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요약하자면 미망인 이화영(김희애)가 베스트 프렌드 김지수(배종옥)의 남편 홍준표(김상중)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막장에 가까운 스토리지만 레전드 김수현 작가의 필력으로 수많은 명대사를 남기며 방영 당시 최고 시청률 36.8%를 찍었다. 2020년에 다시 봐도 대단한 몰입감을 자랑한다. 1회 안에 불륜이 들통나고 난타전이 벌어지는 등 시원시원한 전개가 단연 압권이다.
친구의 남편을 사랑했네 스토리, 친구에게 불륜 사실을 고백하며
“우리는 너무 잘 맞아. 한번 실수로 끝낼 수 없었던 이유 중에 그것도 들어가”라는 사족을 덧붙이는 화영의 뻔뻔함, 그 상황에서도 화영이나 준표가 만나 달라면 다 만나주는 지수의 답답함, 김수현 작가의 무시무시한 대사량 모두 충격적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경악스러운 건
홍준표(김상중)의 식욕이다.
정말이지, 찌질남의 모든 조건을 갖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에, 매사 우유부단하며, 사랑에 올인했다고 하면서 결정적인 순간 비겁하고, 어떤 심각한 상황에서도 매 끼니는 반드시 챙겨 먹어야 한다.
부모님께 불륜 사실이 들켰을 때, 화영 몰래 정관 수술한 사실이 탄로 났을 때, 전처의 집에 찾아갔을 때조차 밥투정을 부린다. (“굴비가 말랐네.”) 물론 지 손으로 밥을 차리는 법은 없다. 특히 시시때때로 감자를 쪄 달라며, 감자가 포슬하다는 둥 덜 익었다는 둥 ‘감자 감별사’를 자처하는 모습을 보면 왜 이 드라마가 ‘대환장 저혈압 치료 드라마’로 불리는지 이유를 알게 된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감자를 찌게 된다.)
전통적 현모양처인 지수는 물론이고 잘 나가는 성형외과 의사에 친구의 남편을 빼앗고도 “이건 내 운명이고 그 사람 운명이에요. 지수한테는 미안하지만 멈춰지지도 않았고, 멈출 생각도 없어요”라며 세상 제1의 당당함을 선보이던 차가운 도시 여자 화영조차 홍준표를 위해 김치를 담그고 감자를 찐다.
어찌나 감자와 밥 타령을 하는지 홍준표를 연기한 김상중 본인조차 명대사로 “감자 좀 쪄줄래”를 꼽았으며, 이 드라마 제목을 기억 못 하는 엄마에게 “〈그것이 알고 싶다〉 아저씨가 계속 밥 달라고 하는 드라마”라고 설명했더니 단박에 알아차렸다는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다. 유튜브 채널 SBS NOW에 업데이트된 〈내 남자의 여자〉 편집본에 역시 매회 이런 댓글이 달린다.
‘제목 내 남자의 밥투정으로 바꿔야 할 듯’ ‘식품영양학과 아니고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로 밝혀져 큰 충격ㅜㅜ 우리 감자*끼ㅜㅜ’ ‘홍준표 장금이처럼 미각을 잃어야 됨’ ‘김상중 대단하다. 저 심각한 상황에서도 밥 타령이네. 전생에 거지 왕초였나’
전설의 마트 신. 저 선글라스와 화영은 곧 바닥에 내리꽂힌다
하지만 이 십년 묵은 체증 같은 드라마에도 뻥 뚫리는 순간은 있다. 홍준표가 감자라면 지수의 언니 김은수(하유미)는 사이다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유미 언니는 멋있다. 왜 언니냐고?
“교-호-양? 이게 내 교양이다!” “미국물 먹고 미국 년 됐나?”를 비롯해 수많은 레전드 신을 보다 보면 언니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일단 이 에피소드를 보면 알게 될 거다.