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꼰대가 돼가는 걸까요? _ 엘르 보이스

SBS 유튜브 콘텐트 <문명특급>의 이은재 PD의 '꼰대'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들.

BYELLE2020.01.31
 
얼마 전, 친구가 본인 직장 이야기를 해줬다. 40대 팀장님이 유튜브를 시작했다는 이야기였다. 평소 직원들의 사적인 유튜브 채널 운영을 철저히 관리했던 팀장님이라고 했다. 사실은 직원들을 시기한 게 아니냐며 그 친구는 웃어댔다. 정말로 뉴미디어계에 큰 꿈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며 나는 생판 모르는 다른 회사 상사를 옹호했다. 직장 생활 5년 차가 되니, 부쩍 팀장님들의 입장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의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직장 상사나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 뜻을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사회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꼰대’가 무엇인지 경험으로 알고 있다. 술자리 속풀이에 가까웠던 이야기가 어느덧 사회적으로도 확장돼 ‘안티 꼰대’ 정신으로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술 강권하지 않기, 사생활 묻지 않기, 폭언하지 않기 등 직장 내 ‘꼰대질’을 경계하는 교육도 심심찮게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본인이 ‘꼰대’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가 피해야 하는 그 ‘절대 악’ 혹은 절대 악적인 존재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패기 넘치던 21세, 대학교에 입학한 나는 무척 들떠 있었다. 재수를 해 1년 늦게 학교에 들어갔지만, 모두가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며 평등할 것이라는 ‘진리의 상아탑’에 대한 믿음은 견고했다. 한 학번 높은 선배들과도 나이가 같으면 말을 놓고 격의 없이 지냈다. 하지만 1년 뒤 듣게 된 것은 “우리 과는 학번제야”라며 존댓말을 해야 한다는 선배의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과대표가 되면 바꿔야지’란 생각으로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던 ‘그’ 학번제를 꾹 참고 학교생활을 했다. ‘학번’이 권력인 줄 안다며 선배들이 ‘꼰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과대가 되니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갔고, 1학년 때의 다짐은 생각도 못 한 채 졸업을 향해 달려가는 나를 발견했다. 심지어 학번제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자기합리화까지 하면서 먼저 들어온 사람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쩌면 1학년 때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던 선배들의 ‘꼰대’ 의식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잊고 있던 이 일이 생각난 건 회사에 들어온 후배를 ‘이해하려는’ 나를 발견하면서부터다. 상사가 내 주말 생활에 본인을 대입하며 ‘힙’하다고 칭찬했을 때 기분이 썩 좋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데 말이다. 나도 어느 순간 후배들의 사고방식을 조금이라도 ‘이해’하지 못하면 발버둥을 치며 따라가려 했다. 모르는 신조어도 죽을 둥 살 둥 따라잡으려 애썼다. 신곡과 새로 데뷔한 아이돌의 이름을 외며 ‘아직 죽지 않았음’을 뽐냈다. 간혹 그들의 문화가 이해되지 않으면 내 방식으로 그들을 설득하려 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트렌디하고 재미난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것이 나를 ‘꼰대’로 만들고 있었다.
 
나이는 누구나 먹는다. 그것은 누구나 시간이 흐르면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노력 없이 가만히 있다가 얻은 나이를 권력으로 알고, 모든 것을 통제하에 두려는 모습은 때로 안쓰럽다. 모든 것을 내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때,  그리고 내가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때 우리는  ‘꼰대’가 된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할 수 있는 힘이 중요하다. 요즘 나는 후배에게 먼저 식사나 술자리를 묻지 않는다. 먼저 그들이 나에게 마음을 열 때까지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애쓴다. 아직 직장 생활 5년 차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점점 ‘꼰대’ 직전인 ‘곤대’가 되어가는 나를 보면서 그러지 말자고 다짐한다. 2020년에는 우리 모두 좀 더 강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길!
 
Writer 이은재 SBS PD. 유튜브 콘텐츠 〈문명특급〉 MC 혹은 ‘연반인 재재‘로 좀 더 친근하다. 가볍고 재기발랄한 방식으로 세상에 생각할 거리를 던지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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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이은재
  • 에디터 이마루
  • 사진 Unsplash(Jason Rosewell)
  • 디자인 오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