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스 장미를 향한 디올의 찬가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디올의 새 향수 '미스 로즈 앤 로지스'엔 무슈 크리스챤 디올의 장미를 향한 사랑이 고스란히 집약돼 있다.

잠시 시간 여행을 떠나볼까.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던 벨에포크 시대를 거쳐 낙천적인 분위기 속 우아한 복장의 ‘마담, 무슈’들이 길거리에 넘쳐나는 1947년 파리의 몽테뉴가(街) 30번지. 어깨에서 떨어지는 부드러운 곡선이 허리로 조붓하게 이어지다 스커트 끝자락으로 갈수록 극적으로 풍성하게 퍼지는, 이른바 ‘뉴 룩’이 탄생하고 있는 역사적 순간을 수많은 기자와 관객이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디올 하우스의 첫 번째 향수인 ‘미스 디올’ 역시 이날 태어났음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향수란 여성스러움을 완성하는 데 없어선 안 되는 것이며, 드레스의 마지막 터치”라고 믿었던 무슈 크리스챤 디올은 자신의 첫 패션쇼와 함께 선보일 절대적이면서도 고급스러운 향을 원했다. 단지 ‘쿠튀리에’에 그치지 않고 하우스를 대표하는 ‘쿠튀리에-퍼퓨머’로서 기억될 첫 행보가 바로 이날 뉴 룩과 함께 시작된 것. 그 이후 지금까지 미스 디올은 디올 하우스 퍼퓨머-크리에이터 프랑소와 드마쉬(François Demachy)의 손과 코를 거쳐 수많은 변주를 이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2020년 1월, 미스 디올의 새로운 버전 ‘미스 디올 로즈 앤 로지스(Rose ‘N’ Roses)’를 선보인다. ‘로즈 앤 로지스’라는 이름에서 더욱 강력하고 풍성한 장미의 향이 느껴지는지! 무슈 디올의 꽃에 대한 사랑과 대거 보(Dagger Bow), 하운즈투스 체크 등 디올 쿠튀르의 모티프를 담고 있는 미스 디올 그리고 미스 디올 향을 이루는 노트 중 단연 ‘심장’과 다름없는 그라스 장미까지…. 새로운 미스 디올 로즈 앤 로지스의 출시를 앞두고 향수에 담긴 스토리와 디올 하우스의 아카이브, 향의 근원을 찾기 위한 장소로 그라스보다 더 완벽한 곳은 없으리라. 부푼 기대를 안고 파리에서 한 차례 경유를 거쳐 꼬박 20여 시간의 비행 끝에 드디어 향수의 고장 그라스에 도착했다.

디올 퍼퓨머-크리에이터 프랑소와 드마쉬가 어린 시절 5월의 들판에서 느낀 생명력을 표현한 향. 그라스 장미와 머스크가 어우러져 싱그러움을 배가시키는 미스 디올 로즈 앤 로지스, 50ml 12만4천원대, 100ml 17만8천원대, Dior.

디올 퍼퓨머-크리에이터 프랑소와 드마쉬가 어린 시절 5월의 들판에서 느낀 생명력을 표현한 향. 그라스 장미와 머스크가 어우러져 싱그러움을 배가시키는 미스 디올 로즈 앤 로지스, 50ml 12만4천원대, 100ml 17만8천원대, Dior.

마농 농장에 피어 있던 자스민과 농장주 캐롤 비앙칼라나와 함께 자스민 수확을 체험하고 있는 각국의 프레스들.

마농 농장에 피어 있던 자스민과 농장주 캐롤 비앙칼라나와 함께 자스민 수확을 체험하고 있는 각국의 프레스들.

마농 농장에서 만난 프랑소와 드마쉬. 더욱 좋은 품질의 장미를 재배하기 위해 접목하는 과정을 알려주었다.

마농 농장에서 만난 프랑소와 드마쉬. 더욱 좋은 품질의 장미를 재배하기 위해 접목하는 과정을 알려주었다.


디올 장미의 원천, 마농 농장

미스 디올의 근원을 찾는 여정은 디올 하우스와 2006년부터 독점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마농 농장(Le Domaine de Manon)에서 시작된다. 대륙과 해양을 접하고 있는 지리적 특성과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으로 다른 어느 지역에서도 만날 수 없는 탁월한 퀄리티의 꽃이 재배되고 수확되는 곳. 3대에 걸쳐 꽃을 재배하고 있는 마농 농장의 주인, 캐롤 비앙칼라나(Carole Biancalana)는 프랑소와로부터 특별한 파트너십 제안을 받았을 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인간미와 진실함으로 가득한 순간이었습니다. 진정한 조향사를 만났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고, 저와 같은 이상을 추구하는 진정한 퍼퓸 하우스를 위해 헌신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녀의 결정으로 이 농장의 3ha 대지에서는 오직 디올에만 납품되는 그라스 장미(일명 센티폴리아 장미)와 자스민 그랜디플로럼, 네롤리가 자라나고 있다. 5~6월 사이 수확되는 그라스 장미는 섬세한 동시에 달콤한 향을 자랑하고, 7~10월 사이 수확되는 자스민은 다양한 향의 밸런스가 잘 갖춰진 감각적인 향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농장을 방문한 시기가 9월 말경이었기에 미스 디올에 들어가는 그라스 장미는 상상으로 그려야 했지만, 대신 하얀 눈꽃처럼 흐드러지게 피어난 자스민 꽃송이를 직접 수확하는 귀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갓 딴 자스민 꽃잎에서는 눈앞이 아찔해질 만큼 달콤한 바나나 우유 향이 났다. 농부들의 자스민 수확 과정도 지켜볼 수 있었는데, 모두 나이가 꽤 어려 보이는 젊은 농부라는 점이 놀라웠다. “근방 앙티브 지역에 있는 농업고등학교에 ‘향수 원료용 꽃 재배’ 전공반이 있어 그 학생들이 농장에서 일하며 경험을 쌓는다”는 프랑소와의 설명. 다시 시선을 돌려 꽃잎을 따는 그들의 섬세한 손길과 진중한 표정을 찬찬히 지켜보고 있으니 그라스 지역의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노동을 얼마나 숭고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대로 전해졌다. 그라스 지역의 향수 제조와 꽃 재배 전문 노하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 너무나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퐁텐 파퓨메에서 공개된 미스 디올 로즈 앤 로지스.

퐁텐 파퓨메에서 공개된 미스 디올 로즈 앤 로지스.

샤또 드 라 콜 누와르에서 진행된 장밋빛 런치. 실제 무슈 디올도 이곳에서 많은 문인, 예술가들과 만찬을 즐겼다고 한다.

샤또 드 라 콜 누와르에서 진행된 장밋빛 런치. 실제 무슈 디올도 이곳에서 많은 문인, 예술가들과 만찬을 즐겼다고 한다.

무슈 디올의 목가적 꿈, 샤또 드 라 콜 누와르

크리스챤 디올이 남은 여생을 보냈다는 성, 샤또 드 라 콜 누와르(Château de la Colle Noire)를 찾았다. 어린 시절 노르망디 지방의 도시 그랑빌에서 자란 무슈 디올의 주변은 늘 꽃과 나무로 가득했고, 이는 그의 자양분이 되어 훗날 꽃잎을 닮은 실루엣이나 섬세한 꽃 장식 등으로 표출됐다. ‘뉴 룩’도 당시 〈하퍼스 바자〉 편집장이던 카르멜 스노가 “이건 혁명이자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New Look)”이라고 표현한 데서 기인한 애칭일 뿐, 그가 붙인 이름은 ‘꽃부리(Corolle)’였다는 사실. 1951년 그라스 지방의 중심 몽토루에 있는 이 성을 소유하게 된 그는 어린 시절을 보낸 그랑빌의 저택과 정원에서 보낸 황홀한 기억을 떠올리며 본격적으로 50ha에 달하는 땅에 본격적인 경작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아몬드나무와 체리나무, 올리브나무, 포도나무 등을 심고 향수를 만들기 위한 꽃을 재배한 것. 돌이 많은 성 주변의 토양을 파악해 관개시설 설비까지 직접 했다고 전해지니 쿠튀리에 이면에 숨어 있던 경작농 무슈 디올의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너비 40m에 달하는 큰 연못을 지나 성 뒤편으로 걸어가니 여전히 올리브나무와 포도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여러 소유자들을 거쳐 2013년 완전히 디올 하우스의 소유가 된 후, 그라스를 기반으로 하는 디올 향수의 헤리티지를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한 성과 정원 복원 사업에 착수해 다시금 수천 송이의 꽃과 포도나무, 올리브나무를 심고 지금까지 정성스럽게 가꾸고 있다 한다. 직접 꽃송이를 볼 수는 없었지만 그라스 로즈, 라벤더 등 꽃밭도 잘 정리돼 있었고, 이른 봄마다 벌들이 찾아와 그 부산물로 꿀을 얻어 실제로 판매할 만큼 여전히 자연 리듬이 잘 보존되고 있었다. 무슈 디올의 사랑스러운 여동생이자 실제 ‘미스 디올’이라 불린 카트린 디올의 존재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미스 디올 향수의 뮤즈로 알려진 카트린 역시 오빠처럼 그라스 장미를 재배했고, 현재는 에밀리 카를로(Emile Carlo)라는 젊은 여성 꽃 재배자가 카트린 소유였던 바로 그 경작지에서 디올 하우스에 독점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그라스 장미와 샤프란, 튜베로즈를 재배하고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까지도! 미스 디올이라는 향수를 탄생시킨 디올 가문의 자연을 향한 열망 그리고 이를 계승하려는 사람들의 노력과 경외심이 만나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결과까지 낳고 있는 것. 크리스챤 디올과 카트린 디올의 꽃과 나무를 향한 사랑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실제 ‘미스 디올’이라 불리며 미스 디올 향수의 뮤즈가 된 인물로 알려진 카트린 디올. 브랜드 컬처 프로젝트 매니저, 뱅상 르레가 그녀의 일대기를 설명 중이다.

실제 ‘미스 디올’이라 불리며 미스 디올 향수의 뮤즈가 된 인물로 알려진 카트린 디올. 브랜드 컬처 프로젝트 매니저, 뱅상 르레가 그녀의 일대기를 설명 중이다.

프랑소와 드마쉬의 연구실에서 진행된 향수 워크숍. 미스 디올의 기본 향조인 장미 에센스를 조합해 나만의 향을 만들어보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프랑소와 드마쉬의 연구실에서 진행된 향수 워크숍. 미스 디올의 기본 향조인 장미 에센스를 조합해 나만의 향을 만들어보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로즈 앤 로지스’의 탄생, 퐁텐 파퓨메

마농 농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디올 퍼퓨머-크리에이터 프랑소와 드마쉬의 작업실이 있는 퐁텐 파퓨메(Les Fontaines Parfumées)가 있다. 이곳에서 미스 디올 로즈 앤 로지스에 대한 설명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단순히 장미의 향을 재현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미스 디올 로즈 앤 로지스는 꽃의 풍성함을 상징합니다. 어린 시절 꽃이 만개한 5월의 들판에서 느꼈던 황홀한 감정을 향으로 담아내려 했습니다. 장미는 저에게 경이로움 그 자체이고, 꽃이 지닌 생명력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라스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며 목격한 싱그러운 장미꽃과 기적처럼 느껴진 수확의 순간에 대한 선명한 기억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하는 프랑소와. 그 때문일까. 미스 디올 로즈 앤 로지스는 평소 장미 베이스의 향수를 그리 선호하지 않는 내 취향마저 저격해 버렸다. 단순한 장미 향이라기보다 마농 농장의 드넓은 대지 위에서 깊이 숨을 들이마셨을 때 느낀 신선하고 생생한 자연의 숨결 같았달까. “지평선 너머 끝없이 꽃들이 펼쳐진 들판에 들어섰을 때의 느낌을 재현하고 싶었다”는 프랑소와의 의도가 정확하게 느껴지던 순간! 그라스 장미라는 메인 원료를 가지고 어떤 마법을 부렸기에 가능한 일이었을까? “향수는 요리와 같아요. 여러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따라 다른 맛이 나는 것처럼요. 그라스 로즈를 중심으로 다마스커스 로즈, 불가리아산 로즈가 더해져 그야말로 장미의 향연을 이룹니다. 그리고 여기에 머스크 노트를 더했어요. 다만 보통 다른 향수에서 머스크가 선사하는 우디한 향이 아니라, 로즈 노트의 신선함을 오래 유지시키기 위해 살짝 다르게 조리한 거죠.”
퐁텐 파퓨메를 나서며 프랑소와 드마쉬가 한 말 중 곱씹게 되는 말이 있었다. “향수는 감각을 터치해 우리 뇌에서 함께 활동이 이뤄져야 하는 제품. 단 하나의 노트로 설명될 수 없는, 감정의 교란을 일으키기 위한 향 노트들의 총합이 향수여야 한다”는…. 불현듯 샛노란 프리지아 향을 맡을 때마다 어릴 적 ‘프리지아가 참 예쁘다’며 웃음 짓던 엄마가 떠오르며 마음이 일렁대곤 했던 내 자신이 생각났다. 이런 게 그가 말하는 ‘감정의 교란’이겠지. 안타깝게도 장미 향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던 나에게 이번 여정은 엄청난 터닝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광활한 그라스 땅에서 오감으로 느낀 무슈 디올의 자연을 향한 찬사! 미스 디올 로즈 앤 로지스 향을 맡을 때마다 어떤 ‘감정의 교란’을 느끼게 될지 기대되는 이유다.
디올의 새 향수 '미스 로즈 앤 로지스'엔 무슈 크리스챤 디올의 장미를 향한 사랑이 고스란히 집약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