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아무나 가질 수 없어서 더 갖고 싶은 것

소유욕을 자극하는 패션 브랜드의 기막힌 판매 전략.

BYELLE2020.01.18
 
대체 세계경제 불황은 언제 끝나는 걸까? 브렉시트의 영향과 글로벌 금융위기, 실업률과 Z세대의 취업난 그리고 고령화까지 더해져 IMF만큼 심각한 경제불황이 지속되고 있다. 경제 전문지도 아닌데 서두부터 암담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경제가 좋지 않으면 가장 먼저, 가장 크게 타격을 입는 업계가 바로 패션계이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업계도 마찬가지겠지만,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으면 소비를 줄이는 가장 첫 번째가 바로 패션이다. 옷이 낡아 못 입는 시대는 지났다. 물론 개인차에 따라 다르지만 유행에 뒤처지거나 최신 아이템만 아닐 뿐 옷이 부족한 사람도 드물다. 그리하여 패션계는 소비를 위해 당장 팔릴 만한 옷을 선보이며 패션 부흥기 시절의 존 갈리아노나 알렉산더 맥퀸 등의 패션 판타지를 지양하고 있다. 
 
한때는 신기한 현장 직구 시스템이 인기몰이를 하다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기도 했다. 아직도 ‘시 나우 바이 나우(See Now Buy Now)’를 강행하는 브랜드가 있던가? 이런 시도는 점점 쌓여가는 악성 재고를 조금이나마 덜기 위한 해결책 중 하나였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패션계는 또 다른 ‘신박한’ 구매욕을 불러일으켜야 했다. 
 
지난 11월 23일, 지구상에서 가장 옷 잘 입는 남자 지드래곤의 패션 브랜드 ‘피스마이너스원’과 나이키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전 세계가 떠들썩했다. 사실 입대 전부터 지드래곤과 나이키의 컬래버레이션 소문이 있었지만, 그가 군복무에 집중하는 동안 소문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제대 후 지드래곤의 인스타그램에 나이키와 피스마이너스원의 티저 사진을 올려 뉘앙스를 풍기더니, 하루 뒤 ‘데이지×나이키 로고’를 포스팅하며 두 브랜드의 컬래버레이션을 알렸다.
 
대중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과연 어떤 제품일까? SNS에는 수많은 추측이 떠돌며 패션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어 에어 포스1 파라-노이즈가 공개되자 파장은 엄청났다. 언뜻 보면 클래식한 검정색 에어 포스1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놀라웠다. 제품마다 다른 붓터치, 크랙이 생기고 갑피가 벗겨지면 현란한 데이지 드로잉이 나타나는 등 어디서도 보지 못한 디테일이 가미된 제품이었다.
 
여기에 지드래곤의 친구들을 위한 88피스의 노란색 스우시, 818피스만 제작한 한국 리미티드 에디션의 빨간색 스우시 그리고 모두를 위한 흰색 스우시까지. 발매될 때만 해도 흰색 스우시 버전은 누구나 나이키 매장에 가면 가질 수 있는 줄 알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지드래곤이 친구들에게만 나눠준 노란색 스우시 제품이 인스타그램에 포스팅되기 시작하자,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인싸’ 혹은 ‘패피’ ‘지드래곤의 친구’가 되고픈 이들의 신발 쟁탈전이 시작됐다. 가장 원초적인 방법으로 신제품이 발매되는 매장에 줄을 서거나, 예정되지 않은 AR 스태시 스폿 이벤트(힌트 이미지를 통해 이벤트 현장을 찾고 그곳에서 AR 이미지를 통해 응모하는 방식), 사이트에서 밤새도록 ‘광클’하는 방법, 무작정 캠핑, 발매 당일 선착순 티켓을 수령하는 등 이 운동화를 갖기 위해 기상천외한 방법들이 등장했다.
 
슈퍼 하이엔드 혹은 루이 비통×슈프림 컬렉션이 아닌, 나이키 운동화 하나에 전 세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물론 제품으로 보면 굉장히 독특하고 재미난 제품이다. 하지만 누구나 살 수 있는 평범한 운동화가 나이키 마니아가 아닌 패션계 전체를 뒤흔들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11월 23일, 압구정 로데오 거리는 장관을 이뤘다. 스니커즈 편집 숍 아트모스 서울 압구정점에서 발매 소식이 전해지자, 신사동 학동사거리에 있는 매장부터 갤러리아백화점까지 꼬불꼬불 끝이 보이지 않는 엄청난 인파의 줄 서기 작전이 시작됐다. 예상대로 발매되자마자 운동화는 모두 품절 사태.
 
몇 해 전 어글리 스니커즈 유행의 시초가 된 트리플S 운동화가 떠올랐다. 이 제품은 발매 1년 전부터 홈페이지를 통해 프리 오더를 시작했는데 서울의 한 매장에서만 발매 전 400명이 넘게 선주문하고, 이미 결제까지 끝난 고객들이 대부분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대박’ 아이템도 등장했다. 이번엔 아디다스였다! 아디다스와 프라다의 협업 소식으로 또 한 번 SNS가 도배됐다. 지드래곤의 나이키 운동화는 총 몇 피스인지 공개되지 않았지만 ‘프라디스’는 정확하게 전 세계에서 단 700피스만 판매한다고 발표했다.
 
운동화 옆면에 일련번호를 각인해 어떤 아이템보다 희소가치를 높였다. 볼링 백과 슈퍼스타 스니커즈를 세트로 판매하는 이 제품은 400만 원대라는 높은 가격에도 ‘완판’ 행렬을 이어갔다. 청담 매장에 과연 몇 피스가 입고됐는지 문의해 봤지만, 공개를 거부했다. 혹여 ‘VIP나 셀러브리티에게 먼저 가질 수 있는 특권을 준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홍보 팀에 비공식 질문도 던졌다. “요즘 그랬다간 큰일나요. 누가 구입했는지 뻔히 알 텐데 그런 특권은 절대 없죠”라며 누구나 공평하게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프라디스가 론칭된 날 마이애미에서는 또 다른 ‘역대급’ 운동화가 공개됐다. 디올 맨 크루즈 쇼에서 선보인 조던 브랜드와 협업한 에어조던1 하이 OG가 주인공. 하지만 2020년 6월에 ‘오직 1000켤레만 약 2000달러에 판매할 예정’이라는 사실 외에 알려진 정보는 없다. 순식간에 솔드아웃되리라는 건 이미 예견된 일이다.
 
이런 ‘사태’는 비단 운동화뿐 아니다. 버버리에서 지난 10월 처음 선보인 독창적 시스템 ‘비 시리즈’를 발표하고 매달 17일 스웨트셔츠와 비니, 스카프 등 1개의 패션 아이템을 오직 24시간 동안 온라인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e-커머스를 시작했다. 덕분에 2019년 버버리의 상반기 수익은 전년 대비 42%의 신장률을 기록, 14.4%의 주가 상승을 이뤄냈다. 물론 비 시리즈만의 결과는 아니었지만 소비자와 브랜드의 소통을 한정된 상품으로 보다 빠르게 소통하며 상호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이 패션 비즈니스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결과다.
 
이런 호응에 힘입어 프라다도 동참했다. 지난 12월 5일 24시간 동안 판매하는 타임캡슐 프로젝트를 론칭, 오직 50피스 한정 시리얼 넘버를 각인한 볼링 셔츠를 선보였다. 프라다는 앞으로도 매달 5일 진짜 갖고 싶은 제품만 선보일 예정이라고(아쉽지만 유럽의 e-커머스 지역에서만 구입할 수 있다).
 
이 밖에 루이 비통은 ‘리그 오브 레전드’ 컬렉션을 오직 자사 홈페이지에서 선주문으로만 판매하고, 베트멍은 44개의 스타워즈 컬렉션을 모스크바의 쭘(Tsum) 백화점에서 론칭해 다시 한 번 이슈 몰이를 하고 있다. 이런 제품들의 특징은 희귀한 다이아몬드가 장식돼 있거나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만들어낸 초고가 럭셔리 제품이 아니라는 사실이 놀랍다. 오히려 평범하다면 평범할 수 있고, 일상에서 쉽게 가질 수 있을 법한 아이템을 한정 수량 혹은 한정된 시간에 구입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이다.
 
쉽게 가질 수 없는 제품으로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내재된 욕망을 슬쩍 건드리는 고도의 심리 게임을 펼치는 것이다. 매 시즌 점점 어려워지는 경제불황을 이겨나가는 패션계의 이야기다.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나 역시 나이키의 지드래곤 운동화는 정말 갖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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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방호광
  • 사진 COURTESY OF BURBERRY/DIOR/LOUIS VUITTON/NIKE
  • /PRADA/GETTYIMAGESKOREA
  • 아트 정혜림
  • 디자인 오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