른쪽 맨 밑에서 이메일 팝업 창이 뜬다.
 
“미안하지만, 이거 오늘 밤까지 마무리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잠깐만, 이거 농담이지? 나 지금 막 사무실에서 나가려던 참인데? 오늘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없더니, 왜 지금? 미리미리 알려주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건가? 친구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텐데, 뭐 어쩌라는 거지?


영화 〈오피스〉 스틸

영화 〈오피스〉 스틸

머릿속에서 하고 싶은 말들이 쏟아진다. 혼란, 분노, 좌절감이 밀려온다. 하지만 실제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란… 고작 “네, 알겠습니다”가 전부다. (불쌍한) 친구에게는 “정말 미안해. 급한 일이 생겨서 오늘'도' 못 나갈 것 같아”라는 메시지를 보내 놓았다. 놀랍지도 않다. 생각해 보면 매일이 ‘급한 일’의 연속이었으니까.
 
당신도 아마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야근이 직장인의 의무이며 회사의 권리라도 되는 것처럼 금요일 밤 당연히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 물론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이도, 야근 수당 같은 것도 없다. 그리고 보통 상사는 퇴근하면서 이 말을 남긴다. “왜 집에 안 가니?” 장난하나? 이 모든 건 내가(인간이) 감당하기엔 너무 가혹했고, 결국 퇴사를 결심했다.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스틸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스틸

하지만 오해하지 말기를. 나는 야근을 반대하지 않는다. 모든 회사 생활이 지옥 같다고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우리에겐 중요한 프로젝트나 마감이 있으며,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급한 일’이 생길 수 있고, 그래서 때로는 초과 근무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나의 한국 회사생활이 그랬듯 대부분의 업무가 ‘급한 일’의 범주에 들어간다면, 그건 문제가 있다.
 
주변에서 회사 생활에 만족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몇 명이나 봤는지? 충격적이겠지만, 세상 어딘가에는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 즉 ‘즐거운 직장 생활’이라는 건 아예 불가능한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아니, 적어도 우리는 일을 끔찍하게 싫어하지 않을 수 있다! 각종 쓸모없는 업무들만 줄어들어도 한 시간에 한 번씩 “퇴사하고 싶다”를 중얼거리지는 않을 거다. 쓸모없는 이메일, 쓸모없는 보고서 작성, 쓸모없는 회의들만 없다면 말이다. 이 모든 쓸모없는 일들의 결과는? 당연히 야근이다. 정말이지, 비효율적이기 짝이 없다.
 
영화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영화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아무래도 회사는 직원들이 일을 많이 할수록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정확히 그 반대다. 일을 오래 할수록, 특히 쓸데없는 일을 오래 할수록 우리는 피곤해지고, 자연히 실수가 잦아지며, 살이 찌고, 병들어간다. 이른바 ‘번아웃 증후군’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사생활이 없는 삶에 익숙해지게 되면서 일이 곧 삶이라고 느낀다. 하지만 바꿔 생각해 보면 그건 일할 목적 자체를 상실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도대체 우리는 뭘 위해 일하나? 만약 우리가 사무실 밖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 나눌 수 없다면, 일은 그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어쩌면 한국의 많은 이들이 결혼을 위한 결혼을 하는 것도 사랑이나 데이트에 쏟을 시간 혹은 에너지가 부족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휴가를 보내기 위해 런던으로 돌아갔을 때 나는 경악했다. 런던의 친구들이 ‘칼퇴’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실제 그들은 거의 매일을 5시나 6시에 집에 갈 수 있었다. 세상에, 어떻게 5시까지 모든 일을 끝낼 수 있는 거지? 뭐야, 사람들이 제때 퇴근한다고 해서 나라가 망하는 건 아니잖아? 정말 그랬다. 나의 친구들은 대부분 5시나 6시에 집에 가지만 영국의 경제는 괜찮아 보였다.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스틸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스틸

하지만 한국 직장인들이 칼퇴하지 못하는 건 단순히 일의 양이나 업무 프로세스 때문만은 아니다. 일종의 분위기도 6시 퇴근을 방해하는 데 한몫한다. 기적적으로 퇴근 시간에 맞춰 일을 끝낸 날에는 집에 가기 위해 눈치를 봐야 한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상사가 집에 가기 전에 퇴근하는 건 무척 마음 불편한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상사가 휴가라도 가면 우린 모두 6시에 집에 갈 수 있다. (그리고 칼퇴가 가능한 그 기간을 ‘방학’이라 부른다. 왜지?) 이건 한국에서도 사실 제시간에 업무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예다.
 
휴가를 신청할 때도 눈치 게임은 계속된다. 휴가에 갈 수 있을까? 동료들이나 상사는 뭐라고 할까? 1주 이상 휴가를 내도 괜찮을까? 나 역시 그렇게 고심하다가 휴가를 신청한 적이 있었다. 노르웨이와 북극의 중간에 자리하는 스발바르 제도를 보기 위해서 여행 몇 달 전에 휴가계를 제출했다. 아니나 다를까, 스발바르 제도로 떠나기 딱 하루 전에 또 급한 일이 생겼다. 그리고 난 이 상황에 휴가를 가는 이기적인 팀원이 되었고 말이다.
 
어쨌거나 이기적이게도, 난 휴가를 취소하지 않았다. 빙하와 황야로 둘러싸인 스발바르 제도, 영하 30도에 육박하는 추위였지만 직장 생활로 방전되어 버린 에너지가 다시 충전되는 느낌이었다. 문명과 몇 시간이나 떨어진 외딴곳에서 대자연과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 주는 경이로움을 만끽하던 바로 그 순간, 카카오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휴가 중인 건 알지만, 혹시 이런 것과 저런 것 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 그 순간 정말 사라져버리고 싶었다.
 
이토록 광활한 스발바르 제도 한복판에서, 업무 메시지를 받았을 때의 그 참담함이란

이토록 광활한 스발바르 제도 한복판에서, 업무 메시지를 받았을 때의 그 참담함이란

사실 이건 휴가를 간 나나 카카오톡으로 일을 부탁하는 동료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가 (정당한 이유로) 사무실에 없을 때 그 일을 대신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나 체계가 전혀 없는 시스템 자체가 진짜 문제다. 하지만 그 대신 우리는 휴가를 간 A와 칼퇴한 B를 탓하기 시작한다. 일단 팀에 문제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말이다.
 
최근 주 52시간 근무제 법안이 통과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당신처럼(?) 나도 무척 반가웠다. 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좀 지났지만, 이상하게도 별로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퇴근 10분 전 밀려오는 ‘급한 일’들과, 야근과, 주말 근무는 여전하고 휴가 중인 누군가는 지금도 업무 부탁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으며 노트북 앞에서 "퇴사하고 싶다"를 중얼거리고 있을 것이다. 물론 법의 보호도 중요하다. 하지만 진짜 ‘워라밸’을 위해서는 직장생활을 지옥으로 만드는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들, 각종 쓸모없는 일들과 눈치 게임, 모든 비효율적인 프로세스부터 없애야 하지 않을까. 그보다 먼저 ‘워크 라이프 밸런스’라니, 그게 무슨 뜻인데? 아마도, 워크=라이프?


*한국 살이 9년 차, 영국에서 온 남자 라파엘 라시드가 쓰는 한국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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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라파엘 라시드(프리랜스 저널리스트)
  • 사진 라파엘 라시드(스발바르 제도)/각 영화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