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캘빈 클라인’이라는 다섯 글자에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것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청바지, 언더웨어, 시계, 혹은 향수? 그러나 나는 무거운 스타일에 지쳤을 때 그의 이름을 떠올린다. 극도로 맥시멀한 트렌드가 세상을 훑고 지나갔을 때, 또는 두터운 코트와 점퍼, 여러 겹의 레이어드가 지겨워 봄이 기다려지는 늦겨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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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미국의 FIT 의상 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기성복 회사의 프리랜서로 일하던 캘빈 클라인은 1968년, 뉴욕의 요크 호텔에 코트 숍을 오픈하는 것으로 자신의 브랜드를 시작했다. 그가 첫 컬렉션에서 선보인 것은 절제된 디자인의 코트와 드레스 등이었다. 이후 1971년까지 스포츠웨어, 클래식 블레이저, 란제리 등의 아이템을 추가했고, 80년대에 디자이너 청바지 열풍이 불었을 때 그 시류를 타고 캘빈 클라인은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반열에 오른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캘빈 클라인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고르라고 한다면,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선보인 시프트 드레스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다.
소매가 없고 허리 부분의 다트가 몸의 곡선을 자연스럽게 살려주는 디자인의 시프트 드레스는 미니멀한 디자인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단순한 디자인이 아름답게 보이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단순한 형태의 구조를 보완할 수 있는 패브릭을 사용할 것, 그리고 훌륭한 기술로 원단을 커팅할 것. 그런 면에서 캘빈 클라인의 시프트 드레스는 완벽했다. 그것은 새 시대를 여는 파워 드레싱과 같았다.

캘빈 클라인 1999년 F/W 컬렉션. Ⓒ게티이미지
시프트 드레스는 1920년대, 미국 서부의 플래퍼 운동 중에 처음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전의 코르셋에서 벗어나 움직이고 일하고 춤추기 좋은 드레스 스타일을 여성들 스스로 선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큰 전쟁과 디올의뉴룩 등을 지나 1960년대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지방시가 만든 오드리 헵번의 드레스, 릴리 퓨리처가 재클린 케네디의 휴양지 룩을 위해 만든 드레스 등이 인기를 끈 것이다.
그리고 화려하고 풍요로운 80년대를 지나 90년대가 시작되었을 때 캘빈 클라인은 맨얼굴의 모델들에게 극단적으로 단순한 드레스를 입혔다. 당시 뉴욕 타임스는 그에 관해 ‘진정한 미국의 청교도’라고 썼다. ‘그의 스타일은 언제나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고 가능한 한 최고의 순수함을 유지하는 의상에 대한 고민과 관련되어 있다’라고도 썼다. 이 시대 최고의 미니멀리스트인 그는 심플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것으로 90년대 스타일을 이끌었다.

사라 제시카 파커. 1995년. Ⓒ게티이미지

캘빈 클라인, 켈리 클라인. 1987년. Ⓒ게티이미지
위 사진 속, 캘빈 클라인의 블랙 드레스를 입은 사라 제시카 파커의 모습을 보면 내 마음마저 편안해진다. 어떻게 저런 옷을 다 소화하나 싶을 정도로 화려한 온갖 룩을 즐기던 그녀가 찍은 거대한 쉼표를 보는 것 같아서. 그리고 또 한 장면. 1987년 CFDA 시상식에 참석한 캘빈 클라인의 아내 켈리 클라인의 사진. 화장기 없는 얼굴에 머리를 빗어 넘기고 심플한 실크 드레스를 입은 모습이다. 이 두 장의 사진은 캐주얼한 룩과 포멀한 룩 모두에서 빛을 발하는 전천후 아이템, 시프트 드레스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
☞ 트렌드를 뛰어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를 지닌 물건 뒤에 숨은 흥미로운 이야기, 김자혜 작가의 ‘요주의 물건’은 매주 수요일에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